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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 작전 65주년 맞는 노르망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른바 디데이라고도 불리는 이날 15만 명이 넘는 연합군이 독일군의 방어망을 뚫고 노르망디 해안에 올라섰는데요. 자세한 관련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문) 노르망디 해안, 지금 파도 소리가 뒤에 들리는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답지 않게 지금은 아주 한적하고 평화로운 장소라고 하죠?

답) 그렇습니다. 지금 들리는 소리 그대로입니다. 넓은 모래 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곳인데요. 조용히 산책하고 또 사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 그런데 65년 전 바로 그 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죠?

답) 예, 지금 풍경을 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긴박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상황 들어보시죠.

문) 지금 들으신 총성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전이었나요?

답) 2차 대전 당시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육. 해. 공군 합동으로 프랑스 북부해안 상륙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상륙작전이 성공할 경우 대규모의 연합군이 동쪽으로 진격해서 프랑스를 지나 나치 독일의 심장부까지 진입할 예정이었구요.

문) 작전에 참여한 병력의 규모도 엄청났죠?

답) 함선만 1천2백 척이 동원됐구요. 항공기가 1만 대, 상륙주정 4천1백26척, 수송선 8백4척이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수백 대의 수륙양용 특수장갑차로 편성된 대부대가 15만6천 명의 병력을 노르망디에 상륙시켰습니다. 그 중 13만2천5백 명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넜고 2만3천5백 명은 공중 수송됐습니다.

문) 사상유례 없는 대규모 작전이었죠. 물론 작전에 성공했지만 인명 피해 역시 막대하지 않았습니까?

답) 예. 연합군과 독일군 양측 사상자와 실종자가 42만5천 명에 달했으니까요. (단일 작전에서만요?) 그렇습니다. 군인들 뿐만이 아닙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서 그 지역 주민들, 그러니까 프랑스 민간인들도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문)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참전용사들은 65주년을 맞아 감회가 더욱 새롭겠네요.

답) 예. 노병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당시 연합군 특공대 요원으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여했던 리옹 쿠티에 씨의 기억을 들어보시죠.

무조건 진격하라는 명령 밖에는 없었다고 해요. 전우가 옆에서 쓰러져도 멈추지 말라는 명령이었다는 겁니다. 군복이 바닷물에 흠뻑 젖었지만 해안 목표지대를 점령할 때까지 옷이 젖은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문)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군요. 잊을 수가 없겠지요. 자, 노르망디 지역 현지는 상륙작전 65주년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죠?

답) 그렇습니다. 다양한 행사들이 열릴 예정인데요. 이 기간에 노르망디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4백 개가 넘는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고 합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가장 먼저 나치 독일에서 해방된 프랑스 도시 바이외에서 진행되는 행사인데요. 오늘 (5일)과 내일 (6일) 디데이 축제 행사로 개최됩니다.

문) 참전용사들도 물론 행사에 참여하겠지요?

답) 그렇습니다. 각종 전시회와 연주회가 열릴 예정인데요. 여기에는 물론 앞서 소개해 드린 구티에 씨처럼 80 살을 훌쩍 넘긴 참전용사들도 자리를 함께 할 예정입니다. 행사에 참가할 참전용사들은 영국에서만도 8백 명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진행자)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제는 축제로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앞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작전 중 희생됐는지 이번에 다시 한번 되새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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