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영국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는 일은 대단히 드문 일인데요, 이번엔 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군요?
답) 그렇습니다. 시위와 관련해 영국 학생과 프랑스 학생들이 좋은 비교 대상이 되는데요, 프랑스 혁명의 전통을 지닌 프랑스 학생들이 시위에 적극 참가했다는 소식은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영국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영국 신사라는 말이 있듯이 금욕주의의 전통이 강한 영국 학생들의 유전자 속에는 시위와 관련한 유전자가 없다고 표현하는 작가들도 있었는데요, 지난 11월 초부터 수 많은 영국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가두 시위를 벌이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문) 웬만해서는 시위에 나서지 않던 영국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가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군요?
답) 영국 정부가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예산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영국 대학들은 주로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지원금의 무려 80%가 줄어들게 됩니다.
영국 대학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대신 영국 정부는 대학들이 받을 수 있는 등록금의 상한선을 올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현재 미국 돈으로 연간 5천1백50 달러인 등록금 상한선을 최고 1만4천 달러로 약 3배 가량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대학 등록금 외에도 생활비와 교육에 관련된 다른 비용과 용돈 등을 고려하면 학생들의 부담은 지금보다 훨씬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문) 결국 학생들이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3배나 많은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영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영국 대학의 장기적 자금 조달 방안과 합리적 등록금 책정을 심의한 브라운 보고서의 건의에 따른 것입니다. 브라운 보고서는 정부 지원을 의학, 과학, 공학, 외국어 같은 전략 분야에 집중시키고 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는 시장 원리에 따라 학생이 교육비를 부담하게 만들도록 권고했습니다.
문) 영국은 1998년까지만 해도 대학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 졌었는데요, 10여 년이 지난 지금 돈이 없으면 대학 교육을 받기가 어려워지겠군요?
답) 그렇습니다. 특히 빈곤층 학생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요, 최근 영국에서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1년에 대학 등록금을 7천8백 달러로 올릴 경우 빈곤층 학생의 절반 가량이 대학에 지원하지 못할 것으로 나타났구요, 등록금을 1만4천 달러로 올릴 경우 그 비율은 무려 3분의 2로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 이런 상황이 학생들을 시위로 내몰고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답) 그렇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한 학생은 교육비가 오르는 건 사람들에게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등록금이 그렇게 비싸지면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고 하소연 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또한, 중산층 학생들도 불만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인데요, 대학 학비가 계속 올라갈 경우 과연 대학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재정적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들이 왜 희생돼야 하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문) 이런 가운데, 영국 학생들의 반발이 계속 확산되면서 점점 더 거세지고 있지요?
답) 그렇습니다. 지난 달 초에 열린 시위에는 5만 명 정도가 참가한 것으로 추산됐는데요, 24일 열린 두 번째 시위에는 그 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30일 열린 세 번째 시위는 영국 런던 뿐 아니라 남서부의 브리스톨과 콜체스터, 북부의 셰필드와 리버풀 등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됐고, 곳곳에서 지방의회를 점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위과정에서 런던 한 군데서만 1백46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문) 학생들 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군요?
답) 그렇습니다. 정부의 지원이 삭감되면 많은 순수 학문들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원리에 따를 경우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없는
예술과 인문학은 정부의 새로운 방침이 시행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문) 앞으로 전망이 어떤가요? 당분간은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될 것 같은데요?
답) 최소한, 영국 의회가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는 오는 9일 까지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의회 표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가 될 텐데요, 통과한다면 또 다른 시위가 촉발될 가능성이 있구요, 만일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다면 연립정부 붕괴 같은 또 다른 정치적 위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은 지난 번 총선 선거 운동 때 등록금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위 학생들은 자민당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고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