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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5월 7일


1945년 5월 7일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합니다.

전 유럽을 나치스에 손아귀에 넣겠다고 장담한 독일이 개전 4년 7개월 만에 연합국이 제시한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제 2차 세계대전은 마침내 끝이 납니다.

독일은 1940년 10월에 맨 먼저 루마니아를 그리고 불가리아와 유고, 그리스를 차례로 점령하면서 전쟁초반 승기를 휘어잡습니다.

하지만 1944년 6월, 미군과 영국군이 노르망디 반도에 상륙하면서 전세는 역전됐고, 이보다 앞서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독일의 패배는 4월 30일 히틀러의 자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히틀러의 자살로 후계자가 된 데니츠 독일 제독이 군대를 연합군 점령지역으로 옮기고 항복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항복 조인식은 프랑스 상파뉴지방의 중심도시인 랑스에서 이뤄집니다.

해리 트루먼 미국대통령은 방송을 통해서 미국 민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시민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려대며 종전을 환호합니다.

트루만 대통령은 서거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 감격적인 날을 보지 못한데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일본군이 항복할 때 전투는 비로소 끝이 난다고 역설 합니다.

1952년 5월 7일

한국 경상남도 거제도에 있는 제 76수용소에서 소장 도두준장이 공산군 포로들에게 납치됩니다.

한국에는 1950년 9월 15일에 인천 상륙작전으로 많은 포로들이 생겨났지만 이들을 수용할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거제도에 360만평 규모의 포로수용소가 설치됩니다. 하지만 수용소에서는 반공 포로들과 공산포로들과의 반목이 극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5월 7일 수용소장 도두준장이 수용소 시찰도중에 납치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포로들은 도두 준장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포로학대사실을 인정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 송환 방침의 중지와 공산군 포로 대표단 구성의 인정을 요구합니다.

전세계가 주목했던 이 폭동은 도두 준장이 납치된 지 4일 만에 미국이 잔학행위를 인정하고 나서 석방됨으로써 일단락됩니다.

미국은 새 수용소장을 임명하고 포로 17만 여명을 분산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유엔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거제포로수용소는 폐쇄됐고, 지금은 건물 일부로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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