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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탁 음악제 40 주년, 그 역사적 의미


지난 196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반권위, 반 문화적 물결을 타고 1969년 8월 미국 뉴욕에서 열렸던 젊음이들의 음악 축제 가 지난 15일로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시간에는 당시 직접 우드스탁 패스티발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미국 특유의 이 행사가 미국역사에서 점하는 위상을 진단해봅니다.

1969년 8월 15일, 한껏 달아오른 태양열아래 뉴욕, 우드스탁부근, 바텔마을, 젖소들이 거니는 대평원에 자리잡은 공연장은 채 준비 작업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주최측은 기껏해야 6만명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밀어닥친 관중은 40여만명을 넘었습니다. 이때문에 축제 마지막날에는, 식량과 식수, 용변 시설의 부족등 예상치못한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축제공연 조직을 돕기 위해 일주일전 에 멀리 미국서남부, 뉴맥세코주, 돼지사육 공동체 농장에서 도착했던 바라 네비로우 씨는 한적한 뉴멕시코 농촌지대에서 대도시 뉴욕 심장부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와 우드스탁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의 충격을 절대로 잊지못할 순간으로 회상합니다.

오만가지 희얀한 옷차림은 물론 나체로 걸어 다니거나 환각제에 빠져 정신이 몽롱해진 사람들, 새로운 이상세계를 일장 설파하는 사람등 실로 기상 천외의 행사장 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드스탁 패스티발에서 공연한 30여개 악단들은 1960년대 음악 풍토를 대표했습니다. 지미 핸드릭스와 제니스 죠플린, 산타나, 크로스비 스틸즈, 내쉬 앤드 영등 한때를 풍미했던 밴드와 가수들이 무대를 이루었습니다.

패스티벌이 시작되자,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들판은 온통 진흙땅 으로 변했습니다.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의 축제기간내내 진흙과 빗발은 관객들과 같이했다며 당시 참가자의 한사람은 마치 우드스탁 축제는 땅과 사람들과 진흙이 음악과 빗줄기속에 한덩어리가 되어 뒹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든참가자들이 먼곳에서 온것은 아니었습니다. 바텔마을 부근에서 살던 당시14살 소녀 데비 팔론씨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했지만 10살된 사촌과 둘이 몰래 집을 빠져나가, 장발의 남녀히피족들로 가득찬 대파티장을 발견했을때의 충격을 회고합니다.

하지만 당시우드스탁패스티발은 공동체 생활과 이상향에 관한 뜨거운 성토장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충천하는 희망과 가능성을 논하며 마냥 행복해 했다고 바라네버로우 씨는 회상합니다.

우드스탁 패스티발 현장은 지금은 수백만 달라의 자금이 투입된 새 관광단지로 탈바꿈했습니다. 당시 우드스탁 출신 젊은이었던 듀크 데블린씨는 지금은 이관광지의 유급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당시 축제장에서는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고 마리 화나도 피웠고 아무데에서 나 잠에 취했다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 났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그대로 순응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게의치 않았고 마냥 편하고 행복하기만 했다고 데불린씨는 말합니다.

그러나 축제 마지막날인 일요일이 되면서그꿈의 현장은 더 이상 지탱되지 못했습니다. 바라네베로우씨는 식량과식수가 완전히 동이 나버려 결국 재난상황이 벌어졌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네베로우씨는 그 재난 상황은 절대로 사람들이 잘못 행동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잘못 행동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네베로우씨는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믿지못할 정도로 친절했다는것입니다. 혼란의 와중에서모두가 완전한 사람인듯 행동했다고 네베로우씨는 회고합니다. 세상은 아름다웠고 무섭기도 했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대안세계를 향한 젊은이들의 꿈은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베라 네베로우씨는 우드스탁 패스티벌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회고합니다. 이전의 흑백사고에서 수많은 색깔을 볼 수 있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네베로우씨는 우드스탁 패스티벌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고 믿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에덴의 동산, 본향으로 돌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대도시의 온갖 제약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선한 일을 하고 싶은 영감을 불러 일으킨 계기가 곧 우드스탁 패스티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드스탁 축제로 인해 미국사회는 변해버렸다며 네베로우씨는 그것은 실로 소중한 돌파구였다고 회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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