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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위기의 북한 정권] 통제 어려워지는 주민들


북한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보안원 등 당국자들에게 반항하는 장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위기의 북한 정권’을 주제로 보내 드리는 특집방송. 오늘은 네 번째 순서로 김영권 기자가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와 정부 통제력의 현주소에 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해 10월 한국의 북한정보 전문지 ‘림진강’ 소속 북한 기자들이 해주와 사리원 등지에서 비밀리에 촬영한 동영상.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탔다는 이유로 단속에 걸린 한 20대 여인이 규찰대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정부가 형평성 없는 단속을 한다며 여인이 거세게 규찰대원들을 몰아 붙이자 인근에 있던 교통경찰이 나서 싸움을 말립니다. 하지만 죽일테면 죽여보라며 대드는 여인의 격한 분노에 오히려 단속하던 사람들이 뒤로 밀립니다.

읍내 골목에서 단속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열리는 일명 ‘메뚜기 시장’

물건을 팔던 여인들은 단속원이 나타나자 입을 ‘뾰로퉁’ 한 채 중얼대며 곧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단속원이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보따리를 풀고 장사를 시작합니다.

규찰대나 보안원에게 반항하거나 당국의 단속을 무시하는 이런 모습은 요즘 북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들이라고 최근 탈북한 북한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방문연구원인 윤여상 전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이런 현상들이 최근 더욱 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구요. 북한 시장을 매개로 한 북한주민들이 보안성원들이나 보위부 당국자들에게 공적 또는 사적으로 상당히 강한 저항과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런 불평불만 제기에 대해 북한 당국자들이 과거처럼 충분히 억압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거예요.”

주민들이 보안원이나 단속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은 사실 수 년 전만 해도 북한에서 찾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5년 전 중국에서 만난 평양 출신 여성 상인의 말은 당시의 엄한 분위기를 잘 대변해 줍니다.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하지요. 어케 말을 해요. 불만이 있다고. 사람들이 다 속으로나 앓지. 겉으로 말 못해요. 말 했다가는 큰일 나는데요. (질문: 속으로는 알고 있나요? 남조선이 잘 산다는 것도?) 알지요. 불만이 많죠. 말을 했다가는 모가지니까 말을 못하지요.”

북한 당국이 과거처럼 주민들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들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는 지난 2005년 국가배급제 복귀를 선언하고 2007년에는 공산품을 국영상품점에서만 판매토록 한 데 이어 올해는 매일 열리는 종합시장을 10일장으로 바꿔 열흘에 한번 열 것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상반기가 훨씬 지난 현재 이런 지시사항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합니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북한인권위원회의 김광진 방문 연구위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경 밖에 남은 게 없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곤두서 있는 것이죠. 그렇게 싸우고 대들어도 결코 손해 볼 게, 생활이 막바지에 달했기 때문에 결코 잃을 게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니까 그런 사회적 현상들이 더 나타나는 것이죠.”

주민의 불만과 비사회주의 행동이 생존권 차원에서 폭넓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당국이 과거처럼 통제와 억압을 무작정 강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인민의 생존을 지탱해 준 장마당의 확산,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 이후 만연된 금전만능주의, 그리고 북-중 국경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이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을 서서히 바꿨다고 말합니다.

주민들의 이런 변화는 ‘미국의 소리’ 방송이 지난 3 년 동안 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만난 다양한 계층의 북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0대 여인: “조선은 이렇게 못살고 그러는데 어찌 저 세계는 자유롭게 잘 사는가 하고. 우리나라는 언제면 이런 날이 오겠는가..한탄을 많이 하죠.”

16세 소녀: “학교 때 그렇게 배웠어요. 한국은 되게 못살고 미국 놈들이 들어와서 감옥에 아이들 가둬두고 물 달라고 하면 휘발유 주고..그러니 우리나라가 제일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있다가 중국 오기 전에 몰래 한국 영화들 다 보고 야 한국 대단히 잘 살고 멋있다. 아 그래 거짓말이구나. 그 다음부터 알았어요.”

이런 주민들의 의식 변화가 당국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조정아 연구위원은 올해 초 ‘계층별 북한주민의 생존방식’ 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저항보다 동의와 순응에 치우쳐 있던 북한주민들의 스펙트럼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근무시간을 유용해 장사에 몰두하거나 뇌물을 통한 비법행위들로 부를 축적하고, 믿을 수 있는 친지들끼리 모여 정치적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한국의 대중문화 영상들을 몰래 향유하는 이런 행위들은 저항도 순응도 아닌 이중적인 행태라는 것입니다.

한국 국민대학교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 기고문에서 북한주민들은 이제 스스로의 능력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조만간 “장마당 아줌마가 벤츠 타는 간부들을 이길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습니다.

미국 내 민주주의와 인권단체들은 이런 북한 내 변화 조짐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칼 거슈먼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 회장입니다.

거슈먼 회장은 최근 북한 관련 집회에 참석해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매년 그 정도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민들의 사고와 행동 변화가 북한의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는 정부에 대한 인민의 경제적 불신은 팽배하고 있는 반면 정치적 신뢰는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시장경제 의식은 많이 확산됐고 따라서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먹고 살아야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의식은 상당히 확산이 됐는데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반미 의식이 강하고 반정부 의식은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적 측면에서는 정부를 안 믿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정부를 아직도 믿는 이중적인 의식이 있다는 거죠.”

정부의 권위는 떨어졌지만 핵 개발 등에 대한 선전선동으로 조국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강하다는 것입니다. 하 대표는 그 이유로 문화적 정보는 상당량이 북한에 들어간 반면 정권의 실책 등을 객관적으로 지적하는 정치적 정보는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의 윤여상 방문연구원은 북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을 지적합니다.

“의식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기에는 아직은 북한의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정부의 통제장치가 너무 강합니다. 북한 내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가 초래되지 않는 한, 통제장치가 어느 정도 느슨해지지 않는 한 의식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기에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는 아직 초보적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 정부가 지금처럼 대외관계 개선을 고려하지 않은 채 1백50일 전투 등 내부 통제와 체제 강화 노력만을 지속한다면 주민들의 불만은 그에 비례해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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