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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일 만에 끝난 미 여기자 억류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기자들이 마침내 석방돼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두 기자는 지난 3월 두만강 인근에서 북한 병사에 붙잡힌 지 140여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억류부터 석방까지 지루하고 긴장됐던 과정을 김근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케이블 방송인 ‘커런트 TV’ 소속 로라 링 기자와 유나 리 기자, 사진기자 미치 코스는 지난 3월 초 탈북자 관련 특집취재를 위해 미국을 출발했습니다. 한국을 거쳐 중국에 도착한 이들은 옌지에서 탈북자들을 취재한 뒤, 3월17일 밤 조선족 안내원과 함께 북-중 국경에 접근했다가 북한의 국경경비 대원에게 발각됩니다.

사진기자와 안내원은 현장에서 빠져 나왔지만, 중국계 로라 링과 한국계 유나 리 기자는 경비대원에게 체포됐습니다. 두 기자의 취재를 도운 한국 ‘두리하나 선교회’의 천기원 목사는, 당시 이들이 계획과 달리 국경에 접근해 취재 활동을 벌이다가 붙잡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천기원] ‘미국인 기자 2명 북한 억류…미 정부 북한에 우려 표명(3/19)’ “그건 사실은 국경지역을 촬영하거나 위험한 지역은 안 하는 걸로 했고, 또 주의사항을 줬고, 제가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줬는데. 아마 그 약속을 안 지키고 욕심 부리다가, 단둥으로 간다고 저한테는 그렇게 얘길 하고 아마 국경 쪽으로 가다가, 아마 사고가 난 것 같아요.”

북한이 미국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고 인공위성 발사까지 예고하는 등 양국 관계가 급격히 경색 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두 기자 억류 사태는 미-북 간 예상치 못했던 중대한 변수로 떠오릅니다.

미국 정부는 두 기자가 억류된 지 사흘 만인 3월19일 처음으로 사실을 확인하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북한 당국에 요구했습니다.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3월21일 두 기자 억류 사실을 처음 보도한 데 이어, 열흘 뒤에는 이들이 불법입국과 적대 행위를 감행했다며 기소 의지를 밝힙니다.

북한은 관련 보도에서 억류된 두 기자와 사진기자, 조선족 안내원이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리에 침범했으며, 카메라로 주변을 촬영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두 기자가 그 전까지 카메라에 담은 내용은 북한을 모략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억류 사태를 정치적 문제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비쳤습니다.

이어 북한이 두 기자에 대한 재판 일정을 6월4일로 발표하면서,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커집니다.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가 미국 정부를 대신해 두 기자를 면담하고, 5월26일에는 두 기자와 가족 간에 첫 전화통화도 이뤄졌지만 좀처럼 석방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서 우려가 높아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6월1일, 재판을 앞두고 가족들이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미국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를 비롯한 언론과 인권 단체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이 즉각 두 기자를 석방할 것을 촉구했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미 전역에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두 기자에 대한 조기 석방을 거부한 채 6월4일부터 8일까지 재판을 강행했고, 이들에게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혐의로 12년의 노동교화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로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험난한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두 기자 사태에 대한 우려도 커집니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는 미국인 기자 사태를 장기화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석방을 계기로 미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성사시키고, 이를 통해 미-북 간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7월 두 기자들의 가족에 대한 통화를 허용하면서, 이런 의지를 담은 석방 조건을 제시합니다.

미국이 사과와 함께 북한의 법 체계를 인정하고, 특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두 기자를 석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7월10일 공개 석상에서 북한의 요구대로 법 체계에 따라 두 기자를 사면하도록 요청했지만, 기자 억류 사태가 정치 사안과 별개라는 입장은 확고히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 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우선 북한이 두 기자를 석방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고, 또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정치와는 분리된 움직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의 검토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북한은 며칠 간격으로 미국인 기자들의 전화통화를 허용하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이들이 조기 석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거듭 전달했습니다. 결국 백악관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허용키로 결정하고, 극비리에 이를 추진했습니다.

4일, 클린턴 전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두 기자가 억류된 지1백40일 만이었습니다. 백악관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오로지 두 기자의 석방을 위해 사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언론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 도착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의 면담 뒤 두 기자에 대한 사면 결정을 발표했고, 5일 두 기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별기 편으로 평양을 출발해 가족이 있는 캘리포니아에 발을 디뎠습니다. 지난 3월 초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집을 떠난 지 5개월 만의 가족 상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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