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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4월 12일


1861년,

아직 동이 터오기 전 미국 남부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의 포트 섬터에 한발의 포성이 울려퍼지면서 미국 남북전쟁의 서막이 오릅니다. 미국 남부군과 북부군간의 이 내전은 이후 4년간이나 지속 됩니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그 배경도 극히 광범위합니다.

전쟁의 직접적인 동기는 주가 연방으로부터 분리·탈퇴하는 데 대한 헌법 해석상의 문제였지만 이 문제를 유발시킨 노예제도와 각 지역간의 이해 대립 등 실로 많은 문제가 얽혀 있었던 것입니다.

남북전쟁은 북군 사망자 36만명, 남군 사망자 25만명 이라는 엄청난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의 격전지였던 게티스버그에서 연설을 행합니다.

"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 을 것이다'

이 게티스버그 연설은 미국사의 기념비적인 텍스트의 하나로 기려지고 있습니다.

링컨의 말대로 미국은 60만명의 값비싼 피를 치룬 이전쟁으로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고, 노예제도를 미국 땅에서 영원히 추방함으로써 노예제도에 따른 국가적 분열을 막고 미 합중국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1861년 오늘 시작된 남북 전쟁은 1865년 그 막을 내립니다.

1945년,

미국의 제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가 제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보지 못한채 뇌출혈로 사망합니다. 향년 63세였습니다.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4번 연임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경제 대공황과 세계 대전이라는 국내외적 위기상황에서도 미국민들은 그의 영도력을 믿고 네번이나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입니다.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고 그는 첫 두번의 임기동안은 대공황의 바닥에 있던 미국을 본궤도로 끌어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의 임기 동안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세계 속에 미국의 지도자적 위치를 확고하게 다져 놓습니다.

1882년 뉴욕 에서 출생 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26세의 젊은 나이로 주 상원의원에 선출돼 정치계 입문한뒤 승승장구 하는듯 했지만 39세 때 두다리가 불구가 되는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서 일생일대 최대의 불운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강인한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정계로 복귀하고 1933년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강력한 내각을 조직하고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추구하고, 국민들의 생활은 점차 안정돼 갔습니다.

루즈벨트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하던 1945년 2월 크림 반도 남단 항구도시 얄타에서 영국수상 처칠, 소련 지도자 스탈린과 전쟁 수행과 전후 처리과정에 관해 논의하고, 이 과정에서 한반도를 미군과 소련이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한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한국사에도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1945년 오늘, 루즈벨트는 뇌출혈로, 63세기의 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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