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4일 억류 중인 미국인 여기자 2명에 대한 재판을 다음 달 4일 연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재판 날짜를 공개함으로써 여기자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용 카드로 활용하면서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4일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재판이 다음 달 4일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는 해당 기관의 기소에 따라 6월4일 미국 기자들을 재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적용 혐의나 현재 상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현재 억류 중인 여기자들은 미국의 '커런트 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로, 이들은 지난 3월17일 북한과 중국 접경 두만강 부근에서 탈북자를 취재하던 중 북한 군인들에게 붙잡혀 억류됐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3월31일 중간 조사결과를 전하면서 "증거자료들과 본인들의 진술을 통해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혐의가 확정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내 북한법 전문가들은 북측이 밝힌 혐의로 미뤄볼 때 이 여기자들에 대해 북한 형법상 '조선민족 적대죄'와 '비법국경출입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조선민족 적대죄의 경우 5년 이상 10년 이하 로동교화형에 처해질 수 있고 '정상이 무거운 경우'엔 10년 이상의 로동교화형도 선고될 수 있습니다. 또 비법국경출입죄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 '정상이 무거운 경우'엔 3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또 북한의 사법제도가 한국과는 달리 2심제이며 상소를 통해 2심까지 가더라도 두 달 이내에는 재판 절차가 모두 끝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과 북한 기업체에 대한 제재 움직임, 그리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 공언 등으로 악화된 현재의 미-북 관계에 극적 반전이 없을 경우 여기자들에 대해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여기자 석방 문제가 더욱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 문제 등 정치적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입니다.
"물론 북한이라는 사회를 봤을 때 사법제도나 이런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투명성 있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정치적으로 해결될 소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까지 갔다는 것은 좀 더 장기화된다 라는 의미로 해석돼야 될 것이구요."
하지만 협상카드로 보다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북한이 이 문제를 오래 끌고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 국방연구원 백승주 박사는 "최근 이란이 미국과 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타고 미국 여기자를 억류 석 달 여만에 풀어준 예를 북한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며 "재판 날짜를 공개함으로써 공을 미국에 넘겨 압박하자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제가 판단할 때는 그렇게 장기화로 갈 것 같진 않습니다. 활용이라는 것은 장기화되면 활용 가치가 좀 떨어지거든요. 전격적으로 재판 직후라든지 또 재판 중에 어떤 우호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에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저는 장기화보다는 석방 시기 이런 거에 대한 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겠나 이렇게 봅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윤대규 부총장은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대북 협상 의지를 미국 측이 보여줄 때 여기자 석방 문제를 고려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풀어주면서 하자 하는 게 아니라 미국 쪽의 의사가 확인이 어느 정도 서로가 되고 할 때 카드로 써야지 그냥 뭐 풀어준다고 그럼 미국이 대화하자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 북한의 입장에선 북한이 항상 해 온 입장을 볼 때…"
미국 정부는 자국 여기자들이 북한에서 체포된 직후부터 북한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이들의 상황을 파악해 왔으나 지난 3월30일부터는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의 접견마저도 차단되고 있습니다.
이언 캘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1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영사 접근조차 불허하는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선 여기자 문제를 풀기 위해 이들이 소속된 커런트 TV 창립자 엘 고어 전 부통령을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는 최근 방북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앞으로의 사태 추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