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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화폐개혁, 일시적 물가안정 후 장기 경기침체


북한 당국이 전격적으로 화폐개혁 조치를 단행한 지 오늘(2일)로 사흘이 지났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일시적으로 물가를 낮출 수는 있겠지만, 시장기능을 위축시킴으로써 북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그동안 장마당에서 생계를 이어온 일반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화폐개혁이 일시적으로 물가를 잡는 효과는 있겠지만 시장 기능을 위축시킴으로써 북한 경제를 궁지로 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산은경제연구소 김영희 수석연구원은 “시중에 있던 현금이 중앙은행에 집중돼 공식 경제가 살아나 일시적으로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김 연구원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국영 상업 기능을 강화해 경제 회생을 이루려고 할 것”이라며 “그러나 정책이 실패할 경우 물가는 다시 치솟고 이전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화폐개혁이 안정적으로 잘 이루어질 때는 일시적으로 효과는 있다고 봐요. 일단 물가는 잡아지겠죠. 제대로 된다면 시장 값은 당연히 떨어질 거고 가격은 잡을 수가 있잖아요. 다른 이상현상이 발생할 경우 북한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시장이 다시 회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시장 기능이 크게 위축되면서 주민 생활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는 “이번 조치로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져 상거래가 중단될 것”이라며 “거래가 다시 이뤄질 때까지 당분간 경제는 마비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주민들의 재산을 강탈했으니깐 구매력이 툭 떨어지겠죠. 그 다음에 아마 상거래가 안 일어날 겁니다. 왜냐하면 가격체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예를 들어 쌀 1kg에 2천원 했다고 하면 지금부터는 쌀을 1백 대 1로 계산하면 20원인데 20원을 받아야 마느냐 하는 게 서로 헷갈리는 거죠. 기본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데 이 시장을 죽이겠다는 기본정책이죠.”

화폐가 주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이번 조치로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김은호 자유북한방송 기자는 “북한 당국이 1992년에 이어 또 다시 화폐개혁을 단행하자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진 채 허탈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치 시행 이후 국경지역 온성 회령 무산 등지의 주민들과 통화해본 결과 현재 장마당 상점 모두 서있습니다. 쌀값도 정해지지 않아 굶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하루 벌어 하루 살았는데 장마당도 운영 안되지 돈도 없지 하니까요. 특히 한도액인 10만원 이상 되는 돈을 태워버리면 태워버렸지 국가에다가 내놓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동요가 일어나고 소요가 반드시 일어나잖아요. 그걸 진압하려고 지금 경계령이 내렸습니다.”

북한 화폐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에 위안화나 달러화에 대한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동국대학교 박순성 교수는 “예전보다 오히려 달러 등 외화 선호 현상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유로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이번 조치가 실현될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북한경제팀장은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계획경제가 정상화하려면 물자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북한이 그럴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말했습니다.

동국대 박순성 교수는 “이번 조치는 지난 2년 간 계속돼 온 북한 당국과 주민 간 힘겨루기로, 중앙배급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오랜 기간 주민의 생계를 책임져 온 시장을 뿌리뽑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베트남의 뒤를 이을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베트남은 과거 북한의 7•1조치와 비슷한 조치를 취한 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1985년 10대1로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그래도 물가가 안정되지 않자 가격의 완전 자유화를 선언하며 시장경제로 진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화폐개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물자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북한 입장에선 미-북 관계나 남북관계 개선이 더 절실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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