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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사망


故황장엽(87)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한국의 TV방송화면
故황장엽(87)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한국의 TV방송화면

지난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0일 오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외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자연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10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오후 3시 황 전 비서의 사망과 관련해 공식 브리핑을 갖고 사망 당시 정황과 검안 결과 등을 발표했습니다. 안병정 서울 강남경찰서장입니다.

"인기척이 없어 당직실 비상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방안 욕실을 확인해 보니 욕조에서 알몸 상태로 앉아 사망한 채 발견된 것입니다."

경찰은 평소 황 전 비서가 오전에 반신욕을 즐겨 해왔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자연사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황 전 비서가 사는 가옥은 담이 높아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데다 맹견이 대기하고 있어 침입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또 지난 3월 황 전 비서의 미국 방문 이후부터 암살 위험이 높아지면서 경호 수준을 국무총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높인 점도 자연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입니다.

경찰은 검찰과 전문가 등과 함께 1차 합동검안을 했으나 보다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 부검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황 전 비서의 빈소는 부검이 끝나는 대로 경찰병원에 차려질 예정입니다.

올해 87살인 황 전 비서는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나 김일성 종합대학과 구소련 모스크바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유학파로, 김일성 사상을 주체사상으로 집대성한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립니다.

29살의 나이로 김일성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된 황 전 비서는 19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거쳐 1960년 대이후 김일성대 총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오르며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특히 ‘백두산 출생설’을 포함해 김정일 위원장으로의 후계구도 정립 과정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며 김일성 부자의 깊은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고인민회의 의장, 노동당 사상 담당 비서,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 최고위직을 두루 거친 황 전 비서는 1980년 대 중반 이후 주체사상을 두고 김정일 위원장과 견해 차이를 보이면서 북한 체제에 회의를 느껴, 1997년 2월 12일 베이징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전격 망명했습니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측 인사 가운데 최고위급이었던 황 전 비서는 망명 이후 13년 동안 북한의 독재 체제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데 앞장서왔습니다.

지난 3월 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황 전 비서는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을 강력히 비판하는가 하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독재가 아버지보다 10배는 강하다며 김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방송 자유북한방송에 출연한 황 전 비서의 강연 내용입니다.

게다가 북한 독재정권은 300만 이상을 아사시키고 온 천지를 감옥으로 만든 범죄집단입니다. 북한에는 아무런 자유도 없습니다.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마비시키는 것은 범죄고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은 범죄가 아닙니까?

황 전 비서가 이처럼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자 북한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암살을 계획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4월에는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으로 황 전 비서를 암살하기 위한 요원 2명이 적발돼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황 전 비서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탈북자들은 충격 속에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은 황 전 비서가 위원장으로 있던 북한민주화위원회에 모여 대책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북한 당 창건일에 탈북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황 위원장이 세상을 떠나 더욱 비통하다며 황 전 비서는 탈북자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애통해했습니다.

황 선생님은 탈북자들의 리더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북한 민주화를 위해 일하던 우리들은 아버지를 잃은 심정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방한한 수잔 솔티 대표와 만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정치권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사망에 대해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숱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 회복과 민족의 평화를 위한 고인의 용기있는 행동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황 전 비서가 주체사상을 세운 학자이면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한 뒤 황 전 비서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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