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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선미술협회 신동훈 대표] “미국서 북한 화가 유작전 개최”


미국의 한 한국계 화랑대표가 작고한 북한 유명 화가들의 유작전을 미국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한국에 북한 그림을 소개하면서, ‘조선미술협회’ 회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는 신동훈 씨인데요. 어떤 인연으로 이런 전시회를 갖게 된 건지, 조선미술협회 신동훈 회장을 전화로 연결해서 들어보겠습니다.

문) 북한의 유명 작고 화가들의 유작전을 준비하고 계신데요. 어떤 전시회인지 먼저 소개해 주시죠.

답) 일단 한반도에서 북화와 남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양측의 북화에서 최고봉으로 살아계셨던 선우영 화백과 정창모 화백이 남기신 작품들을 중국, 한국, 미국에 소개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 미국에 계시면서 두 분의 전시회를 갖게 된 인연이 궁금하고 제가 알기로 두 분과 직접적인 교류도 있 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소개해 주시죠.

답) 제가 1988년부터 우리 북화를 찾아서 평양을 드나들었어요. 사실 저희 시대가 지적을 안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아침에 한강을 걷고, 저녁에 대동강을 걸을 땐 제가 무슨 풍운아가 된 것 같은 착각도 했었고요. 그 때부터 선우영 화백과 정창모 화백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문제점은 선우영 화백은 진채세화의 거장이시고 정창모 화백은 몰골화의 거장이신데 그 분들이 남기신 작품들의 수는 대단합니다. 또 그것이 고달프고 험난한 한 세월을 사시면서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고 남기신 작품들이라 귀하고, 그것이 또 미술사에도 한반도 양 축의 한 축인 북화를 남기신 작품들이라 미술사에서 굉장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문) 제가 알기로 실제 친분도 있으셨고 그림도 직접 받으신 경우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두 분들과의 사연도 좀 소개해 주시죠.

답) 제가 이 분들의 작품들을 서울은 못 했지만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이렇게 옛날에는 없었던 전시를 하다 보니까 북쪽에서도 그들의 문화가, 미술이 소개된다는 걸로 해서 제가 북한 방문을 통해 그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당신들의 작품들이, 또 당신들의 삶이 바깥 세상에 알려지고 고스란히 잘 남겨지기를 간절히 소망했었어요.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 분들의 작품들을 저에게 남겨 주시고 이런 과정으로 제가 20여 년 동안 드나들면서 그 분들과 정신적으로 교감을 했었습니다.

문) 그렇게 오랫동안 북한 그림을 접하시면서, 특히 두 분과 이렇게 관계를 맺으시면서 북한의 미술, 또 북한의 화가들의 활동, 어떻게 보세요? 외부에서 보는 관점에서요.

답) 제가 봤을 때 어려운 환경에서 이렇게 예술을 익혀 나갔는데요. 저는 그 분들의 그런 치열한 예술혼이 귀하게 미술사에 남겨져야 된다고 보고요. 잠깐 말씀 드린 북화가 결국 전통 우리 미술에다가 강렬한 색상의 현대가 만나는 독특한 그림입니다. 북화는 발색이 강하고 붓의 기운은 거칠고 힘이 있어요. 아주 독특한 장르의 미술인데요. 결국은 북화가 한반도의 하나의 문화요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귀하게 생각하고 또 그 분들을 만나서 꾸준히 교제할 수 있도록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 분들이 돌아가시면서 결국은 저한테 많은 사명감을 남기시고 갔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 정의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미 이 분들의 그림을 미국, 중국, 또 외국에서도 전시를 하셨는데. 북한 그림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답) 아무래도 특별한 감정이 있죠.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아주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많은 분들이.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벌써 특이한 미술이 나오고 또 정치적인 그림은 이 시대에 오직 유일하죠. 그것도 그렇고 정창모 화백이나 선우영 화백의 순수 그림은 그 자체가 뛰어나고 해서 그런 미술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왔다는 것은 특별히 주목되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문) 그럼 다시 이번 전시회로 돌아가서요. 이번에 어떤 작품들을 소개하게 되시는지 말씀해 주시죠.

답) 정창모 화백과 선우영 화백의 작품을 중심으로 일부 다른 분들을 포함해서,

문) 다른 분들이라면 북한 화가 말씀이시죠?

답) 그렇죠. 북에서 창작하고 있는 화가들인데 그것을 중심으로 작품 전시를 준비하고 있고요. 그 동안 좀 정치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남북관계가 좋지 않으니까요. 그런 과정이 흘러갔고 이제는 거의 서울과 중국, 미국의 좋고 큰 규모의 전시가 성사된 게 열리고 있습니다.

문) 일정은 대강 어느 정도로…?

답) 욕심 같아서는 금년 안에 시작됐으면 좋겠는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 아까 잠깐 어려움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그 와중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답) 아시다시피 어렵죠. 분명한 것은 북쪽이 많이 어렵다는 겁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그 분들은 할 수 있는 게 치열하게 작품을 창작하고 자기 혼을 불사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데. 다른 나라의 OO처럼 풍요롭고 넉넉한 환경에서 그리는 그림과는 다른, 남다른 의미가 있고. 그것이 또 한 시대를 표현하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아까 1988년부터 북한 그림을 발굴하시고 또 북한 화가들과도 교류를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미국에 계시면서 북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신 개인적인 이유,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네요.

답) 제가 화랑을 1988년부터 여기 락빌(Rockville) 에서 시작을 했어요. (예술가로서) 나름대로 자기의 특성(스페셜티, Specialty)이 있어야 되는데 미국 사람들도 저에게 ‘특성이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한국 미술(코리안 페인팅)’이다 라고 말을 했는데 사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없었죠. 그래서 서울을 드나들면서 한국 미술에 접근을 했는데,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까 아무래도 잘 접근이 안 되고 어려움이 많아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순간, ‘아. 우리 미술이 북에도 있구나.’ 깨닫게 됐죠. 일종의 ‘느낌’이 강렬하게 왔어요. 그 때부터 홍콩을 통해서, 중국을 통해서 북의 미술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북의 미술을 직접 보니까 ‘아. 이것을 내 손에 넣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북의 미술을 알게 된 거죠.

문) 북에 있는 미술계의 마음을 여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답) 그럼요. 처음에는 비자도 받기 엄청 힘들었죠. 그러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나는 순수한 우리 미술의 한 축인 북화를 내 손에 넣고 싶고 또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내가 힘이 되고 싶다’ 라고 꾸준히 그 쪽에 알리고 하니까 물꼬가 터서 시작이 되다 보니까 그 쪽에서도 굉장히 호감을 갖고 있고.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좋은 전시, 엄청난 전시를 많이 했으니까. 그것을 인정받은 거죠.

문) 보람도 느끼시겠군요.

답) 그것은 뭐. 저는 뭐, 외람되지만 시작이 기적을 낳고 모든 것이 하늘에서 만들어 주는 각본에 따라 됐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런 엄청난 일을 제가 만들어 냈다는 것은 하늘의 기적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고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정창모 화백과 선우양 화백의 치열한 예술혼을, 작품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남기고 싶습니다.

문) 네. 말씀 감사합니다.

답)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조선미술협회 신동훈 회장으로부터 앞으로 미국과 한국, 중국에서 열 예정인 북한 화가 정창모, 선우영 화백 유작전 계획에 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근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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