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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 비오 12세 시복 문제로 이스라엘과 갈등


로마 교황청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교황 비오12세의 시복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교황 비오 12세를 궁극적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릴 계획인 반면,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비오 12세가 성인이 된다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김연호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MC: 먼저 교황 비오 12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죠.

기자: 비오 12세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1939년에 교황직에 올라서 58년에 사망했습니다. 이탈리아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난 비오 12세는 국제법과 외교에 능통해서 독일주재 교황청 대사와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냈구요, 유럽과 남미 각국이 교황청과 조약을 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교황이 된 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MC: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비오 12세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기 위한 계획을 추진 중이라구요?

기자: 그렇습니다. 현재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 전 단계인 시복 절차가 진행 중인데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서명만 하면 됩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달 초 비오 12세 선종 50주년 추모 미사에서 시복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비오 12세의 시복 절차는 지난 주말 중단됐습니다. 교황청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비오 12세를 복자로 선언하는 교령에 서명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MC: 서명만 남겨 놓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이 비오 12세의 시복 절차를 중단한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 겁니까?

기자: 이스라엘 유대교 단체들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비오 12세의 시복 절차를 총괄하고 있는 교황청의 굼펠 신부도 이런 사정을 인정했습니다. 비오 12세에 대한 평가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데요, 비판론자들은 비오 12세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공식적으로 비난하지 않은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달 초에도 이스라엘 유대교 최고 지도자 시어 야셔브 코언이 로마 가톨릭 종교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런 비판론을 제기했습니다. 코언은 비오 12세가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남몰래 노력했다 해도,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을 옹호하고 나치 독일을 비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비오 12세의 시복 절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MC: 이런 비판에 대해 로마 교황청은 어떤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까?

기자: 비오 12세가 공개적으로 나치 독일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살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조용히 활동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차대전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대내외적으로 처해 있던 복잡한 상황을 감안할 때, 비오 12세가 가능한 한 많은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1942년 성탄절 라디오 연설에서는 비오 12세가 유대인 대학살과 추방을 분명히 언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비오 12세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비오 12세의 도움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아니냐는 입장입니다.

MC: 그럼 여기서 잠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 살펴보죠.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이런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뭡니까?

기자: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들이 독일 민족에게 위협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 당을 이끌고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보고 독일 민족의 우월성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을 추방하고 탄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학살한 유대인은 6백만 명에 이르는데요, 특히 유대인들을 한 방에 몰아 넣고 독가스로 살해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MC: 이스라엘 유대인들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겠군요. 그런데 비오 12세의 시복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과 교황청의 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다구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취임한 뒤 이스라엘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는데요, 아직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이 성사되지 않고 있습니다. 비오 12세의 시복 절차를 총괄해 온 굼펠 신부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에 전시된 비오 12세의 사진이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을 막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기념관 측은 비오 12세가 유대인들을 나치 학살에서 구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설명문을 사진과 함께 게시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교황의 이스라엘 방문과 이 사진은 관계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오 12세 문제가 양측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어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도 비오 12세가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기념관의 사진 때문에 교황이 이스라엘 방문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MC: 지금까지 로마 교황청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2차대전 당시 교황 비오 12세의 시복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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