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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실용적인 전화기 개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인물 아메리카] 최초의 실용적인 전화기 개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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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은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전화기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태어난 날입니다. 이 시간에는 인류의 통신수단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그의 생애와 업적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처음으로 '실용적인' 전화기를 만든 발명가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벨은 통신기술 뿐 아니라 일생 동안 청각 장애인 교육과 발성, 웅변, 광선 전화, 항공기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큰 기여를 한 과학자입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1847년 3월 3일,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알렉산더 멜빌 벨과 어머니 엘리자 그레이스 사이먼즈 벨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는 북부의 아테네라고 불리울만큼, 문화, 예술, 과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는 그러한 환경과 과학자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 엘리자는 알렉산더를 집에서 가르쳤습니다.

알렉산더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청각 장애인을 위한 언어 치료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알렉산더의 어머니도 12 살에 청력을 잃은 분이었고, 나중에 결혼한 부인도 청각 장애자였습니다. 또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는 웅변 교육의 권위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른들은 알렉산더가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훈련시켰습니다.

1865년 가족은 런던으로 이주했습니다. 알렉산더는 University College London에 들어가 음성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함께 청각 장애인 연구에 동참하고, 청각연구소 운영을 이어받았습니다.

벨 가족은 1870년 캐나다의 온타리오를 거쳐 1871년에는 미국 보스톤으로 이주했습니다. 24살이 된 알렉산더는 보스톤 농아학교와 클락 스쿨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여러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낸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전화기였습니다.

앞서 벨은 미국 보스톤으로 이주하면서 한쪽 방향으로만 신호를 보내던 전신을 각기 다른 주파수를 이용해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벨은 전기 기술자인 토마스 왓슨을 조수로 고용해 쌍방향 전신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보스톤 지방 투자가 토마스 샌더스와 가드너 허바드의 재정 지원을 받았습니다. 허바드는 나중에 장인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쌍방향 전신 실험을 거듭하던 벨은, 신호를 보내는 대신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보내는 방법을 없을까 하는데 차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 전송에 흥미를 갖게 된 조수 왓슨도 새로운 분야의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투자가들도 목소리 송신에 흥미를 느껴 지원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론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1876년 3월 7일, 특허가 내려지고 목소리로 통신을 한다는 이론은 법적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의 최초 개발인, 또 이를 둘러싼 특허 논쟁은 오랫동안 계속됐습니다.

드디어 1876년 3월 10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마침내 자신이 개발한 전화기로 사상 최초의 통화를 했습니다. 이날 벨은 액체 송수신장치의 통을 두드리며 소리쳤습니다.

“이보게 왓슨, 이리로 좀 와보게. 볼일이 있어!”

벨은 전선을 통해 소음이 들리는 것을 감지하고 거기에다 대고 왓슨을 불러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쨋든 왓슨은 벨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연구 끝에 달성한 사상 최초의 전화 통화였습니다.

그후 벨은 여러 공개장소에 나아가 전화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때마다 더 먼거리에서 통화를 했습니다.

벨은 1877년 ‘벨 전화회사(The Bell Telephone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오늘날의 AT & T의 전신입니다.

벨은 같은 해 마블 허바드라는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마블은 어려서부터 청각 장애를 갖고 있었고, 알렉산더로부터 발성을 배운 학생이었습니다. 또 초창기 재정지원자 가드너 허바드의 딸이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벨은 전화기 발명 문제로 워싱턴 디시에서 법정 소송에 직면했습니다. 다른 인사들이 벨보다 먼저 전화기를 발명했거나 그 이론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그후 18년 동안 벨 전화회사는 무려 550건에 달하는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그중 여러 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벨 전화회사를 문 닫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허를 둘러싼 법정 싸움이 계속되는 중에도 벨 전화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877년과 1886년 사이 10여년동안 15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전화기를 갖게 됐습니다. 전화기의 기술도 늘어났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마이크로폰을 발명하자 그것을 전화기에 설치함으로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1888년에는 지하 전화선이 설치됐습니다.

1893년에는 벨의 전화기 특허권이 만료돼 다른 업체들도 전화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벨 전화회사의 입지는 탄탄했습니다. 1915년 1월 25일에는 최초로 대륙횡단 전화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벨은 이제 기업경영을 허바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발명과 학문적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벨은 1880년 워싱턴 디시에 볼타 연구소를 설립하고 발명에 집중했습니다. 1890년대에는 4면체의 연과 프로펠러 등 하늘을 나르는 기계를 연구했습니다.

1907년에는 젊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항공실험 협회를 조직하고, 실버 다트(Silver Dart) 를 비롯한 비행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실버 다트는 캐나다에서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벨은 빛의 광선에 소리를 전달할 수있는 장치인 포토 폰을 발명했습니다. 전화기 발명으로 유명 했음에도 불구하고 벨은 포토 폰을 자신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명은 오늘날의 레이저 및 광섬유 통신 시스템의 기반이 됐습니다.

벨은 여러가지 발명을 하면서도 일생을 통해 청각 장애자를 돕는 집안 전통의 사업을 계속했습니다. 벨은 1890년 ‘미국 청각장애 발음교육 증진협회’라는 기구도 설립했습니다.

벨은 당시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과학 연구소 National Geographic Sosiety 회장이 됐습니다. 회장이 된 벨은 이 연구소의 정기 간행물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월간지로 끌어올렸습니다. 벨은 과학 전문지 사이언즈 매거진 설립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1922년 8월 2일, 캐나다에서 75세로 타계했습니다. 그가 사망하자 미국의 천 4백만 전화 가입자는 1분 동안 통화를 중단하고 그를 추모했습니다.

전화기 발명을 둘러싸고 많은 경쟁과 특허권 다툼이 있었지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새로운 통신 시대를 여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과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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