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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카메라에 담는 미 해병 예비역 대위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장진호 전투가 미 해병대 장교 출신 영화제작자에 의해 ‘초신 (Chosin)’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로 만들어집니다.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던 예비역 해병대 대위인 브라이언 이글레시아스 (Brian Iglesias) 씨는 이 영화 제작을 위해 현재 미 전역을 돌며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이진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올해 32살의 미 해병대 예비역 대위 브라이언 이글레시아스 씨는 요즘 해병대 선배들이 참전했던 60년 전 장진호 전투에 대한 얘기를 카메라에 담기에 분주합니다. 고령이거나 생사조차 알기 어려운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하기 위해 이글레시아스 씨와 2~3명 남짓한 카메라팀은 지난 2월부터 미 주요 도시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글레시아스 씨는 11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장진호 전투는 미국 역사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역 장교 시절 영화공부를 병행했던 이글레시아스 씨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노병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그들의 얘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영화 ‘초신’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습니다. ‘초신’은 함경남도 장진의 일본식 지명입니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27일,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 해병대를 비롯한 유엔군 1만 5천 여명과 중공군 약 12만 명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입니다.

유엔군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전투로 미 해병 3천 여명이 사망하는 등 큰 병력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싸웠던 미군들은 지난 1983년 `초신 퓨’ (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장진의 일본식 지명인 ‘초신’과 살아남은 사람이 적다는 뜻의 영어 단어 ‘퓨’를 합친 말입니다.

영화 ‘초신’은 기존의 전쟁 기록영화와 달리 참전 군인들의 시각에서 접근했으며, 정치색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면을 중시했다고 이글레시아스 씨는 말했습니다.

영화 ‘초신’은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고, 또 전투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노병들의 인터뷰와 보관돼 있는 장진호 전투 장면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글레시아스 씨는 하루라도 빨리 노병들의 얘기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시간과의 경주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총 2백 건의 인터뷰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글레시아스 씨와 카메라팀은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1백40 여 건의 인터뷰를 성사시켰습니다. 그러나 노병들로부터 전쟁의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까지 침묵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참전용사들도 많았습니다.

이글레시아스 씨는 노병들이 59년 전의 고통스런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공동제작자 역시 참전용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38년을 함께 산 부인에게도 하지 않았던 전투 얘기를 이글레시아스 씨와 카메라팀에게 털어 놓은 노병도 있었습니다. 이글레시아스 씨는 노병들이 전투 얘기를 할 때면 고통스런 전쟁 기억이 떠올라 쉽지 않지만, 서로 전쟁 얘기를 나누면서 상호치료(mutual healing)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초신’은 내년 1월 출품에 앞서 다음 달 뉴욕에서 열리는 독립영화주간 행사에 참가합니다. 뉴욕 독립영화주간은 미완성 작품을 위한 영화제입니다.

이글레시아스 씨는 결혼해 10개월이 조금 넘은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거의 반 년을 빌린 승용차로 미 전역을 돌며, 군용 식량과 침낭 등에 의지해 차 안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글레시아스 씨를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그리 곱지 만은 않습니다.

해병대 근무 중 세 차례 전투현장에 배치됐던 이글레시아스 씨는 그러나 아내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긴 해도 최소한 총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다고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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