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궁기를 앞둔 북한에서 최근 1주일 사이 달러당 환율이 크게 오르고 쌀 가격도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식량을 둘러싼 범죄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최근 1주일 사이 북한 장마당 내 환율이 치솟아 쌀 등 주요 생필품 가격도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과 소식지에 따르면 화폐개혁 직후 1㎏당 20원-25원 하던 쌀 가격은 지난 1월 하순 4백-6백원대로 크게 오른 데 이어 이달 들어 1천원 대까지 폭등했습니다.
서울의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는 “북한 신의주 지역에서 지난달 말 1㎏당 4백원이던 쌀값이 지난 2일 8백 원, 3일엔 1천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고 밝혔습니다.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도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2월 말 1㎏당 4백원 하던 쌀값이 이달 3일 현재 1천원 선으로 폭등했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의 한 대북 소식통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함경북도 회령과 양강도 혜산의 경우 8백원까지 폭등했던 쌀값이 2일 오후부터 6백원대로 떨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농민들이 쌀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시장에 쌀을 내놓지 않아 화폐개혁 이전 수준인 1㎏당 2천 5백원까지 오를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며 “일반 근로자 월급이 2천원인 점을 감안하면 쌀 1kg 밖에 못 사는 셈”이라고 전했습니다.
2008년에 탈북한 김은호 씨는 현지 주민들의 말을 인용해 “함경북도 무산의 경우 1백50원 하던 옥수수 가격이 4백50원까지 올랐다가 3백원대로 다시 떨어졌다”며 “화폐개혁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50% 이상 물가가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쌀값이 최근 1주일 사이 2배가량 뛴 것은 미 달러나 중국 위안화에 대한 북한 돈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데일리NK에 따르면 북한 내 환율은 지난 달 말 1달러당 1천2백원에서 3일 현재 2천5백원까지 폭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연구원 최수영 선임연구원은 “북한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환율 상승은 즉시 국내 물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며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실시한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중국에서 몰래 들여오던 쌀을 일제히 단속하고 나선 것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북-중 무역에 종사하다 2005년에 탈북한 김성희 씨는 “중국에서 밀반입된 쌀은 장마당에 주로 공급되는데 쌀 반입이 안되면 장마당 가격은 뛸 수밖에 없다”며 “쌀 가격이 오르면 다른 물품도 같이 오르기 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밀수행위를 일제히 단속했어요 엄벌에 처한다고 하면서 굉장히 단속을 했거든요. 밀수하거나 중국 돈 장사를 하거나 그런걸 잡으면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 특히 휴대폰 감시기지들을 국경전선에 설치해서 단속하고 있어요 중국하고 많이 통화하면서 밀수하는 시간을 맞추고 물건 가격 정보를 빠르게 주고 받거든요. 장마당에 나간 쌀의 30%는 밀수로 들어온 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000년에 탈북한 서재평 NK 지식인연대 사무국장은 “남한 등 국제사회로부터 조만간 식량 지원이 재개될 것이란 소식이 없어 식량이 부족할 것을 염려한 주민들이 쌀을 내다팔지 않는 것도 쌀값 폭등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화폐개혁 부작용에다 춘궁기까지 겹치면서 식량난이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식량을 둘러싼 폭력 사태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탈북자 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이었던 지난 달 16일 함경북도 부령군 고무산역에 서있던 식량 열차를 털려던 일부 주민과 보안원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 주민 1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NK지식인연대의 서재평 사무국장입니다.
“식량 수송을 맡았던 무장 인원과 철도 노동자들이 쌀을 도둑질하다가 들켜가지고 수송대와 폭력이 벌어졌는데, 예전과 달리 집단으로 반발하고 보안원들과 폭력 다툼을 벌였다는 거지요. 그만큼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통일연구원 최수영 선임연구원은 “화폐개혁의 부작용을 막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외부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려 할 것”이라며 “북한이 새해 들어 대외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평양 지역을 다녀온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평양 시내 곳곳에 경공업과 농업 발전을 강조하는 신년 공동사설 구호가 붙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북측 관계자로부터 북한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려면 비료를 비롯해 농업 물자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조속히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