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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어려운 아프가니스탄 취재 - 2001-10-25


미국의 소리 아이리스 마클러 기자는 한달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 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클러 기자는 기자로써, 그리고 여성으로써,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방에서 생활하고 일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취재차 출장을 간다고 했을때 많은 친구들은 염려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탈레반이 장악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북부, 전 국토의 약 10%밖에 안되는 극히 작은 지방으로 갈 것이었기때문에 그리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가보니 실제로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일하기가 극도로 힘든 곳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까지 일해본 나라중 가장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 기간 시설이 존재하지 않거나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현대의 취재 활동은 전자 장비와 양호한 통신 시설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소도시 코자 바하우딘에는 그런 것들이 극히 부족했습니다. 인구 3만 5천명 정도의 사막 분지에 있는 그곳은 난민촌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도시였습니다. 가옥은 흙벽돌로 지어졌으며, 포장 도로도 없고, 수돗물도 없으며, 하수 시설이나 전기도 없었습니다. 일단 해가 지면 완전한 암흑이었습니다. 모래위를 덜컹거리며 다니는 러시아제 집차나 칼라쉬니코프 만 없다면, 구약 시대를 사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화장실은 땅에 구덩이를 판 것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자들이 늘어나면서 구덩이 한 곳을 100명이 함께 사용해야 했습니다. 코자 바하우딘은 몰려드는 기자들을 위해 아무런 준비가 돼있지 않은 도시입니다. 호텔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기자들이 머물고 있던 외무부 일대는 금새 천막촌으로 변했습니다.

캠프를 치고 일을 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특히 코자 바하우딘 의 기후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올 여름 기온은 섭씨로 50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겨울에는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려갈수 있습니다. 열기는 밀가루 처럼 가늘면서도 거치른 먼지로 인해 더욱 참기 어려워 집니다. 그런 먼지는 없는 곳이 없고, 옷이든, 눈이든, 장비든 어디라도 새어들어 갑니다. 본격적인 먼지 폭풍이 시작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먼지로부터 해방될 길이 없습니다. 지독한 먼지 폭풍이 닥치면, 걸을 때는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하고, 먼지로 인해 대기는 폭설이 내리는 것 처럼 흰색입니다. 여러 텔레비전 취재진은 장비가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돼 일을 중단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번 폭풍이 처음이냐고 물었을때쯤 나는 내가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을 하기 어려운 요인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코자 바하우딘에서 여성은 격리된 존재입니다. 여성은 걸을때도 떨어져서 걸어야 하고, 머리위에서 발끝까지 밝은색의 버카스로 덮어야 합니다. 여성의 얼굴은 들여다 볼수가 없습니다. 여성들은 쓰고 있는 베일의 망사를 통해서만 앞을 볼수 있습니다. 비록 이곳이 탈레반 장악 지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슬람 교리는 엄격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흔히 여성들을 볼수 있는 시장이라 하더도 여성에게는 닫혀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을 고수하는 이 지역 사령관의 명령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외출할때는 머리에서 발까지 베일을 쓰고, 머리는 스카프로 감고 선 글라스를 끼고 나갑니다. 비록 일부분이긴 하지만 나의 얼굴이 약간 내비쳐져,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가는 곳마다 남자들의 지꺼리는 소리가 따라다녔습니다. 시장에서 사과를 사거나 구두끈을 사는등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러 엄청난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취재에도 지장을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야포 공격과 폭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격은 먼곳이었습니다. 돌아가면 나는 카불과 탈레반, 그리고 임박힌 겨울에 좀더 가까이 닥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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