북한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6일 평양에서 가진 미국 `AP 통신’과의 회견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개혁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형섭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견해로 볼 수 없다며 의미를 부여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는 금기시 돼 있는데 이를 최고 지도자와 결부시켜, 더구나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언급한 것은 ‘의도된 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서울의 북한 전문가인 기은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의 말입니다.
“감히 북한 내에서는 개혁개방이란 표현을 못했는데, 북한의 고위층 인사인 양형섭이 김정은 부위원장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 것은 경제정책 변화를 암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이 중국의 개방개혁을 검토하거나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북한은 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경제권이 붕괴하자 1991년 함경북도 나진선봉 지구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과거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 경제가 ‘천지개벽’을 했다며 중국의 개방정책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2002년에는 신의주 경제특구를 추진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중국식 개방 시도는 모두 흐지부지되거나 실패했습니다. 나진선봉 특구는 추진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는데다 신의주 특구는 아예 착수도 못하고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계속되던 장마당도 2009년 11월 단행된 화폐개혁 조치로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워싱턴의 민간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의 딘쳉 연구원은 중국이 20년 넘게 북한 수뇌부에 중국식 개방을 권유해 왔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를 묵살했다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시작된 북한의 경제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북한 인구의 3분의1에 해당되는 6백만 여명이 하루 3백 그램의 식량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북한 내 공장과 기업소는 10개 중 7개가 가동을 멈췄고, 평양을 제외한 지방의 전력 사정도 상당히 나쁜 상황입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북한이 경제를 살리려면 자본과 기술, 원자재 등을 외부로부터 들여와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개방과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개방을 할 경우 체제가 흔들리거나 정권이 붕괴될 수 있다고 보는 평양 수뇌부의 생각이라고 조봉현 연구위원은 말했습니다.
“북한이 그동안 경제개혁, 개방을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자칫 서방의 자본이나 문화가 들어오면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까 해서 그랬던 것이거든요.”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과연 경제개혁에 나설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의 딘쳉 연구원은 북한 군부가 개방에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김정은이 경제개혁을 단행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씨는 북한이 어차피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하기 어렵다면 장마당을 활성화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습니다.
“북쪽이 딴 것은 억제하더라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장마당만 그냥 놔둬도 나는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 것으로 생각하는데, 스스로 개혁개방은 못할 것 아니겠어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김정은이 개혁 조치를 취한다면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올해는 체제 안정에 주력할 것이며, 본격적인 변화는 내년에나 시작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1978년 개방을 시작한 이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물론 공산당도 계속 권좌를 지키고 있습니다.
북한의 고위 당국자가 최근 미국 언론에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경제개혁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경제개혁을 안할 수도 없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최원기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