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해 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입니다. 조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얘기인가요?
기자: 네. 미국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열기구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리는데요. 그중 하나가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테이츠빌에서 열리는 ‘Carolina BalloonFest’입니다. 올해 행사는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데요, 열기구들이 한꺼번에 하늘로 올라가는 비행과 함께, 해 질 무렵 열기구를 밝히는 ‘Balloon Glow’와 열기구 대회 등이 진행됩니다.
진행자) 그런데 열기구가 미국 역사에서 축제나 레저용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 미국 남북전쟁에서는 열기구가 군사 정찰에 활용됐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에는 아직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군은 열기구를 띄워 지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적군의 진지와 병력 움직임을 하늘에서 관찰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실제 군사 정찰에 활용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태디어스 로우(Thaddeus S.C. Lowe)라는 열기구 전문가였습니다. 로우는 열기구를 이용해 적군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미국 정부에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시에는 열기구를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기자: 맞습니다. 당시 열기구는 오늘날의 비행기처럼 조종할 수 있는 항공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북군은 대부분 열기구를 지상에 줄로 연결한 상태에서 띄웠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적군의 위치를 관찰한 뒤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는데요. 일부 대형 열기구에는 여러 명이 함께 탈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하늘에서 적군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상당히 큰 변화였겠네요. 그런데 관찰한 정보를 지상에 어떻게 전달했습니까?
기자: 바로 이 부분이 로우의 아이디어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로우는 열기구와 지상을 전보로 연결했습니다. 1861년 6월에는 워싱턴 D.C.에서 열기구를 띄운 뒤, 하늘에서 관찰한 내용을 지상으로 전보를 보내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당시 과학자 조셉 헨리(Joseph Henry)도 이 실험을 지켜봤고, 열기구와 지상 사이의 전보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진행자: 하늘에서 내려다본 정보를 전보로 바로 지상에 전달했다는 거군요. 당시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도 이 기술을 직접 봤습니까?
기자: 네. 조셉 헨리는 로우를 전쟁부 장관과 링컨 대통령에게 소개했고, 로우는 워싱턴에서 열기구의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직접 시연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기술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로우의 시연 이후 북군은 그를 고용해 군사 정찰용 열기구 부대를 조직하도록 했습니다. 로우는 이후 북군의 최고 열기구 담당자로 활동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실제 전투에서도 열기구가 사용됐습니까?
기자: 네. 실제 전투와 군사 작전에 사용됐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862년 버지니아주에서 벌어진 페어 오크스 전투입니다. 로우는 ‘인트레피드(Intrepid)’라는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서 남군의 진지와 병력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열기구에서 관찰한 정보는 전보를 통해 지상으로 전달됐고, 지상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남군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단순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군사작전에 정보를 제공한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열기구에서 관찰한 내용을 지도에 표시하기도 했고, 일부 경우에는 적군의 위치를 파악해 포병 사격을 조정하는 데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즉, 하늘에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전보를 통해 지상에 전달하는 방식이 실제 전쟁에서 사용된 겁니다.
진행자: 지금의 드론이나 정찰기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기자: 역할만 놓고 보면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전혀 다른 장비인데요. 오늘날 드론이나 정찰기는 하늘에서 이동하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당시 열기구는 지상에 연결된 줄에 의존했고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늘에서 전장을 관찰한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에는 새로운 군사 기술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열기구를 전쟁터에 띄우는 일이 상당히 위험했을 것 같습니다.
기자: 실제로 위험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1862년에는 북군 장군 피츠 존 포터(Fitz John Porter)가 직접 열기구를 타고 버지니아주 요크타운 주변을 정찰하다가 연결된 줄이 끊어지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열기구가 남군 진영 쪽으로 떠밀려갔지만, 포터 장군은 공중에서 남군의 진지를 관찰하고 지도에 위치를 표시한 뒤 결국 북군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열기구 정찰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도 보여줍니다.
진행자: 기술적으로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실제 전쟁터에서는 위험과 한계도 분명했던 거군요. 이 열기구 부대는 얼마나 오래 운영됐습니까?
기자: 북군의 열기구 부대는 1861년부터 운영됐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로우는 1863년 사임했고, 열기구 부대도 같은 해 해체됐습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의 실험으로 끝났다고 해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행기가 등장하기도 전인 1860년대에 이미 미국에서는 하늘에서 전장의 정보를 얻고, 전보를 통해 그 정보를 지상에 전달한다는 새로운 방식을 실제 군사작전에 적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진행자: 오늘날에는 열기구를 축제와 레저로 즐기지만, 160여 년 전에는 전쟁터의 정보를 얻기 위한 새로운 기술로 활용됐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기술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정보를 얻고 활용하려는 발상은 계속 발전해왔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노스캐롤라이나 행사처럼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즐기고 있는데요. 남북전쟁 당시에는 같은 열기구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겁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이런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의 혁신이 거대한 발명품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시험했던 다양한 시도에서 발전해왔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오늘날 축제의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가 한때는 남북전쟁의 군사 정찰에 활용됐다는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조진우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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