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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간첩’ 논란 이수근 처조카 40년만 무죄판결


지난 1960년대 말 이수근 간첩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21년을 복역한 이 씨의 처조카에게 한국의 사법부가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건 발생 당시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수근 이중간첩 사건이 한국의 정보기관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데 따른 판결인데요,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질문1]

우선 판결 내용부터 전해주시죠.

[기자]

네, 서울고법 형사6부는 19일 지난 1969년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이수근 씨의 처조카로 올해 70살인 배경옥 씨에 대한 재심에서 이 씨의 암호문을 북한으로 우송하게 하는 등 국가기밀 누설을 방조했다는 혐의 등에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다만 이 씨의 변장 사진을 다른 사람의 여권에 붙여 위조하고 이를 사용한 부분에 대해선 공문서 위조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질문2]

한국의 재판부가 배 씨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자]

네, 재판부가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배 씨가 받은 혐의의 원천인 이수근 씨에 대한 간첩 혐의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수근 씨가 당시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한 자백이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폭행에 의한 것이었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입니다.

재판부는 "이 씨의 사형 집행 목격자에 따르면 그가 '나는 북도 싫고 남도 싫어 중립국에서 살려고 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는 취지로 말한 점 등을 종합할 때 그를 위장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이 씨가 간첩이라는 점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배 씨가 간첩 행위를 방조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 등 피고인들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과 구타 등 가혹 행위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는 기록조차 하지 않고 형식적인 수사로 일관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3]

그렇다면 40년 전 있었던 이중간첩 이수근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는지 설명해주시죠.

[기자]

이 사건은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가 열린 지난 1967년 3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던 이수근 씨는 유엔군사령부의 한국계 직원인 제임스 리, 한국 이름으로 이문항 씨에게 귀순 의사를 밝혔고 우여곡절 끝에 귀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캄보디아로 향하다 기내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 체포돼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죄 등으로 그 해 7월 사형당했습니다.

이번에 무죄판결을 받은 배 씨는 당시 월남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중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남도 북도 싫다며 중립국 행을 원하는 이 씨와 함께 출국한 뒤 붙잡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심에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배 씨는 지난 1989년 출소한 뒤 2005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질문4]

이 사건은 그동안 국가 공권력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는 의혹을 받아오지 않았었나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한국 내에선 이수근 씨가 귀순 당시 한국 국민으로부터 거국적인 환영을 받는 등 한 때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반공강연회 연사로 동원되는 등 중앙정보부의 강요에 환멸을 느껴 3국행을 선택했다는 설이 돌았습니다.

실제 일부 언론에선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었습니다.

결국 지난 2007년 1월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당시 남북한 체제 경쟁으로 개인의 생명권이 박탈당한 대표적인 비인도적,반민주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함께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피해구제와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는데 마침내 이번에 법원이 그 혐의를 벗겨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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