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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대북송금 고환율로 시름


최근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에 대한 한국의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이들 외국 돈으로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해온 한국 내 탈북자들의 부담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삼엄해지면서 송금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최근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그 동안 달러나 위안화로 북한의 가족에게 몰래 돈을 부쳐온 탈북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김모 씨는 "위안화의 경우 지난 해보다 환율이 30% 이상 올라 중개 수수료까지 떼고 나면 실제 도착하는 돈은 많지 않다"며 "많은 사람들이 환율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송금을 미루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화 1백만원을 보내면 중국 인민폐 8천원이었습니다. 지금은 5천원 밖에 안됩니다. 브로커들이 20, 30% 정도 떼고 나면 엄청나게 손해를 보죠."

지난 1월 중국 현지 조선족을 통해 한국 돈 2백만원을 보냈다는 한 탈북자는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 대부분이 죄책감에 돈을 보내고 있다"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년에 2, 3차례 돈을 보낸다"고 전했습니다.

경기 침체로 최근 일하던 식당에서 해고됐다는 이 탈북자는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이야 풍족하진 못해도 먹고 살 순 있지만 북에 있는 가족들은 이 돈이 아니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어려워도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보내는 경로는 중국에 있는 지인의 계좌에 돈을 입금해 인편을 통해 전달하는 방법과 전문적인 브로커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 두 가지입니다. 돈은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가 주로 쓰입니다.

브로커를 통할 경우 일단 한국 내 브로커를 통해 소개받은 중국 현지의 조선족 브로커에게 은행계좌를 통해 돈을 보냅니다.

조선족 브로커는 입금을 확인한 뒤 북한 내 화교 브로커에게 연락해 해당 탈북자 가족의 주소지와 인적 사항을 말해주고 돈을 전달하도록 합니다. 돈을 전달하는 장소는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한 북-중 국경지대에서 이뤄집니다.

북한의 가족들이 화교 브로커가 가져온 휴대전화로 국내 탈북자와 직접 통화를 해 돈을 잘 받았는지 확인해 주면 송금 절차가 모두 끝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수고비와 휴대전화 통화비 등의 명목으로 송금한 돈의 30%에서 많게는 50%까지 챙깁니다.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탈북자는 "실제 전달해야 하는 돈보다 적게 주거나 단속을 핑계로 다음에 주겠다고 해놓고 중간에 가로채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중간에 브로커들이 많이 개입할수록 이른바 배달 사고가 많아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보내는 방법을 많이 선호한다"며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자신만의 송금 루트가 따로 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단체에 따르면 대북 송금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뤄져 탈북자 수가 급증한 2000년 이후 전문적인 중개인을 통해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북 송금이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폭력배들이 개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탈북자들은 전합니다.

브로커를 통한 송금은 만 하루 정도면 가족들에게 전달될 정도로 신속하고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어 구체적인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1년에 미국 돈으로 2천5백만 달러 가량이 송금되는 것으로 탈북 관련 단체들은 보고 있습니다. NK지식인연대 관계자입니다.

"한국에 탈북자가 1만5천 명 들어왔는데 한 사람이 평균 한해 2백만원을 보낸다고 보면, 1만 5천 명 가운데 1만 명만 보낸다고 해도, 실제론 2백만원보다 더 많이 보내므로 2천 5백만 달러는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

지난 달 한국에 입국해 현재 하나원에 있는 한 탈북자는 "남한으로부터 '공짜돈'을 받는 이들은 보위부의 묵인 아래 풍족한 생활을 한다"며 "보위부가 이들 가족에게 뒷돈을 받고 눈감아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탈북자들이 비밀리에 보내는 돈의 구체적인 액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북한 당국이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간부들의 부정부패로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4인 가족의 한달 평균 생활비는 한국 돈으로 15만원 선으로, 1백만원이면 반년 가량 먹고 살 수 있는 액수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 근로자 한달 평균 월급이 2천5백원에서 3천원 수준으로, 대우가 좋은 기업소에 다니는 이들도 5만원 안팎으로 알고 있다"며 "주민들이 월급만으론 살 수 없어 따로 자급자족으로 충당하는 부분도 있지만 15만원은 상당히 많은 액수"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들어선 북한이 국경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대북 송금도 상당히 어려워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자 송금 관련 업무를 돕는 지원단체 관계자는 "2, 3 개월 전부터 국경 지역에서 도청을 강화하고 구루빠로 불리는 감찰단들이 북한 내 화교들을 단속하고 있다"며 "예전과는 달리 단속을 대폭 강화해 브로커들이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평양에서 지난 해 입국한 한 탈북자는 "남한에서 보낸 돈을 '검은 돈'이라 부르며 발각될 경우 도시에서 지방으로 추방되거나 국경지역에 살던 이들은 내륙지방으로 쫓겨난다"며 "심할 경우 수용소에 보내진다"고 말했습니다.

정기적으로 송금을 하고 있는 또 다른 탈북자는 "요즘엔 북한 당국의 눈을 피해 남한산 옷들을 중국 보따리 장사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장마당에 팔 경우 상당히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몇 번 입다가 안 입은 옷들을 북한에 골라서 보냅니다. 중국에 있는 친척들이 북한 친척들에게 옷을 줍니다. 북한 친척들은 (장마당에) 옷을 갖고 나가 팔면 상당히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탈북자들은 북한 당국이 전용할 수 있는 대북 지원보다 직접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돈이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북한이나 한국 정부가 송금 행위를 적발할 경우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알면서도 상당수 탈북자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을 외면하지 못한 채 대북 송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탈북자들의 대북 송금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남북 교류협력법에 저촉돼 단속을 해야 하지만, 탈북자 역시 광의의 이산가족으로 볼 수 있으므로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인 차원에서 정부가 묵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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