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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09년 북한 억류됐던 유나 리 3. “북한 감시원들과 교감 느껴”


3일 미국의 소리 방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유나 리 기자 (왼쪽).
3일 미국의 소리 방송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유나 리 기자 (왼쪽).

지난 2009년 3월 두만강 부근 북-중 국경지대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2명의 미국 여기자가 북한 군에 붙잡혔던 사건이 있습니다. 이들은 142일간 북한에 억류돼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으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풀려나 미국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이 사건 발생 3주년을 맞아 한국계 미국 여기자 유나 리 씨로부터 당시 상황을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네 차례에 걸쳐 마련했습니다. 유나 리 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3일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 스튜디오에서 이뤄졌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유나 리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문) 재판 과정이었나요? 한국의 통일의 꽃이라고 불렸던 임수경을 아느냐, 이런 질문이 나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궁금하네요.

답) 사실 임수경 씨가 북한에 갔을 때 그 때가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뉴스가 있었단 것만 기억이 되지 사실 자세한 상황들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왜, 어떤 통로로 갔으며 누가 뒤에서 배경이 됐으며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이름만 압니다, 그리고 자세한 상황은 잘 모릅니다 라고 얘기했죠. 왜냐하면 저하고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제가 변호사를 거부하고 재판을 하면서 내가 내 스스로를 변호할 거라고 준비를 하고 갔는데 너무나도 뜻밖의 질문이 나오니까 그 날은 머리가 하얘지면서 하나도 변호를 제대로 못했었어요.

문) 고등학교 때 뉴스로만 접했던 인물이 자신과 나란히, 그것도 북한에서 비교가 되서 상당히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변호사 선임을 지금 거부하셨다고 했는데 왜 거부하셨습니까?

답) 변호사가 필요한 지 재판 몇 일 전에,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에게 물어 봤어요. 그런데 어느 변호사가 긴 시간을 만나서 저를 잘 알아서 변호를 해 줄 수 있어야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저를 만나서 변호를 할 것이며, 설사 또 북한에서 변호사를 대면 그 분이 진짜 나를 변호할 건지, 의문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아, 있으나 없으나마나 한 존재가 아닐까, 차라리 내가 변호를 잘 하는 게 낫겠다 라고 생각을 했었죠.

문) 그래서 잘 하셨습니까?

답) 첫 날은 잘 못했어요. 그런데 잘하면 잘하려고 할수록 재판장이나, 또 재판정에 있었던 분들, 검사분을 더 노하게 만들었었어요.

문) 노하게 만들었다는 건 재판을 어떤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으셨다는 말씀인가요?

답) 제가 제 입장에서 설득을 하려고 그랬죠.

문) 그 쪽에서 어느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그런 느낌을 유나 리씨께서 받으셨느냐는 질문입니다.

답) 재판은 이미 결과가 나온, 그냥 절차만 밟는 재판이라고 생각이 들었었어요.

문) 그래서 재판이 3번 진행된 게 맞죠?

답) 예. 3일 했습니다.

문) 그러면 그 때 로라 링 씨를 처음 보게 된 겁니까? 억류생활을 시작하면서 3일 동안 같이 있었고, 그 이후 헤어진 것으로 말씀 하셨는데 그런 기간이 지난 뒤에 처음으로 본 게 재판정이었습니까?

답) 네. 그 때 처음 봤었어요. 사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둘 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재판정에 가면서 두려웠어요. 군인들이 와서 데려갔고 또 수갑도 채워져서 가고 그래서 둘 다 굉장히 공포감에 쌓여 있었어요.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계속 울고 있었어요.

문) 그리고 제가 책에서 읽기로는 재판정에 가기 전에 아마 로라 링 씨에 대한 어떤 서운한 마음 같은 게 들었다고 기술하신 걸로 기억나서요. 왜 그랬었는지 상황 설명을 좀 해주시죠.

답) 물론 그게 심문하는 방법이겠지만, 저희에게 모든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요. 그런데 만약 제가 혼자 있었으면 그런 경우가 없었겠지만 둘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둘의 관계를 이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로라가 모든 정보를 주는 것처럼, 그리고 또 저를 비난하는 상황을 만든 거라고 들었어요. 심문을 받는 기간동안, 두 달이 넘게. 그런데 로라를 딱 봤는데 너무 밉더라구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 말은 안 믿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은 진실이고 네 말은 거짓말이다, 이제 이렇게까지 나오니까 아 밉다, 그런데 로라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밉다는 감정이 정말 얼음처럼 녹으면서 없어졌어요. 너무 그립던 목소리가 들리니까 로라가 계속 얘기했으면 좋겠다, 끊지 말고 계속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했었어요.

문) 그런 말씀은 석방되신 뒤에, 미국에 돌아오신 뒤에 로라 링 씨와 나눈 적이 있습니까?

답) 로라한테 책을 줬어요. 로라가 책을 읽었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았다고 말했었어요.

문) 알겠습니다. 앞서서 심문하고 판결했던 사람들 말씀을 잠깐 하셨는데요. 특히 북측 여자 감시원들과의 묘한 교감이라고 할까요? 특히 같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적을 감시하는 차가운 존재로만 묘사되진 않았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그 분들과의 얘길 좀 해주시죠.

답) 저랑 관계를 떠나서 그냥 그 분들을 바라볼 때 제가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어요. 옷에도 관심이 많고 항상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그 다음에 머리를 이렇게 했다가 파마를 했다가 풀었다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감시원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을 데리고 와서 저를 감시하게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린 아이들이 나 때문에 잠을 못자고 24시간을 깨어있으니까 참 마음이 안 됐더라구요. 나중에는 그 중 어린 감시원이 많이 아팠었어요. 그런데 제가 마음이 아픈 거에요. 왜냐하면 그 분들 잠자리도 그랬고,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고 싶은데, 몸에 열이 많이나서 찬 물수건이라도 올려주고 싶은데 제 처지가 그러니까 도와주질 못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분이 아마 느끼셨나 봐요. 나중에 감시원들이 바뀌었었어요. 그 분들이 떠날 때 저한테, 제가 좀 몸이 아팠었는데 몸 관리 잘 하고 집에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문) 결국은 언니, 동생 같은 감정이라고 할까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장소였지만 결국은 서로간에 어떤 묘한 감정 같은 걸 분명히 느끼신 것 같은데요. 다른 곳에서 하신 인터뷰를 보니까요, 억류 중인데도 북측의 당시 권력 승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걸로 압니다. 정말 그러셨습니까?

답) 때로는 굉장히 엄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또 대화의 상황을 주기도 했어요. 그 중 한 남자 분이 계셨는데 제가 물어봤죠, 우선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북한으로 잡혀가기 전에, 그런 소식이 있었구요, 북한에서 세습하는 상속자를 벌써 내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어서, 우리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뽑는데, 국민들이 뽑는데 북한에서는 다음 지도자를 어떻게 뽑느냐 라고 물어보니까 어떤 한 사람을 내정하고 그 사람을 시험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주민들이 그 사람을 따를 수 있는지 시험한다고 하면서, 그렇다고 그 사람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주민의 동의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얘길 하시는데 꼭 누군가를 알고, 그 때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었어요. 지금 지도자죠, 방송에 나오지 않았었는데 그 분들은 알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문) 시험에 통과하기 전, 그러니까 시험을 치르고 있다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말씀이시군요. 재판정 얘길 잠깐 더 해 보겠습니다.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으셨거든요. 어느 정도의 형을 받겠구나, 그 전에 상상을 하셨나요?

답) 심문을 받는 동안 계속 장기형일거라고 말을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3년이나 4년으로 줄일 수 있나, 그것만 궁리를 했죠. 장기형일거라고 마음의 다짐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들었을 때는 그 충격은 상상하고는 다르더라구요.

문)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답) 정말 재판을 받았을때가 가장, 심문을 받았을 때도 힘들었지만 재판 그 상황, 3일이 저한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집에 못 가는구나. 장기형에다 노동교화소에 가고, 그러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약해져 있는 상황에서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그냥 아무도 모르게 죽는건가 라고 생각을 했죠.

문) 하지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죠. 두 명의 여기자를 석방시켜서 미국으로 데려오는 그런 임무를 띠고 갔는데, 전직이든 현직이든 그렇게 미 고위급 인사가 그 일을 위해서 지금 북한에 오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사전에 조금이라도 알 수가 있었습니까?

답) 빌 클린턴 대통령이 온다고는 모르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북한에서 누군가 고위급이 오길 원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저한테는 계속 언급하시기를 대통령을 언급하시는데 어떻게 현직 대통령이 저희를 구하러 오시겠어요. 그래서 말이 안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누군가 중요한 분이 왔다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저는 누가 왔을까, 리처드슨이 왔을까, 아니면 저희 회사 보스죠, 앨 고어 부대통령이 오셨을까, (전 부통령이죠?) 빌 클린턴 대통령일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어요.

문) 석방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언제 어떻게 통보받게 됐습니까, 그러면?

답) 집에 오기 전 날이요.

문) 북측에서 어떤 식으로 알려주던가요?

답) 그 때 저를 심문했던 이 선생님, 그 분이 6월 말 저에 대한 재판이 끝난 다음에 떠나셨어요. 그 분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어요. 그 분이 저를 심문했기 때문에 저한테 질문하셨고 저도 질문을 했고 물론 다 대답은 해 주지 않으셨지만. 그런데 그 분이 가고 나니까 어디서든 정보를 들을 수 없는 거에요. 또 새로 오신 분들은 정말 군인들이 오신 거에요. 저를 대하는 태도나 모든 상황이 달라졌었어요. 이제 죄인이니까 죄인처럼 취급을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너무 답답하니까, 가족한테 오는 소식은 미국 소식이지만 그게 북한의 상황을 전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계속 요구를 했었어요. 그 분을 만나고 싶다고. 그런데 아무리 요구를 해도 소식이 없더니 그날, 제가 집에 가기 전날, 그 분이 나타나신 거에요. 그래서 네가 요구를 해서 왔다, 원하는 게 뭐냐 라고 물으시더라구요. 그래서 로라를 만나게 해 달라고 그랬어요. 제가 그렇게 로라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할 때마다 만날 수 없다고, 심문기간이라서 만날 수 없고 이제는 죄인이라서 만날 수 없고, 이유를 대시더니 그 날은 생각을 해 보겠다고 말씀을 하시고 나갔다가 들어오셔서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하시고 또 미국에서 너희한테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왠지 하늘에서 온 동아줄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웃으면 동아줄이 끊어질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웃질 못하는데 자꾸 웃음이 얼굴에 번지는 거에요. 그래서 그 분한테 이 좋은 소식이 뒤로도 갈 수 있냐, 아니면 앞으로만 전진하냐 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뒤로는 가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셔서 아, 진짜 뭔가가 진행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문) 예.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뒤의 상황이군요. 그 북측 감시원들이요. 그래도 1백42일 동안 서로 매일같이 봐야했던 사람들인데 그 곳을 나오면서 어떤 식으로라도 서로간에 의사표시를 할 기회는 있으셨습니까?

답) 저랑 제일 오랜 기간을 같이 했던 감시원들은 사실 심문하셨던 분이 떠나셨을 때 다 떠났어요. 그리고 새로운 감시원들이 왔는데 그 분들하고 저하고의 관계는 아주 달랐어요. 그 분들은 철저히 교육받고 이 사람들은 이제 결과가 ‘길티’, 그러니까 죄인이다 하고 오셨기 때문에 저에게 그 전 분들보다 더 차가운 분들이 오신 거에요. 그래서 관계가 없었고, 그 빌딩에, 제가 있던 빌딩에 관리하는 여성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웃으시면서, 그 분의 표정이 항상 웃는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나를 보고 웃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도 그렇게 그 분을 만나면 따뜻함이 느껴지는 거에요. 그래서 떠나기 전에 그 분이 서 계시길래 차를 타다가 다시 나와서 손을 잡고 감사했습니다 라고 인사드렸어요. 그리고 안녕히 계시라고, 그러면서도 다시 차를 타는데 혹시 이게 내가 너무 오버액션 해 같고 이 분 한테 피해가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유나 리 기자와의 인터뷰, 4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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