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과 대규모 식량난 때와 비슷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어제 (27일)부터 불확실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취약한 후계 구도, 유엔의 제재로 극도로 제약된 대외관계, 갈수록 통제가 어려운 주민들, 계속되는 경제.식량난 등 북한 정권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점검하는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최원기 기자가 북한의 취약한 후계 구도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종적을 감춘 지난 해 8월,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흥미로운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북한의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혁명 위업의 계승’ 과 ’손자’ 그리고 ‘25살’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평양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데니스 와일더 국가안보회의 국장은 이를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 작업에 착수한 신호로 해석했다고 말했습니다.
와일더 국장은 이후 북한 관영 `노동신문’이 지난 2월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에 ‘백두의 혁명 전통 계승’을 강조한 것은 후계 작업이 공식화 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셋째 아들인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얘기는 곧이어 미국과 한국, 일본 등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 무렵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북한 내부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획책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국의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일의 아들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후계 문제에 대한 각국 언론들의 보도도 잇따랐습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이런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를 개편하면서 자신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위원으로 임명해 후계 작업이 본격화 했다는 관측을 낳았습니다.
북한 전문가인 한국 국민대학교의 정창현 교수는 장성택이 국방위원회에 진입한 것은 명백히 후계 작업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동당에서는 장성택 부장이, 그리고 군에서는 김영춘과 현철해 같은 사람이 후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
물론 북한 정부가 후계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운으로의 권력 이양이 확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운으로 이어지는 평양의 권력 세습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이 같은 세습이 3가지 측면에서 북한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첫째, 북한은 권력 변동기에는 미사일 발사 같은 무력 시위를 통해 체제를 결속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이 외부 세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아시아재단 미-한 연구센터의 스콧 스나이더 소장은 “북한은 지난 1998년 8월 김정일 체제 출범을 알리면서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올해도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며, “북한은 권력 승계 같은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와 마찰을 빚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권력 승계 과정이 순탄치 못할 것이며 이 것이 평양 내부의 권력 투쟁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현재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김정운의 후견인으로 내세워 권력 승계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북한의 군부 인사들이 장성택의 역할과 김정운으로의 권력 세습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조짐도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북한 군부가 권력 세습을 지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여전히 권좌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습니다.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2-3년 안에 다시 뇌졸중 등으로 쓰러져 유고 상황이 벌어질 경우, 북한 군부는 올해 26살에 불과한 김정운을 지지 하지 않을 공산이 있다고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장은 말했습니다.
만일 김정일이 사망하고 장성택이 충분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장성택은 김정운을 후계자로 밀자는 군부와의 암묵적 합의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북한에서 후계 작업이 시작되면서 이미 평양의 세력 판도가 변해 군부 등 강경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군부의 득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은 원래 당 소속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평통)와 내각 소속인 조선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담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11월부터는 군부가 직접 나서 판문점 직통전화를 끊고 개성공단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북한의 인민군 총참모부는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각종 성명을 발표하고 개성공단의 육로 통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미-일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들의 본거지에 대한 정의의 보복 타격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내 권력 승계에서 또 다른 변수는 ‘시간’입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은 지난 1974년 당시 32살인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후 20년에 걸쳐 노동당 총서기와 최고사령관 등 요직을 하나씩 아들인 김정일에게 넘겨주면서 후계 작업을 차근차근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앞으로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후계 준비작업을 마무리 하려는 것 같다고 서울 국민대학교의 정창현 교수는 말했습니다.
“올해를 2012년도에 북한이 설정한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목표를 설정했을 때, 올해가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의 관계와 경제 상황도 후계 체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1백50일 전투’를 전개하는 등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계산은 2012년까지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권력 승계 준비를 마무리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전현준 박사입니다.
“강성대국 건설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강국 건설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북-미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북 관계와 경제는 현재 큰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1874호에 따라 북한의 해상 수송과 금융 거래 차단에 나섰습니다. 또 북한의 돈줄 역할을 하던 금강산 관광은 이미 중단됐으며, 개성공단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의도대로 2012년까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권력 승계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