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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원, 북한주민 상속권 가처분


북한주민이 최근 남한 법원에 상속권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남한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북한에 사는 67살 윤모 씨 등 남매 4명은 지난 1987년 한국에서 숨진 아버지가 남긴 재산 중 자신들의 몫을 돌려달라며, 한국에 있는 새 어머니와 이복동생 4명을 상대로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와 함께 새 어머니와 이복동생을 상대로 아버지의 부동산을 처벌하지 말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 법원은 “윤 씨 등 채권자들이 제출한 자료로 볼 때 가처분 신청은 이유가 있다”며 지난 25일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윤 씨의 새 어머니와 이복형제들이 갖고 있는 1백억 원대 땅은 윤 씨 등이 낸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처분할 수 없게 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김성수 공보판사입니다.

“가처분이 발령됐다는 것은 승소 가능성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습니다. 가처분은 우선 본안 소송이 확정되기까지 잠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가처분이 됐다고 해서 반드시 승소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원고가 소송을 할 만한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주민의 채권이 인정돼 가처분이 받아들여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윤 씨 남매들은 구호 활동을 위해 북한을 오가는 한 선교사를 통해 자필로 된 진술서와 위임장을 작성해 지난 19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윤 씨 등은 자신들이 아버지의 진짜 자식임을 입증하기 위해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전자 검사를 위한 샘플, 북한 공민증 사진, 그리고 자필 소송 위임장을 작성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등을 법원에 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송대리인을 맡은 배금자 변호사에 따르면 평안남도 순천 출신인 윤 씨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2남3녀와 아내를 남겨두고, 장녀와 함께 월남한 뒤 권 씨와 재혼해 2남2녀를 낳았습니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윤 씨 아버지는 1백억 원대의 유산을 남겨놓고 1987년 사망했습니다.

배금자 변호사는 "북한 사람이 채권자가 돼 인용된 첫 가처분이며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원고들의 이름이 올라간 것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주민들도 남한의 아버지가 남긴 정당한 상속권을 인정받을 수 있고 이를 인정받기 위해서 북한주민이 남한에 직접 내려올 수 없으므로 남한의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이런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

법원은 우선 북한에 남아있는 호적과 주민증, 그리고 동영상 등을 통해 소송을 제기한 북한주민들이 윤 씨의 친자녀인지를 확인한 뒤에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윤 씨가 부자관계를 밝힐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 법원은 청구권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기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윤 씨가 고인의 아들이란 사실이 입증된다면 추가 심리를 통해 청구를 받아들이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법조계에서는 북한주민들도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한 헌법 조문상, 북한주민도 한국 국민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남한 법에 의거해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실제 월북 작가의 북한 내 가족이 소유한 저작권이 남한 법원에서 인정된 판례도 있습니다.

지난 2005년 북한에 사는 벽초 홍명희의 손자가 “자신의 동의 없이 할아버지의 소설 '황진이'를 출간했다”며 남한 출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조정을 통해 1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또 지난 해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한국전쟁 중 납북된 북한주민 이모 씨가 남한에서 보유하고 있던 자기 땅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이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주민이 상속권이나 남한 내 재산권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률 전문가는 "지금까지 남북 간 법적인 문제는 정부나 기업 등 주로 공법의 영역에 국한됐는데 앞으로는 저작권이나 재산권과 같은 사법의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관련 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단체인 숭의동지회 최청하 사무국장은 “북한주민이 승소할 경우 이 돈을 북한 당국이 아닌 주민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또 유사한 사례들이 나올 경우 정부가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현재로선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만약 소송에 이겨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 돈이 실제 본인에게 간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계속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경우, 토지 문제 등 정말 문제가 많을 텐데 한국 정부가 어떻게 다 해결할지 답답합니다.”

대법원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타이완의 경우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발생하는 사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양안관계 조례’라는 특별법을 만들었다”며 “한국도 이런 사례를 참고해서 특별법을 준비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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