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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100년된 한국 전통 음원 미 의회 도서관에 소장되기까지


이번에는 미국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의 향기’ 시간입니다. 이 곳 워싱턴에 있는 미 의회 도서관에는1896년에 녹음된 한인 최초의 음반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음반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구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들의 히틀러 암살 작전에 관한 ‘밸키리’ 라는 제목의 영화 내용도 살펴 보겠습니다.

19세기말 한인들은 어떤 목소리로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요? 워싱턴 디씨에 있는 미의회 도서관에는 1백여 년 전 미국에 건너 온 한인들의 노래를 녹음해 둔 원통형 음반이 보관돼 있습니다. 이 음반에 담긴 목소리는 한민족 최초의 음원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 이 음원이 녹음된 과정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강연회가 미 의회 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부지영 기자가 다녀왔는데요? 전해주시죠.

1896년 7월 24일 한인 남성 3 명이 워싱턴 시내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앨리스 플래처의 집을 찾습니다.

"양반 체면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간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네만……"

"여긴 미국일세. 그리고 우린 엄연히 부탁 받아 가는 게 아닌가."

"그렇네. 무슨 기계에 대고 노래만 부르면 되는 거라네. 우리 노래를 녹음해서 후세에 남긴다지 않나. 학문 연구가 목적이라니 도와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네."

미국 원주민 인디언 연구가 전공이었던 인류학자 앨리스 플래처……. 아직 흔치 않은 기계였던 에디슨 축음기를 갖고 있었는데요. 동료 학자 애나 톨맨 스미스의 부탁으로 이들 한인들의 노래를 녹음하게 됩니다.

플래처의 집에 찾아온 한인 남성 3 명은 전통 민요와 동요 등 모두 11곡을 불렀고, 플래처는 이들이 홀로, 또는 둘이서 부른 노래를 에디슨 식 원통형 음반 여섯 개에 담습니다. 이렇게 녹음된 음원은 그 동안 존재가 잊혀진 채 오랜 세월 미 의회 도서관 선반에 잠들어 있었는데요. 1998년 한국 음악 전문가인 로버트 프로바인 메릴랜드 대학교 음악학과 교수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집니다.

프로바인 교수는 1980년대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플래처 녹음 기록을 조사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플래처가 미국 원주민 인디언 전문가라서 별로 큰 기대 없이 들여다 봤는데, 한국 노래가 담긴 원통형 음반이 여섯 개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노래 소리보다 잡음이 더 많은 1백여 년전 한인들의 노래를 들으며, 플래처 교수는 궁금증에 빠집니다. 이희철, 안종식, 양손……. 노래를 부른 사람으로 기록된 이 세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어떻게 해서 노래를 녹음하게 된 걸까?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프로바인 교수//
"이 같은 음원이 녹음됐다는 것은 거의 모든 면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1896년 워싱턴에 한인이라곤 외교관 몇 명이 전부인데다 다들 교육 수준이 높았고, 엄격한 유교 사상의 영향 아래 성장한 양반들이었죠. 그런 양반집 자제들이 미혼 여성의 집에 찾아가서 노래를 불렀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더구나 생전 처음 보는 기계에 대고, 애들 노래까지 불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프로바인 교수는 이 음원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고요. 이 음원이 녹음되기까지 과정에는 당시 워싱턴의 상황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프로바인 교수//
"1890년대 워싱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과 당시 상황, 19세기말 한국의 정치 상황,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의회 도서관이 한국 전통 악기를 입수한 과정, 또 제가 가르치고 있는 메릴랜드 대학교를 졸업한 한국 최초의 미국 대학 졸업생 변수 씨의 얘기 등이 다 얽혀 있습니다."

19세기말 한반도는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 등 외세의 압력에 시달리는 가운데 수구파와 개화파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1883년 최초의 방미 사절단인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홍영식, 서광범 등은 근대화를 부르짖으며 1884년에 갑신정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말죠. 간신히 목숨을 건진 서광범은 일본으로 망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시민권까지 취득하는데요. 갑오개혁 후 귀국해 법부대신을 지낸 뒤, 1895년 주미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됩니다. 한민족 최초의 음원은 바로 서광범이 주미 공사를 지낼 당시에 녹음됩니다.

//프로바인 교수//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인 학생 7명이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일본을 탈출하는데요. 캐나다 뱅쿠버까지 가는데 성공하지만 그 곳에서 돈이 다 떨어지자 워싱턴 공사로 일하고 있던 서광범에게 연락한 겁니다."

이들 한인 유학생들은 서광범 공사의 도움으로 워싱턴의 하워드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당시 발행된 신문기사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바인 교수//
"동방에서 온 학생 7명이 하워드 대학교에 들어오다, 한인 학생들로 다들 귀족 출신이고, 영어를 전혀 못한다, 여섯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작다, 다들 머리 색이 검고, 몽골 계 특징 대로 다들 눈이 작다…… 이렇게 쓰여 있죠. 그런데 그 아래 주목할 문구가 있습니다. 이들이 도착한 날 학생들 사교 모임이 있었다, 한인 학생들은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여학생들이 한인 학생들을 둘러싸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처음에는 못 한다고 하더니, 결국 마지 못해 스와니 강과 한국 민요 등 몇 곡을 불렀다,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당시 이 모임에 애나 톨맨 스미스가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한국 노래에 흥미를 느낀 애나 톨맨 스미스는 친구이자 동료 학자인 앨리스 플래처에게 알렸고요. 플래처는 한국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인 애나를 위해 한국 학생들의 노래를 녹음합니다. 프로바인 교수는 조사를 통해, 당시 하워드 대학교에 입학한 한인 학생 7명 가운데 이희철과 안종식 등 노래를 부른 사람들의 이름이 포함돼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 동안 한민족 최초의 음원은 1907년 일본에서 원반형 음반에 녹음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요. 플래처가 녹음한 한인 유학생들의 노래는 이 보다 11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1998년 프로바인 교수는 한국 국악계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알려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그 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지난 2007년에는 이 음원을 담은 CD가 제작돼 나왔습니다.

미 의회 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에디슨 식 원통형 음반, 그리고 이 음반에 담긴 1백여년 전 한인들의 노래……. 이들의 노래는 한국 음악이 취입된 최초의 음향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당시 한민족이 어떤 음악을 즐겼는지 엿보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문화의 향기, 이번에는 새 영화 소개 순서입니다. 나치 독일의 독재자였던 히틀러 암살 작전을 다룬 영화가 나왔습니다. 독일군 장교들이 주도했던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둔 영화인데요. 미국에서는 ‘밸키리 (Valkyrie)’, 한국에서는 ‘작전명 발키리’란 제목으로 개봉됐습니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배우로 알려진 톰 크루즈 씨가 주연했는데요. 김현진 기자, 영화 소개 부탁합니다.

귀족 출신인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은 독일 군인이란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슈타펜버그 대령은 회의를 느낍니다. 슈타펜버그 대령은 1943년 북 아프리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은 뒤 베를린으로 돌아오는데요. 히틀러에 반대하는 사람이 혼자 만은 아니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발각되면 죽음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슈타펜버그 대령을 비롯한 일부 장교들을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요. 군부의 신뢰가 가장 두터웠던 스타우펜버그 대령이 폭탄을 안고 히틀러가 있는 상황실로 들어갑니다.

슈타펜버그 대령 역은 톰 크루즈 씨가 맡았는데요. 크루즈 씨는 이처럼 영화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데 놀랐다고 합니다.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다음 날 히틀러를 찾아가 만나는 장면 같은 경우, 영화 재미를 높이기 위해 만든 얘기라고 생각했다는 건데요. 하지만 실제로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히틀러가 슈타펜버그 대령의 팔을 두들기는 일들이 실제로 있었고, 기록에 남아있다고 크루즈 씨는 말했습니다.

영화 '밸키리'의 주요 장면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독일 내에서 촬영됐는데요. 현지 언론은 독일에서 영웅으로 간주되는 슈타펜버그 대령 역에 톰 크루즈 씨가 발탁되자 큰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논란 많은 신흥 종교 신자인 크루즈 씨가 독일 영웅 역할을 맡다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크루즈 씨는 보도가 과장됐다며, 독일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는 물론, 크루즈 씨와 크루즈 씨 가족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고, 따뜻하게 대해줬다는 건데요. 독일 정부가 일부 영화 자금을 댔을 뿐 아니라, 영화 촬영이 끝날 무렵에는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기도 했다고 크루즈 씨는 말했습니다.

극작가 크리스토퍼 맥콰리 씨와 네이슨 알렉산더 씨는 역사적 자료를 철저히 조사한 뒤 극본을 썼다고 하는데요. 연출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극본뿐 아니라 영화 제작 전 과정에 걸쳐서 작은 부분에까지 세심한 신경을 썼습니다. 싱어 감독은 나치 군복을 입고 있는 독일군 장교들이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관객들은 등장인물이 어떤 인물이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싱어 감독은 말했는데요. 그 인물의 인간다운 면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 '밸키리'의 주인공들은 독일 군인이지만 나치 당원이 아니라고 싱어 감독은 말했는데요. 히틀러를 살해하고, 나치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며, 이 영화는 절대 나치를 동정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싱어 감독은 강조했습니다.

히틀러 암살작전에 가담하는 헤닝 폰 트레츠코프 소장 역으로 영국의 연기파 배우 케네스 브래너 씨가 출연했는데요. 이들 독일군 장교들은 히틀러의 잘못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 듯 하다고 브래너 씨는 말했습니다.

브래너 씨는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같은 시도가 이뤄졌다는 점, 그것도 그처럼 고위급 장교들이 가담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요. 모든 사람들이 히틀러 같지는 않다는 점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펜버그 대령은 히틀러가 있던 상황실에 폭탄을 들여놓는데요. 폭탄이 터지긴 하지만 나치 지도자들을 살해하는데 실패하고요. 슈타펜버그 대령은 히틀러 암살작전에 가담한 혐의로 다른 2백여 명과 함께 처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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