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혁신,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 소개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는 '구석구석 USA', 오늘은 '미국을 변화시킨 혁신' 시간입니다. 조상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기자) 오늘 소개할 미국의 혁신은 지금 여러분 손안의 스마트폰에도 들어 있는 기술, 바로 위성항법시스템(GPS)입니다. 길 찾기부터 배달과 승차 공유 서비스까지 이제는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인데요, GPS는 미국 국방부가 개발한 시스템입니다. 1973년 미 국방부가 여러 군 실험을 통합해서 '내브스타 GPS(NAVSTAR GPS)'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발 사업을 출범시켰고, 지금도 미 우주군(Space Force)이 위성을 운용하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변화를 불러온 핵심 기술,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원래 군사 목적으로 개발되던 GPS를 민간에 개방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참사라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1983년 9월,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항로를 이탈해 옛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다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된 바로 그 비극적 사건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당시 그 사건은 탑승자 269명 전원이 목숨을 잃은 참사였습니다. 당시 이 여객기는 항법 과정의 오류로 예정 항로를 크게 벗어나 옛 소련 영공에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에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뿐 아니라 자유세계의 리더 역할을 했던 미국 사회 전체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사건 직후, GPS가 가동되면 민간 항공기도 이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진행자) 원래는 GPS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다는 건데 어떻게 처음 개발된 기술인가요?
기자) GPS의 뿌리는 1957년 옛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스푸트니크가 보내는 전파 신호를 관찰하다가, 위성이 가까워지고 멀어질 때 신호 주파수가 미세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이 원리를 거꾸로 이용하면 위성의 위치를 알 때 지상에 있는 물체의 위치도 계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미 해군은 이 원리로 잠수함이 스스로 자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초기 위성항법 시스템을 만들었고, 1973년에는 국방부가 여러 실험을 하나로 통합해 지금의 GPS, 이른바 '내브스타(NAVSTAR)' 계획을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진행자) 첫 GPS 위성은 언제 발사됐습니까?
기자) 1978년입니다. 이후 수년에 걸쳐 시험용 위성을 계속 쏘아 올렸는데요, 1983년 대한항공 사건 이후 민간 이용 방침이 발표됐음에도, 기본 위성군이 갖춰져 전 세계에 정식 항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도 한참 지난 1995년이었습니다.
진행자) 그 사이에 GPS가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사건도 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막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뚜렷한 지형지물이 없어 병력과 장비의 위치 파악이 몹시 어려웠는데요, 이때 아직 완전 가동 전이었던 GPS가 미군의 이동과 작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걸프전은 GPS가 대규모 군사작전에 본격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전쟁으로 평가됩니다.
진행자) 그렇게 해서 90년대부터 민간에 개방됐는데, 그런데 처음에는 민간에 개방하면서도 일부러 정확도를 낮췄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미 국방부는 혹시라도 적대 세력이 GPS를 정밀 유도무기 등에 악용할 것을 우려해, 1990년부터 일반 민간용 신호에 일부러 오차를 주입해 위치 정확도를 100미터 안팎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이른바 '선택적 이용 제한(Selective Availability)'이라는 조치였는데요, 이 제한은 2000년 5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전격 해제됐습니다. 그러자 민간용 GPS의 오차가 최대 100미터 안팎에서 20미터 이내로 줄었고, 실제로는 10미터 이하의 정확도도 흔히 관측됐습니다. 이 조치는 오늘날 정밀한 지도와 차량 내비게이션, 위치 기반 서비스가 대중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진행자) GPS에 얽힌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도 있다고 하던데요. 이건 무슨 이야기인가요?
기자) GPS 위성에는 정밀한 원자시계가 실려 있는데요, 그런데 우주를 빠르게 도는 이 시계는 지상의 시계와 조금씩 다르게 갑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위성이 워낙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하루 7마이크로초씩 느려지지만, 지구 중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하루 45마이크로초씩 빨라집니다. 둘을 합치면 위성 시계는 지상보다 하루 약 38마이크로초, 그러니까 1초의 100만분의 38 정도 더 빨리 가는 셈인데요.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이걸 그대로 두면 위치 오차가 하루에 10킬로미터씩 쌓입니다. 그래서 위성을 쏘아올리기 전부터 이 오차만큼 시계를 미리 느리게 맞춰서 보정한다고 합니다.
진행자) 정말 정밀하게 설계된 GPS인데요. 지금은 내비게이션 말고도 정말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쓰이지 않는 곳을 찾는 것에 오히려 더 빠를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인데요. 스마트폰 지도 앱은 물론이고, 승차 공유나 음식 배달 서비스, 정밀 농업에서 트랙터 자동 운전, 재난 발생 시 구조대원 위치 파악까지 다양하게 쓰입니다. 또 금융 거래의 정확한 시각을 기록하고, 통신망과 전력망을 동기화하는 데도 GPS의 시간 신호가 활용되는데요, 군사 기술로 시작된 GPS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와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GPS를 미국이 전 세계에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는 민간용 GPS 신호 자체를 별도의 직접 이용료 없이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럽연합(EU)의 갈릴레오(Galileo),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중국의 베이더우(BeiDou) 같은 경쟁 시스템도 등장했지만, 미국의 GPS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위성항법 시스템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행자) 결국 냉전 시기의 군사 기술에서 출발해서, 한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민간 개방이 앞당겨지고, 지금은 전 세계인의 일상 기술이 된 셈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스푸트니크 신호를 관찰하던 과학자들의 호기심에서 시작해 잠수함 항법 기술로, 그리고 대한항공 007편의 비극을 거쳐 지금의 스마트폰 지도까지, GPS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모습을 바꾸며 발전해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자율주행차와 도심항공교통 같은 새로운 기술이 확산할수록, GPS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냉전에서 스마트폰까지 이어진 GPS 이야기, 조상진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VOA 뉴스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