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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


안녕하세요? 화제가 되는 뉴스를 중심으로 역사를 더듬어가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요즘 전 세계가 흡혈귀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 달에 개봉한 영화 ‘뉴문 (New Moon)’ 때문인데요. ‘새로운 달’이란 뜻의 ‘뉴문’은 원래 소설이죠. ‘트와일라이트 (Twilight)’ 즉 ‘여명’이란 네 권짜리 연작 소설의 두 번째 편인데요. 미국 작가 스테파니 마이어 씨가 썼습니다.

‘트와일라이트’는 꽃미남 흡혈귀와 인간 소녀의 사랑을 담고 있는데요. 지난 해 1편이 영화로 제작돼 나온 데 이어서, 지난달 말에 2편이 개봉됐고요. 미국에서 개봉 첫날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세계 각국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 ‘뉴문’ 만이 아니고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흡혈귀 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흡혈귀의 조수’란 영화도 나왔고, ‘트루 블라드 (True Blood)’, ‘진정한 피’란 제목의 텔레비전 연속극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의 유명 감독인 박찬욱 감독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영화 ‘박쥐’로 올해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요. 인기 여배우 전지현은 ‘블라드: 마지막 흡혈귀’란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트와일라이트’의 인기에 힘입어, 흡혈귀를 소재로 한 소설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은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과 흡혈귀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창백한 얼굴…… 차가운 피부…… 유난히 붉은 입술…… 소설 ‘트와일라이트’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흡혈귀지만 여느 인간보다도 아름답습니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부자인데다 초인적인 힘까지 갖추고 있는데요. 게다가 인간을 해치지 않는 착한 흡혈귀입니다. 그러니 전 세계 소녀들이 열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원래 흡혈귀는 이렇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흡혈귀는 밤에 무덤에서 나와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시체다. 사람의 목이나 배를 깨물어 피를 빨아 마신 뒤 무덤으로 돌아간다. 흡혈귀에게 피를 뺏긴 사람은 점차 창백해지고 힘을 잃고 쓰러진다. 반면에 피를 마신 시체는 살이 오르고 피부가 붉은 빛이 돈다.”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1764년에 발표한 저서 ‘철학사전’에서 흡혈귀를 이렇게 묘사했는데요. 이처럼 사람들은 오랫동안 흡혈귀를 끔찍한 괴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플로레스쿠 교수//
“사람이 죽지 않고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추적하면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흡혈귀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존재인데요. 흡혈귀 얘기는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미신입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흡혈귀에 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보스톤 대학 역사학과 라두 플로레스쿠 교수의 설명인데요. 플로레스쿠 교수에 따르면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 마시고 사는 흡혈귀에 관한 전설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그리스에도 흡혈귀에 관한 기록이 있고요. 중국의 강시, 아라비아의 구울 등도 흡혈귀의 일종이란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뱀파이어 (vampire)라고 부르는 서양의 흡혈귀 전설은 주로 유럽의 발칸반도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플로레스쿠 교수//
“ 기본적으로 러시아, 불가리아 등 남동부 유럽의 미신이었죠. 루마니아, 세르비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발칸반도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천당에 갈 만큼 좋은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 불에 떨어질 만큼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닐 때, 영원히 죽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고 믿었어요. 일종의 벌을 받는 셈인데요. 기독교의 연옥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서유럽에서는 워낙 교회가 막강해서 흡혈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흡혈귀 미신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흡혈귀의 소행이라고 믿었습니다. 캐나다 뉴화운드랜드 메모리얼 대학교 엘리자베스 밀러 교수입니다.

//밀러 교수//
“예를 들어 한 마을에 계속 여러 사람이 죽어가는 경우 같은 거죠. 한 사람이 죽고 몇 주 만에 다른 사람이 뒤를 이어 죽고, 또 다른 사람이 죽고, 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니까요. 요즘 같은 경우라면 무슨 이상한 바이러스가 도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그 때는 과학이 발전하기 전이니까요.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이 흡혈귀가 되어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렇습니다. 이처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날 때, 어떤 사람들은 마녀의 저주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흡혈귀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마녀의 저주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산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흡혈귀를 믿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먼저 흡혈귀로 의심되는 사람의 무덤을 살핀다. 무덤 주위에 뱀이 나올 만한 작은 구멍이 있으면 흡혈귀일 가능성이 높다. 보통 흡혈귀는 뱀으로 변신해서 무덤에서 빠져 나오기 때문이다. 무덤을 파헤쳐서 관을 열고, 시신이 부패했는지 살핀다. 입가에 피가 묻어 있다거나 살아있을 때보다 더 살이 찐 것처럼 보인다면 흡혈귀란 증거다.”

네, 죽은 사람이 흡혈귀가 됐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인데요.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자연적인 부패 과정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오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관을 잘 봉한 뒤 겨울에 묻으면 부패 과정이 몇 주씩, 때로는 몇 달씩 지연되는 수가 있는데요. 시신이 많이 부패하지 않았을 경우, 흡혈귀라고 생각한 겁니다. 또 시신의 장이 팽창하면서 살이 더 오른 것처럼 보이거나 피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흡혈귀가 돼서 돌아다닌 증거라고 판단했습니다.

“흡혈귀라고 생각되면 시신의 가슴이나 배에 말뚝을 박아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시신의 목을 자른 뒤 불에 태우고, 남은 재는 강에 버린다.”

그렇습니다. 수백 년 전 흡혈귀를 철저히 믿었던 동유럽 사람들은 흡혈귀로 생각되는 시신을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또 흡혈귀를 막기 위해 문지방에 마늘을 문질렀고요. 또 장미가시나 은으로 만든 십자가를 지니고 다녔습니다.

흡혈귀 현상은 계몽의 시대인 18세기에 가장 만연했습니다. 당시 사건들을 가리켜 ‘18세기 흡혈귀 논쟁’이라고 불릴 정도인데요. 흡혈귀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정부 관리들까지 흡혈귀 사냥에 나섰습니다.

“1725년 헝가리 한 작은 마을에서 페테르 포글로호비치란 사람이 62세로 숨졌다. 하지만 무덤에서 살아나와 가족을 찾아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낮에 무덤을 파헤쳐보니 부패한 흔적이 전혀 없었고, 입에서 피가 흘러나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흡혈귀 퇴치의식을 거행하고, 그의 시신을 불에 태웠다.”

네, 오스트리아에는 이 같은 흡혈귀 퇴치의식이 치러졌다는 경찰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요. 시골에서 흡혈귀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왕궁에까지 전해졌고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밀러 교수//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스트리아를 다스리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에서 흡혈귀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그래서 의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했죠. 조사단이 돌아와서는 흡혈귀에 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보고를 받은 마리아 테레지아는 흡혈귀 퇴치의식을 불법으로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농민들의 반발을 두려워한 영주들이 이를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흡혈귀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흡혈귀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는데요. 하지만 흡혈귀 퇴치의식은 19세기말 미국에서도 행해졌습니다.

“1892년 미국 로드 아일랜드 주 엑세터에서 19살 소녀 머시 브라운이 숨졌다. 머시의 아버지 조지는 이미 아내와 두 자녀를 결핵으로 잃었는데, 머시가 죽은 뒤 아들마저 병에 걸렸다. 주변 사람들은 조지에게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죽은 가족들의 무덤을 파헤쳐 흡혈귀가 된 사람이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 해롤드 메트캐프의 입회아래 가족들의 묘가 모두 파헤쳐졌고, 머시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발견했다.”

의사 메트캐프는 머시가 죽은 지 9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켰는데요. 하지만 사람들은 머시가 흡혈귀가 됐다며 두려워했고요. 결국 흡혈귀 퇴치의식을 치렀습니다.

머시 브라운의 경우처럼 19세기말 전세계적으로 결핵이 유행할 당시에는 흡혈귀 때문이란 소문이 퍼졌습니다. 창백한 피부, 홍조 띤 얼굴, 피를 토하는 결핵 환자의 증상이 흡혈귀와 흡사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결핵환자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21세기, 새 천년의 시대에도 흡혈귀 퇴치의식이 거행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뉴화운드랜드 메모리얼 대학교 엘리자베스 밀러 교수입니다.

//밀러 교수//
“몇몇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루마니아에서 있었죠. 정확히 마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요. 3년 전에 많은 보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 주민들이 무덤을 파헤쳤어요. 실제로 가슴에 말뚝을 박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당국자들이 나와서 주민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 가 외딴 마을에서 문지방에 마늘을 문지르는 등 흡혈귀를 물리치는 처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흡혈귀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온 흡혈귀……. 밀러 교수는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흡혈귀를 믿는 사람들 역시 계속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밀러 교수//
“그렇습니다. 인간의 본성, 어둠을 무서워하는 원시적인 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인식이 남아있는 한 흡혈귀 같은 존재에 관한 얘기도 계속 나오겠죠.”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최근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흡혈귀 열풍과 관련해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과 흡혈귀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살펴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흡혈귀의 대명사 ‘드라큘라’의 모델로 알려진 발라히아 공국의 블라드 3세에 관해 전해 드립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해 주시고요. 전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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