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살인적인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국의 한 민간연구소가 분석했습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산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일반 물가 수준이 전반적으로 크게 높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북한의 애그플레이션은 시장에서 최근 1-2년 사이에 식량 가격이 폭등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연철 기자가 자세한 소식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식량공급량이 최소 소요량을 크게 밑도는 상황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한국의 민간단체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밝혔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6일 발표한 ‘최근 북한의 식량 사정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2008/2009 곡물연도에도 북한의 식량공급량은 4백86만t으로 최소 소요량 보다 56만t 이 부족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임수호 수석연구원은 2008년에는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2008년에 급등했던 국제 곡물가격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외 강경노선에 따라 국제사회의 원조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임 연구원은 최근 1-2년 사이에 북한 시장에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는 사실이 특히 우려된다며, 이로 인해 살인적인 ‘애그플레이션’ 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애그플레이션은 애그리컬쳐 플러스 인플레이션 조어죠. 농산물 가격 폭등을 의미하는 조어구요… 북한 근로자들의 공식 임금이 한 달에 2-3천원 정도 합니다. 한 달 월급 받아서 쌀 1kg 사면 없는 그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는 거죠.”
임 연구원은 최근 북한 당국의 시장 억압 조치가 식량 가격 폭등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국이 2005년부터 사적 경작과 중국산 곡물 밀수, 협동농장 농산물의 시장 유출 등 곡물의 시장 거래를 단속하면서 식량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것입니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시장에서 사재기와 매점매석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식량 가격 폭등의 한 이유라고 임 연구원은 덧붙였습니다.
임 연구원은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이 1990년대와 같은 대량 아사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현재는 부족하지만 아사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데, 그 이유가 뭔가라고 했을 때는 역시 식량 시장이나 이런 것들이 활성화되면서 돈만 있으면 식량을 사서 먹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조성됐다는 거죠.”
임 연구원은 따라서 북한의 식량난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과대평가해서도 안될 것이라면서, 북한 식량난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할 능력이 없는 사회적 취약계층과 유통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 주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임 연구원은 앞으로 대북 인도적 지원도 이들 계층과 지역에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들에게 지원 식량이 정확히 도달할 수 있도록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임 연구원은 식량 가격만 안정돼도 북한주민의 고통이 그만큼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당국의 정책기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식량 가격이라는 것은 북한 당국의 시장통제 조치, 그리고 북한이 대외적으로 강경한 행보를 하면서 원조가 주는 부분, 이런 부분들이 맞물려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만 행동을 자제하거나 해주면 주민들의 고통이 훨씬 덜 하겠죠.”
한편 임 연구원은 북한의 2009년 가을 곡물수확량이 지난 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올해 옥수수 작황이 나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특별한 자연재해가 없었고 비료 부족분 역시 중국의 지원분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임 연구원은 또 국제 곡물가격 역시 안정적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제재가 지속될 경우 국제사회의 원조 규모가 감소할 수 밖에 없고, 북한의 외화수입원이 고갈돼 식량 수입 능력이 제한될 수도 있다고 임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임 연구원은 이 경우 식량 공급 축소를 예상한 북한주민들과 곡물상인들의 사재기와 매점매석으로 시장에서 식량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