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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 북한 호위사령부 김정률 대좌, ‘현대자동차 가보고 싶다’


북한의 호위사령부 대좌 출신으로 1974년부터 20년 간 유럽에서 활동했던 김정률 씨가 지난 달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재자에게 봉사하며’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유럽에 머물면서 북한 정권 수뇌부를 위해 외제 물품을 조달하는 일을 했던 김 씨는 이 책에서 김일성 주석의 사치스런 생활을 폭로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빈에 거주하고 있는 김정률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문)김정률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고향 얘기를 좀 해봤으면 좋겠는데요. 언제,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답)1935년 2월1일 평안북도 태천군 장린면 마평동. 1935년이면 일제시대입니다. 일제 통치 하입니다.

문)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답)저희 부친은 김신규. 1917년생이고 빈농이셨습니다. 농민이었습니다.

문)김책공대는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답)17살 때 북한 교육성에서 노동을 했습니다. 프린트공으로 일을 했는데, 거기 교육성 직원들이 전부 선생님입니다. 선생들이 나보고 ‘공부해라, 일은 나중에 해도 되니 공부하라’고 충고해서 학교에 갔습니다. 17살 때 김책공대에 갔습니다.

문)유학은 아무나 가는 것은 아닌데, 공부를 잘하신 모양이죠?

답)1천2백 명이 시험을 쳤는데, 10대1의 투쟁인데, 제가 합격해서 동독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1955년부터.

문)동독에서 기계설계학을 공부하셨는데, 어떻게 김일성 주석의 호위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에 들어가셨습니까?

답)처음에 설계한 것은 김일성의 원자탄 방공호를 만들게 됐는데, 방공호를 다 지으니까, 독일 유학 한 것을 알고 군복을 입게 됐어요. 1970년대 초부터 김일성이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게 됐어요. 벤츠차가 600형이 제일 큰데 그거 타기 시작했는데, 그걸 많이 사왔죠.

문)김일성 주석이 차를 타고 가면 인민들이 다 절을 해야 한다고요?

답)김일성이 벤츠차를 타고 가면 내가 부서의 부부장이었으니까, 내가 예비차를 타고 따라가거든요. 현지 지도, 인민들이 모르고서 땅에 코를 박고 절을 하지 않으면 김일성이 성을 내요. 저 사람들이 왜 절을 안 하는가. 환영을 하는 것을 강제로 받겠다는 것이지요. 만세 소리를 강제라도 듣겠다는 것이지요.

문) 20년 간 유럽에서 많은 물건을 수입했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을 조달했습니까?

답)제일 중요한 것은 김일성, 김정일 독재자들의 호위하는 것입니다. 모든 탐지기, 금속탐지지 무슨 탐지기. 그리고 비화 전화기. 그리고 김일성 별장에 들어가는 설비를 샀습니다. 고급 금박 창문, 주단, 벽지, 벽지도 명주로 된, 형편없이 비싸지요.

문) 유럽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돈이 들었을텐데요. 1년에 김 선생님이 물건 구입에 사용한 돈이 한 1천만 달러 정도 됩니까?

답)오스트리아에서 사는 것은 실링이었습니다. 적어도 5백만 달러,1천만 달러.

문) 돈은 어디서 받아갔습니까? 주석궁에서 받아갔습니까, 노동당에서 받아갔습니까?

답)북한의 재정부는 돈이 없고, 노동당의 중앙 당에 따로 39호실이 있어요. 중앙 당의 재정부죠. 거기서 직접 돈을 지불하죠. 그러니 일이 제대로 되겠어요.

문)김일성 주석은 주체를 강조하면서 왜 외제 물건을 그렇게 좋아합니까?

답)내가 탈북한 동기가 바로 그거예요. 왜 거짓말을 하고 인민들을 속이면서 자기는 잘 살고. 김일성은 눈만 뜨면 자기 조국 것을 사랑하고 외국 것을 반대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외국차를 타요. 미국의 링컨 리무진에 캐딜락에 별거 다 있어요.

문)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보셨을텐데, 어떻든가요?

답)김정일, 만나보면 다 사람이죠, 한국말도 하고 생기기도 사람처럼 생겼죠. 그러나 그 정치, 사상, 두뇌가 악마적이란 말이에요. 김정일이 좋아하는 여배우가 있었어요. 우인희라고, 그 여배우가 한번 실수를 했어요. 개인숭배와 관련된 실수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김정일이)우인희를 무자비하게 공개 처형해서 죽였어요. 아무 재판도 안하고.

문)김 선생님은 외국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북한의 특권계급 이었는데, 왜 탈북했는지 궁금합니다.

답)모든 기자 선생들이 같은 질문을 하는데, 너 20년 동안 외국 다니면 달러도 많고 잘 살텐데 왜 탈북하는가. 자유 때문에. 내가 잘 산다고 해서 잘 사는 게 자유보다 더 좋은가. 그렇지 않다. 나는 자유가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자유가 중요하지, 밥이나 잘 먹고 사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문)북한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그리고 이제는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하려고 합니다.

답)내가 공산주의 이론 다 읽어봤는데, 공산주의에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런 가족세습적인 정권 이양이라는 게 어디 있는가. 이건 북조선 사람들이 모두 반대해요.

문)한국, 서울에 가보고 싶습니까?

답)나는 현대자동차 공장 가보고 싶어요. 나는 자동차를 했기 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빠른 기간에 자동차 공업을 발전시켰는가를 알고 싶어요. 그게 내 소원이에요.

문)이제 나이가 75살이신데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십니까?

답)북조선의 현 독재정권이 망하고 새로운 자유적인, 민주적인 정권이 일어나서 북조선이 번영하는 것을 보고 죽고 싶은데, 그거 될 것 같지 않아요.

문)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답)북한 사람들이 단 몇 명이라도 빨리 내 책을 읽어라, 그래서 독재자들의 실태를 알아라. 알고 빨리 잠에서 깨어나라.

문)김정률 선생님 오랜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 호위사령부 대좌 출신으로 유럽에서 20년 간 북한 정권 지도부를 위해 외제 물건을 조달하는 일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김정률 씨와의 인터뷰를 보내드렸습니다. 대담에 최원기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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