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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한인 여성 1세대’ 방송기자, 메이 리


[여성 언론인 대담] ‘한인 여성 1세대’ 방송기자, 메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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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오늘은 미국의 한인 여성 언론인 1세대 인물을 초청했습니다. CNN에서 도쿄 특파원과 뉴스 앵커를 지내고, 유명 방송인 오프리 윈프리 씨와 협업한 메이 리(May Lee) 기자인데요. 최근 자신이 설립한 제작사를 통해, 아시아계 인물을 조명하는 ‘메이 리 쇼’를 만들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야기 듣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바쁘신 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리) 네! 제 이름은 메이 리(May Lee) 입니다. 현재 ‘메이 리 쇼’의 진행자 겸 총괄 프로듀서(제작자)이고요. ‘로터스 미디어하우스(Lotus Media House)’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로터스’는 주요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드는 제작사인데요. 그 대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메이 리 쇼’입니다.

기자) ‘로터스’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은 뉴스ㆍ보도물인가요?

리) 네, 제가 방송 기자로 일한 지 30년이 훨씬 넘어요. 그 경험을 살려 ‘로터스’를 세운 거죠. 20대부터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지역 방송국에서 앵커(진행자)로 일하다가, 일본에 가게 될 계기가 생겨서 현지 공영방송 NHK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미국 방송사로 옮겼는데요. CNN 도쿄 특파원으로 상당 기간 일했어요. 그러다가 CNN 뉴스 앵커가 됐습니다.

기자) 뉴스전문 방송 CNN에서 앵커였다면, 상당히 중요한 업무를 맡으셨네요?

리) 그렇다고 볼 수 있죠. CNN은 두 가지 경로로 뉴스를 송출하는데요. 하나는 미국 내 시청자들을 위한 ‘US 네트워크’,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 위성으로 내보내는 ‘인터내셔널(국제) 네트워크’입니다. 저는 그중에 인터내셔널 앵커를 맡았습니다. 인터내셔널 본부는 홍콩에 있어요.

기자) 1990년대 말에, 한국 대학생들이 메이 리 앵커의 CNN 뉴스를 보고 영어를 배우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리) 네, 알아요. 오래전 이야기네요. 그러고 나서 저는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씨가 자체 방송 채널을 세울 때 합류했습니다. 1999년 말부터 2000년으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는데, ‘옥시전 미디어(Oxygen Media)’라는 회사였어요. 거기서 ‘퓨어 옥시전(Pure Oxygen)’이라는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화제가 되는 인물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어요.

‘한인 여성 1세대’ 방송기자, 메이 리.
‘한인 여성 1세대’ 방송기자, 메이 리.

기자) 지금 진행하시는 ‘메이 리 쇼’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리) ‘메이 리 쇼’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대담 프로그램이에요. 아시아계의 관심사, 희망 사항, 그리고 유명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거죠. 미국 사회 각 방면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를 발굴해서 알리는 게 첫 번째 제작 방향입니다. 요즘 아시아계 인물 중에 사업가, 활동가, 예술가, 정치가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들이 말하는 바를 공론화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방향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 아시아계 인물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어요.

기자) 요즘 특히 아시아계 인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뭡니까?

리)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사회 일각에 ‘아시아계 혐오(Asian phobia)’ 현상이 퍼졌어요.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왔다는 이야기 때문에요. 코로나 확산 초창기 때 기억나세요? 확진자와 사망자와 속출하면서 공포가 극도에 달했을 때,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언어적ㆍ신체적 폭력을 당한 사례들이 잇따랐잖아요. 아직도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시아계를 이유 없이 경계하는 일들이 벌어져요. 이런 혐오 감정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일반 대중에 알리고, 상황을 바꾸는 게 요즘 저희 프로그램이 다루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기자) 상황을 바꾸려면, 비아시아계 시청자들이 ‘메이 리 쇼’를 많이 봐야겠네요.

리) 그렇습니다. 일반 대중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효과를 내려고 힘을 쏟는 중이에요. 아시아계 사회 밖에 있는, 다른 인종들이 주요 대상인 거죠. 정리하자면, 아시아계 이외의 미국인들이 아시아계의 문화와 전통, 생각, 활동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송이 ‘메이 리 쇼’입니다.

기자) 기존 언론 매체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으셨는데, 자체 제작사를 설립하신 뒤에 아시아계 현안에 집중하신 이유가 뭡니까?

리)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의 뿌리가 한국에 닿아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한국과 아시아계 사회의 이야기를 알리는 데 제가 필요하다면, 어디든지 가서 적극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미국 사회 주요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이민 1.5세와 2세들이 연대한 ‘넷캘(NetKal: Network of Korean American Leaders)’이라는 조직이 있는데요. 지난달 원격 행사로 진행된 연례 회의에서 제가 사회를 봤습니다.

기자) 그 행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습니까?

리) 현재 미국 사회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인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MㆍBlack Lives Matter)’ 운동에 한인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의견을 나눴어요. 앞서 말씀드린 ‘코로나 사태’와 함께, ‘인종 간 불균형’이 올해 미국 대선 국면의 화두잖아요. 한인 사회의 목소리를 더 키우려면, BLM 운동을 비롯한 타인종 사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기자) 한인 사회가 목소리를 잘 못 낸다는 지적이 있잖아요?

리)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른 소수계 사회의 성공 사례를 배울 부분이 많은데요. 이날 회의에서 조언을 들었어요. 유대계 미국인을 대표해서 리처드 허쉬허트 미 유대인협의회(AJCㆍAmerican Jewish Committee) 로스앤젤레스 지부장이 참석했고요. 중국계 미국인을 대표해서 존 챙 전 캘리포니아주 재무장관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각 소수계 사회가 어떻게 권리 신장을 이뤄왔는지 노하우(방법)를 공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인사회와 다른 소수계 사회가 연대하는 이야기도 했고요. 구체적인 현안으로 들어가면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최소한 ‘인종차별’ 문제에서는 모든 소수계 사회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기자) 리 기자의 언론 경력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죠, 방송에 입문한 계기가 뭡니까?

리) 저도 어릴 땐, 평범한 한국계 미국인 아이들처럼 ‘커서 의사가 될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하하하,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제가 과학과 수학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전혀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했습니다. ‘메이, 네가 정말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니’라고 물었죠. 그 대답은, 제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공개 장소에서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이야기의 배경과 원인을 찾아 전체를 구성하는 것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았습니다. 이런 모든 걸 종합했을 때, 방송기자가 정답이었습니다.

기자) 그래서 대학 때 방송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겁니까?

리) 네. ‘메이, 넌 방송기자가 돼야 해’라고 저 스스로한테 말한 게 대학 2학년 때였어요. 그 뒤로는 제 삶의 초점은 단 하나, 방송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다른 분야에 기웃거린 적 없이 오직 한길로 달려왔어요. 30년이 넘은 지금도, 저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취재 현장에 가면, 언제나 새로운 일이 생기잖아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즐겁고요.

기자) 30여 년 전에는 한국계 방송 기자도 별로 없었을 테고, 더욱이 여성은 드물었겠네요?

리) 네. 제가 1세대 한인 여성 방송기자 중의 한 명이죠. 어릴 때 이야기를 먼저 할게요. 제 고향인 오하이오주에는 1970년대에만 해도 아시아계 주민이 아주 드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자라오는 내내 ‘인종주의’와 차별의 대상이 됐죠. 저를 다른 미국인들과 다르게 보도록 만드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게 저를 강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방송 현장에 개척자적인 태도로 나와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성으로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둘러싸였던 경험도 스스로 깨고 이겨내 왔습니다.

기자) 성장 과정에서 몸소 겪은 인종 문제 때문에, 보도 활동에서도 소수계 목소리에 집중한 거군요?

리) 그렇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저 자신의 경험을 보도에 녹아낼 수 있었던 거예요.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세울 수 있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올해 들어 특히 인종 문제가 각종 매체를 통해 부각되고 있잖아요? 인종 차별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실제적인 경험이 제 강점이죠.

기자) 그럼 30여 년 경험을 뒤돌아볼 때, 인종 문제에 관해 언론 보도 상황이 나아졌습니까?

리)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유색인종 사회가 (백인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보도되지 않는 게 명백하게 보이잖아요. 미국의 역사가 백인 주류에 의해 주도돼왔기 때문인데요. 이제는 대규모 개선 운동(great movement)을 통해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제가 벌이고 있는 활동이 이런 운동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데요. 저는 텔레비전(방송)을 하는 사람이라, 소수계 대표성이 더 많이 화면에 반영되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기자) 미국 언론계 종사자 중에 소수인종이 더 많아지면, 그런 문제가 해결될까요?

리) 네, 유색인종(근무자)이 매체에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들이 취재 현장에 나가서 담아오는 목소리도 유색인종의 분량이 늘어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기자) 그렇다면 전반적인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리)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미국의 종합적인 언론 자유는 매우 높다고 봅니다. 10점 만점에 8점 정도는 충분히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미국 내로 시각을 한정해 놓고 보면, 역사적인 맥락에서 발전이 더딥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각 인종의 목소리가 정확한 분량으로 보도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게, 좀처럼 나아지지 않네요. 민주주의는 언론 자유 없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 자유를 꾸준히 발전 시켜 나아야 합니다.

기자) 아쉽지만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리) 언론 자유는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나라에서나 필수입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언론 자유의 개념조차 없는 나라들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에요. 그런 나라에서는 ‘정보의 결여’가 결국 사회를 파괴할 겁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 사회에는 불신이 쌓이고 발전적인 생각은 사라집니다. 양성평등도 같은 맥락에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차별이 계속되면 불신이 커지고, 결국 사회를 망가뜨리게 됩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메이 리 전 CNN 앵커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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