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23일) 오전 자택 뒷산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들에게 자살 직전에 유서를 남겼습니다. 많은 한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애도를 표하면서 침통해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새벽 6시 40분쯤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자택 뒷산에서 투신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경호관 1명과 등산 중이었고, 높이 30 미터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상태가 위독해 다시 양산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9시 30 경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자살을 공식 확인했고, 병원측도 두개골 외상에 의한 사망임을 발표했습니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입니다.
"도착당시 의식은 없었으며 박동이 없는 상태였으며, 두정부의 11센티미터 정도에 열상이 관찰됐습니다. 본 의료진들이 심폐 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회복이 되지않아 9시30분에 심폐소생술을 중단했습니다. 두개골 골절과 뇌자상이 확인됐는데, 두부 외상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판단됩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현재 고향인 김해시 봉하 마을로 옮겨졌고 가족과 측근들은 정부 당국과 장례절차를 협의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23일 아침 등산을 나가기 전에 남긴 유서도 공개됐습니다. 열 넉 줄로 짧게 정리된 유서에는 "그 동안 너무 힘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며 최근 검찰 수사 이후 힘들었던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또 "너무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 운명이다'라는 착잡한 심경도 밝혔습니다. 이어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만 세우고 화장해달라"는 당부도 남겼습니다.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최소한6백만 달러를 건네받은 의혹을 받아 지난 4월부터 검찰 조사를 받아 왔으며, 최근엔 40만 달러가 추가로 건네진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압박을 받아 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과 학계, 시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EU 정상회담 도중 서거 사실을 보고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고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습니다. 청와대는 긴급회의를 열고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미칠 사회적 파장과 여론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 각 정당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며 애도를 표하면서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추모행렬도 이어졌습니다.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라인상에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서명란이 개설돼 이미 5만 여명의 시민이 다녀갔습니다.
1946년 경남 김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짧은 판사생활을 거쳐 1981년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부림사건' 변론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선 노 대통령은 1987년 민주화 항쟁에 앞장섰습니다.
이듬해 부산에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노 전 대통령은 그 해 있었던 5공 청문회를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절대권력을가진 군부에게는 5년동안 34억5천만원이란 돈을 몰래몰래 갖다 주면서 내공장에서 내 돈을 벌어 주려고 죽은 근로자에게 4천만원 8천만원 주느냐를가지고 싸워야합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일입니까?"
그러나 1991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결별한 노 전 대통령은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3차례나 출마하지만 모두 낙선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노 전 대통령은 '이단아' '승부사'라는 별명을 들었고 결국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2002년 12월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 2004년 선거법 의무 위반, 국정파탄, 측근 비리 등의 이유로 16대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63일 동안 직무가 정지되기도 했습니다. 재임기간 중에는 안희정씨 등 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10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제2차 정상회담을 갖는 등 남북관계 진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난해 2월 임기를 마친 뒤 '농촌으로 돌아가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며 귀향한 노 대통령은 올 들어 뇌물 수수 혐의로 가족과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노 전대통령을 수사했던 대검찰청은 노 대통령이 서거한 이상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수사 종결 방침을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