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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먹을 것도 없는데 소를 키우라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한 소 목장을 방문해 축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구호 아래 지난 10년 간 추진된 북한 당국의 축산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최원기 기자가 자세한 내용 전해드립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군 제 580부대 산하 7월18일 소 목장을 현지지도 했습니다. 방한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이 목장이 잘 운영돼 “고기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여나가고 있는 데 대해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고 통신은 전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축산업을 장려한 것은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사망하자 김 위원장은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고 축산 사업을 크게 장려했습니다.

노동신문은 97년과 98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초지 조성과 축산업 발전’을 강조했으며, 김 위원장은 99년 8월 초식동물 사육을 ‘전 군중적 운동’으로 전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한국 서강대학교의 안찬일 교수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전국적으로 소 목장과 염소 목장이 꾸려지고 토끼 사육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아마 군 단위, 도 단위에서 시범농장을 많이 만들고 산을 낀 평안북도, 양강도, 자강도에서 알곡 생산보다 축산업에 역량을 집중해 고기를 많이 생산하면 식량 문제가 풀린다고 해서 그 지역 중점과제로 제시했고...”

그러나 소와 염소를 길러 주민들에게 고기를 공급한다는 북한의 축산 장려 정책은 이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 (FAO) 자료에 따르면 1990년대 초만 해도 북한에는 90만 마리의 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도에는 소의 수가 57만8천 마리로 무려 36%나 줄었습니다.

평양의 농업과학원 출신 탈북자인 이민복 씨는 북한의 축산정책이 실패한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선 소나 염소를 키우려면 초지-풀밭을 가꿔야 하는데, 초지 조성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실정에서는 산야 밖에 없어요. 벌판은 다 곡식을 심고, 초지 키울 만한 데가 없고, 그것도 비료가 들어가야 하는데, 풀까지 깍아서 다 불 때는 판에 될 리가 없어요.”

또 다른 이유는 ‘사료’ 입니다. 소는 물론이고 돼지, 염소, 닭 등을 키우려면 사료가 필수적입니다. 더군다나 북한처럼 겨울이 긴 곳에서 가축을 키우려면 사료 공급이 보장돼야 하는데 북한 실정에서는 사료는 꿈도 꿀 수 없다고 이민복 씨는 말했습니다.

“사료 수준 정도도 아니고 사람이 굶어주는 판에 무슨 사료를 짐승에 먹입니까. 일단 먹일 게 없다고요. 풀만 먹여서는 축산이 안됩니다. 곡식을 좀 섞여 먹여야 하는데 곡식을 먹일 수준이 아니라니까요.”

축산업은 과거 북한의 농업정책 실패 사례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 당국은 겨울철에 남새(채소)를 공급한다며 온실 건설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비닐 등 건설 자재와 연료가 공급이 안돼 이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또 2년 전에는 ‘과일나무 심기 운동’을 지시했지만 이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다시 이민복 씨의 말입니다.

“똑같이 반복하더라구요. 작년도에도, 다섯 그루씩 심어라, 명령이 내려오니까 심죠. 그런데 먹을 만하니까, 어머니가 과일 나무를 찍어 버리더라고요. 어머니 왜 찍습니까, 그러니까. 야, 옥수수가 식량 되지 과일이 식량 되냐, 또 설사 과일이 달리면 도적놈들이 와서 다 따가고, 이게 우리 먹을 수준이 되냐며 찍어 버리더라고요.”

북한에서 농업정책을 경험해본 탈북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말을 절대시 하는 풍토가 계속되는 한 농업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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