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위 등 정치적 영역에 머물렀던 한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 운동이 점차 영화나 음악, 문학 등 문화 분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감독부터 단역배우까지 모두 탈북자들이 맡은 북한인권 영화 제작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이 영화는 다음 달 말 미국에서 상영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 내 탈북자들이 직접 제작한 북한인권 영화 '선택'이 오는 6월 말 미국 워싱턴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상영됩니다.
북한에서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으로 근무하다 2004년 탈북한 채명민 씨가 제작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채 씨는 "북한 보위부 구류장을 배경으로 인권 탄압의 실상과 권력층의 비리 등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사회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며 "극본부터 배우, 연출까지 모두 탈북자들이 맡았다"고 소개했습니다.
"영화가 가장 사람들을 잘 설득시킬 것 같아서 입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재능을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아 북한 인권 상황을 알리고 탈북자들이 반역자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탈북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출연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참여하다 보면 좀더 북한을 잘 알리지 않을까 싶어서 전원을 탈북자로 구성했습니다. "
채명민 씨는 "연기나 기술 면에선 일반 영화보다 부족할 수 있지만 탈북자들이 만든 최초의 북한인권 영화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북한인권에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 먼저 상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작품은 보위부 조사관인 주인공 강준혁이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강제북송된 자신의 애인의 탈출을 돕는 과정에서 북한체제의 모순을 깨달아 탈북을 감행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채 씨는 "재정적으로 열악하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화제작에 도전한다"며 "나아가 북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채 씨처럼 영화나 문학, 음악 등을 통해 북한 인권 운동을 펼치는 탈북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해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란 시집을 낸 탈북시인 장진성 씨는 시를 통해 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을 고발했습니다.
이 시집은 한국에서만 3만부 이상이 팔렸고 일본에도 소개됐습니다. 일본의 5대 신문사들은 '북한의 3백만 죽음이 만든 시', '한반도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걸작'이라고 극찬했고,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장 씨의 인생과 시집을 집중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노동당 작가로 근무했던 장 씨는 "단순한 생계형 탈북에서 최근엔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의 목적형 탈북이 늘어나고 있어 북한인권 운동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에서 각 분야에서 일하던 전문인력들이 남한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과거처럼 단순히 북한 인권을 알리는 등 논리적 주장을 하는 것을 넘어서 남한 국민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다가갈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설득의 힘이 커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
지난 해 탈북자 최초로 미국 국무부에서 연주회를 연 김철웅 씨도 "그 동안 정치적인 투쟁에 국한됐던 북한인권 운동이 점차 문화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대중에게 친근한 문화예술 분야가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북한 인권 문제를 논할 때는 폭력적인 캠페인이나 데모 등을 통해 정부나 관련 단체에 요구를 했다면 문화를 통한 인권운동이란 것은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물 흐르듯 자연스런 것으로, 그 문화를 통해 인식 변화를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봅니다."
평양 국립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 출신인 김 씨는 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 8회 북한인권 난민 문제 국제회의'에 참석해 피아노 연주회를 통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켰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이영환 팀장은 "그동안 머리나 논리로만 접근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눈과 가슴으로 인권 문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간다면 북한사회에 대한 균형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인권운동단체 관계자는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이 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인권 운동도 이젠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며 "지금까지 일궈온 인권운동 토대 위에 문화를 더한다면 인권운동의 입지도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