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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겁탈' 저자 아이리스 창 사망 - 그의 업적과 문학 세계 - 2004-11-19


최근 중국계 미국 여성 저술가, 아이리스 창의 사망소식은 국제 주요뉴스로 널리 보도되면서,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을 애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지난 11월 9일, 캘리포니아주, 로스 하토스 인근에서 자살로 보이는 총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 여섯이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생전에 집필한 세 권의 저서 가운데 특히 ‘ 난징의 겁탈 The Rape of Nanking: 제2차 세계대전의 잊혀진 대학살’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책은 1937년 일본군이 난징의 중국인들을 잔혹하게 다루었던 참상을 기록했습니다.

최근에 유명을 달리한 중국계 미국 여성작가, 아이리스 창의 생전 활동에 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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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창은 불과 서른 여섯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세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 하나는 ‘ 누에의 실’ / ‘ Thread of the Silkworm’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중국 태생의 한 과학자가 미국에서 우주탐험 개척을 위해 활동하다가 1950년대 초에 미국에서 반공선풍이 한창일 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중국으로 추방된 것을 배경으로 하는 저서입니다. 중국으로 추방된 이 과학자는 나중에 중국이 ‘실크웜’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있어 핵심역할을 했습니다.

이 책 다음에 나온 ‘ 난징의 겁탈’/ ‘ The Rape of Nanking‘ 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의 수도인 난징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책입니다. 그리고 아이리스 창의 마지막 저서는 자신의 가족처럼 미국에서 이민자들이 인종차별에 맞서야 하는가를 기록한 ‘미국속의 중국인’ / ‘ The Chinese in America ‘입니다.

워싱턴에 있는 공공정책 연구소 ‘뉴 아메리카 재단’의 아시아 전문가, 스티븐 클레몬스씨는 아이리스 창이 용기있고 명철한 두뇌의 젊은 역사가였다고 회상합니다.

"아이리스 창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아시아에 관해서만 아니라 미국내 인종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광범위한 논쟁에 막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오늘 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과거사와의 화해가 미국인 각자에게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샴페인-어바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중국 이름은 장춘루입니다. 아이리스 창은 영어와 중국어를 똑같이 유창하게 구사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1930년대 말 일본군이 난징에 들이닥치자 그곳을 탈출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어렸을 때 그런 조부모로부터 난징 학살사태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다고 한 텔레비전 방송의 작가와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말했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난징 대학살이 어찌나 끔찍스러웠던지 수 천 , 수 만 명의 중국인들이 살륙당하고 그 시체들이 양쯔강에 던저져 강물이 붉게 물들다싶이 했었다고 말해주곤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다음에 그 것에 관해 더 알아 보리라고 마음먹었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다른 어린 중국계 아이들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미국의 도서관들에서는 난징에 관한 책들을 별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나중에 난징 대학살에 관한 누락된, 빠진 부분의 얘기들을 천부적인 재능으로 찾아내 그 것을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아이리스 창의 출판 대리인이었던 베이식 북스 출판사의 수잔 라비너 편집인은 아이리스 창은 뛰어난 대담자로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얘기를 끌어냈으며 또한 지칠줄 모르는 진리의 탐구자였다고 말합니다. . 아이리스 창은 저서, ‘ 난징의 겁탈’의 호소력을 높여준 한 인물을 찾아냈습니다.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이 자행되던 당시 난징에 있던 한 독일인을 찾아낸 것입니다. 나치 당원이었던 그 독일 사람이 당시 수 많은 중국인들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내용을 기록한 일기장을 그 후손으로부터 입수해 저술에 인용했다고 라비너씨는 지적합니다. 아이리스 창은 또 자신의 저서에 소개된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진정으로 자신의 고통으로 느꼈습니다. 뉴 아메리카 재단, 스티븐 클레몬스씨는 아이리스 창은 어떤 문제들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심없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파고들곤 했다고 말합니다.

아이리스 창의 남편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과의 대담에서 말했듯이 아이리스 창은 믿을수 없을 만큼 무한대로 저술활동에 혼신을 다 바쳤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자신이 발굴해낸 고통스러운 소재들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신적 우울증에 걸려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리스 창은 사망할 당시 제2차 세계대전때 바타안 반도에 있는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미국 군인들에 관한 얘기를 집필중이었습니다.

다시 수잔 라비너 편집인은 또다시 아이리스 창은 혼자힘으로 감당하기에 매우 힘든 암울한 얘기들을 듣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아이리스 창은 25세때부터 인권침해에 관해 알게 됐고 그 것이 자신의 생활의 초점이 됐다면서 라비너씨는 누구든 그 지경에 이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한편, 아이리스 창의 저서들은 논란을 불러일켰고 특히 일본에서 더욱 그러했지만 아이리스 창의 저서는 국경을 초월하는 강한 호소력을 담고 있다고 수잔 라비너 편집인은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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