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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4월 29일


1945년 4월 29일 오늘

제2차 대전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이 이끄는 미 제 3기갑부대가 독일 나치가 운용하는 악명 높은 죽음의 수용소 다카우를 해방시킵니다.

미군은 그곳에서 3만여명의 질병과 영양실조로 뼈만 남은 수감자들을 발견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시체들이 철조망 근처에서 발견됐습니다.

다카우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로 취임한 지 약 5주만에 뮌헨 근교에 세운 최초의 집단수용소였습니다.

다카우 수용소는 또 수감자들을 의학실험에 사용하기 위해 최초로 실험실을 세운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이 수용소에서 독일 공군의 항공의학연구소가 실시한 고압과 저온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생체실험 등이 실행됩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20세기 인류 최대의 비극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인류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찌스가 자행한 잔악한 행위를 기억하는 것은 장차 유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1992년4월 29일 오늘

미국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동이 일어납니다.

흑인 청년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 결과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 나온 것 입니다.

발단은 이른바 로드니킹 사건.

일년 전, LA에서 과속 운전하다 도주하던 킹을 백인경찰들이 무차별 구타하는 장면이 인근 주민에게 목격됩니다.

그는 이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했고 이는 곧 전국에 텔레비젼으로 방영됩니다.

시민들은 경찰들의 과잉진압에 분노했고 해당 경찰관들은 법원에 기소됐습니다.

그리고 장장 1년여 동안의 법정 심의가 벌어 졌고, 마침내 사건을 심의해온 지방법원의 배심원들이 오늘, 로드니 킹을 직접 구타한 4명의 백인 경찰관 중 3명에게는 무죄를 평결하고 1명에게만 재심사를 결정한 것입니다.

재판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흑인들은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면서 거리로 뛰쳐 나왔고, 시위와 방화, 약탈을 시작합니다.

사건의 발단의 주인공, 로드니 킹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폭동은 옳지 않으며,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일이라며, 평화적으로 이 일을 해결하자고 말했습니다.

엉뚱하게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인 타운이 이 폭동의 주된 대상이 돼 업소 수백 곳이 털리거나 불에 탔습니다. 이 폭동으로 55명이 사망하고 2,300여 명이 부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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