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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언론인 대담] "여성 분장 시간 줄일 수 없을까요?" 정치평론가 제스 매킨토시


[여성 언론인 대담] "여성 분장 시간 줄일 수 없을까요?" 정치평론가 제스 매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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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선진국에는 정치와 언론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한때 기자였다가 유능한 정치인이 되거나, 반대로 정계를 떠난 뒤 언론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여성 중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을 오늘 초대했습니다.

민주당 수석 전략가로서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총괄 지휘했다가, 이후 5년째 정치 평론가와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 중인 제스 매킨토시 기자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스 매킨토시 정치 평론가 (제스 매킨토시 제공).
제스 매킨토시 정치 평론가 (제스 매킨토시 제공).

기자)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매킨토시) 물론이죠! 제 이름은 제스 매킨토시입니다. 원래는 정치 분석가였는데요. 지금은 언론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앞서 현실 정치에 몸담은 게 한 15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민주당 소속으로, 크고 작은 선거를 책임지고 지휘했는데요. 작게는 뉴욕시의 맨해튼 구청장 선거 대책위원장을 맡았었고요. 크게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의 수석 공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기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패했죠?

매킨토시) 네. 아주 중요한 선거였는데, 허무하게 졌습니다. 이길 줄 알았던 선거를 지고 나서, 생각이 깊어졌어요. 정치권 안에서 한계를 느끼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storytelling)에 집중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당시 선거가 비방전으로 흐르면서, 준비했던 정책과 국가 운영 비전 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게 패인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언론에 입문한 겁니다. 지난 5년간 언론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는데요. 공영 방송인 C-SPAN과 뉴스 전문 채널 CNN 등에 정치 평론가로 출연하는 중입니다. 오랫동안 정치계에서 쌓아온 인맥을 통해, 직접 취재한 현장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기자) 진행을 맡고 계신 정치ㆍ시사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시그널 부스트(Signal Boost) 쇼’라고, 위성 라디오와 팟캐스트(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청취율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죠?

매킨토시) 네. ‘시리우스XM(위성 라디오)’에서 그 쇼를 진행한 지 3년째인데요, 반응이 좋아서 감사합니다. 아침 출근 시간대에 차 안에서 방송을 듣는 분들에게, 전날 하루 동안 일어난 정치, 시사, 사회 각 분야의 이야기들을 풀어드리는 시간인데요. 청취율 순위표 위쪽에 자리하는 것은 순전히 청취자분들의 성원 덕택입니다. 특히 위성 라디오는 미국 전역에 닿기 때문에 청취율 상위권에 있는 의미가 더 큽니다.

기자) 그 프로그램을 못 들어보신 분들을 위해, 최근 다룬 내용 중에 중요한 걸 하나 꼽아주시죠.

매킨토시) 음, 최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인프라 스트럭쳐(infrastructureㆍ사회 기반시설) 투자 계획이 왜 쉽사리 성사가 안 되는지, 의회 내 분위기를 청취자들께 전해드렸고요. 바이든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에 불참하는 결정이 나온 과정도 설명했습니다. 부인 질 박사가 대신 일본을 방문하죠. 저희 프로그램은 ‘정치’와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문화’라고 하면 특정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포괄하는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정치를 기반으로, 더 큰 세상을 보는 거죠. 그러니까 방송 소재가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 저희 쇼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주제는 ‘페미니즘(feminismㆍ여성 권리 신장 운동)’입니다.

기자) ‘페미니즘’은 아침 프로그램 주제로 좀 무거운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듣기 원하는 청취자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매킨토시) 네, 많아요. ’페미니즘’ 하나만 놓고 아침 프로그램을 할 수 있냐고 물으시면, ‘그렇지 않다’고 답변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정치와 문화 등 대중적인 소재에 더해, 페미니즘을 다루는 거예요. 페미니즘이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공동 진행을 맡고 있는 절리나 맥스웰(Zerlina Maxwell) 씨는 유명한 정치 전문 기자입니다. 이렇게 여성 두 사람이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을 맡고 있는 것도 흔치 않습니다.

기자) 정치에 몸담았다가 언론인으로 변신한 계기에 관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storytelling)에 집중해야겠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앞서 말씀하셨잖아요. 그 한 가지 만으로, 15년 머물렀던 정계를 쉽게 떠날 수 있었나요? 주요 정당에서 수석 전략가를 맡은 게 여성으로서 드문 일이었잖아요?

매킨토시) 하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2016년 대선 패배 이후) 빡빡한 정계 활동이 좀 버겁게 느껴진 측면도 있어요. 좋게 말하면, 정치권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미국 정치 안에 들어가 보면, 하루하루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놀이기구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아요. 진짜로, 하루라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정치라는 게 사실, 상대방보다 더 주목받아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잖아요. 그러려면 더 참신한 전략과 메시지를 매일 매일 개발해내야 하는데, 그런 생활에 조금 지쳤습니다. 반면에, 언론으로 옮긴 뒤에는 다양한 사회 현안을 다루면서도, 눈에 더 띄어야 한다거나, 상대 정당과 진영을 압도해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이 좀 덜한 상태예요. 그래서 차분하게 이야기들을 다룰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제스 매킨토시 정치 평론가가 CNN에 출연해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CNN 제공)
제스 매킨토시 정치 평론가가 CNN에 출연해 현안을 설명하고 있다. (CNN 제공)

기자) 언론인이 되신 뒤 다룬 현안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뭡니까?

매킨토시)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음…, ‘네이럴(NARAL)’의 활동을 심층 취재해서 저희 아침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네이럴은 임신 중절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을 위한 진보 단체인데요. 이 단체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위 현장 생중계 등을 진행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면서 중절을 금지하자고 하는데, 거기에 맞서, 여성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진보 진영에서는 믿거든요. 저희 쇼(시그널 부스터) 6회 차에 관련 사안을 처음 다뤘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기자) 정치권 15년과 언론계 5년, 도합 20년 동안 전문가로 활동하시면서, 여성이라서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은 없었나요?

매킨토시) 아유, 물론 어려웠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많지만 하나만 예를 들어볼게요. 텔레비전에 평론가로 출연하러 가면, 스튜디오로 향하기에 앞서 최소 40분을 분장실에 앉아있어야 합니다. 제가 고정 출연하고 있는 C-SPAN과 CNN, 그리고 (진보 매체인) MSNBC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부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는 (보수 매체) 폭스뉴스도 같아요. 머리를 예쁘게 단장해야 하고, 눈썹을 다듬습니다. 두꺼운 화장은 기본이고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 추가되는 겁니다.

기자) 남성 출연자도 기본적인 분장을 하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매킨토시) 맞아요. 남성 출연자들도 분장을 합니다. 그런데, 여성들보다 훨씬 간단해요. 신속히 얼굴 윤곽을 정리해주고, 차림새를 점검한 뒤 스튜디오로 직행합니다. 불과 한 5분에서 10분 정도 걸려요. 여성 출연자보다 30분 이상 시간을 버는 겁니다.

기자) 분장 시간의 성별 차이가 그렇게 의미 있는 사안인가요?

매킨토시) 물론이죠.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요, 프로그램 준비 과정에서 여성 출연자가 배제되는 겁니다. 제가 분장을 마치고 스튜디오에 가보면, 남성 출연자들끼리 이미 방송에 앞서, 주제에 관한 의견 교환을 마무리하고 있어요. 여성인 저는 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여성 출연자는 깊이 있는 발언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름대로 취재를 많이 하고 프로그램에 임하더라도, 그날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방송은 실패로 돌아가니까요.

기자) 결론은 여성 출연자들의 분장 시간을 좀 줄이자,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요?

매킨토시) 네. 여성 출연자가 분장실에 앉아있는 40분이 결국, 프로그램 참가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된다면 그게 무슨 이로움이 있을까요? 누구도 그걸 바라지 않을 겁니다. 시청자들께서 보도 프로그램을 보실 때, 기자와 평론가가 ‘얼마나 예쁜지’를 평가하시나요? 아니잖아요. ‘얼마나 깊이 있는 보도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통찰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지’ 이런 걸 보시는 겁니다. 남녀 출연자의 분장 시간 차이가 언뜻 작은 일 같지만, 언론계 ‘양성평등’ 구현에 중요한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여성 출연자 분장 시간을 줄여서, 남성과 동등하게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해줄 수 없을까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방송국들의 결단에 달린 문제예요.

기자) 방송사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셨는데, 취재 현장에서는 양성 간에 그런 차이가 없습니까?

매킨토시) 있죠.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법원을 취재할 때 겪은 일인데요. 한 판사가 저를 만날 때마다 외모 평가를 했어요. 심지어 그날 입은 옷이 제 몸매에 잘 맞는지까지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판사라서 법을 잘 아는 분이라, 성희롱 관련 법규에 걸리지 않을 수준으로만 발언했어요. 제 입장에선 아주 정교한 여성 차별로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그동안 정치와 언론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을 하나씩 꼽으면 뭡니까?

매킨토시) 가장 나빴던 일부터 말씀드릴게요. 두말할 필요 없이, 민주당 당직자 시절 맞았던 2016년 대선 패배입니다. 개표 윤곽이 드러날 시점에 저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함께 있었는데, 그 눈빛을 아직도 있을 수가 없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깊은 실망감이 담겨있었죠. 그런 심정은 후보와 저를 비롯한 보좌진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좋았던 일은 언론에 몸담은 뒤에 일어났습니다. 최근 여성들이 정 관계 고위직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현상이에요. 제가 라디오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매킨토시) 음, 우리(미국)의 언론 자유는 ‘아주 좋은(pretty good)’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great)’ 수준까지는 못 미치더라도요. 최소한, 권력이 두려워서 할 말을 못 하는 ‘자기검열(self interrogation)’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언론인이 보도 내용 때문에 감옥에 가거나, 처벌을 받는 일을 미국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요. 이렇게 여러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봤을 때, 미국의 언론 자유는 월등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건국 당시부터,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점을 인식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언론 자유 보장을 헌법(수정헌법 1조)에 명시했고, 지금도 지켜나가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자유가 지나친 면도 보여요. 일방적인 진영 논리를 설파하는 매체들까지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기자) 일방적인 진영 논리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매킨토시) 최근의 예를 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관한 음모론을 여과 없이 방송한 매체가 있습니다. 보수 진영 평론가를 출연 시켜, 백신의 효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그대로 내보냈는데요. 그 평론가는 정치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보건이나 의학 분야에 지식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특정 정파에 관한 우호 여론 또는 비판 여론을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방송이었는데요. 근거가 있는 비판이었다면 ‘언론 자유’ 범주 안에서 보호해줘야 하지만, 밑도 끝도 없고 무책임한 보도에 관해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나친 자유가 건강한 여론 형성에 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요.

기자) 여성으로서 정계와 언론계에서 모두 성공적인 경력을 일궈오셨는데, 앞으로 계획은 뭡니까?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 거라고 기대하세요?

매킨토시) 아이고, 저희 어머니께서 자주 물으시는 질문을 하시네요. 하하하. 몇 년이 흘러도 지금과 변함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론 활동을 통해 미국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특히 양성평등 문제에 초점을 맞춘 보도와 비평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자)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매킨토시) ‘언론 자유’란, 우리(언론인들)가 보고 있는 것들에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어난 현상 그대로, 보태거나 빼는 일 없이, 비틀거나 한쪽으로 기울이는 노력 없이 대중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언론인들에게 이런 ‘솔직함’을 보호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양성평등’이라고 하면, 흔히들 여성 문제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닙니다. 남성들도 문제의 영향을 받거든요.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남성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이 쏠리고, 부당한 책임을 추궁합니다. 예컨대, 남성은 감정 표현을 절제해야 한다든가, 남성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가, 이런 관념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동일한 인격체이고, 동일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제스 매킨토시 정치 평론가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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