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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어두운 그림자


(문) 지난 주에 미국의 주식지수를 나타내는 다우지수가 18%, 정확하게는 1,874 포인트나 폭락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7천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의 주식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는데요? 현재 미국에서는 이런 금융위기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됐는지 원인분석에 한창인데, 최근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 신문이 한 기사에서 금융위기의 주범을 지목하고 나서서 화제더군요?

(답) 네, 뉴욕타임스지는 '그린스펀의 유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싣고 앨런 그린스펀 FRB, 즉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의장을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 중에 하나로 지목해 화제입니다.

(문)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라 하면,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 경제의 부흥을 이끈 사람으로 칭송받아 왔는데, 갑자기 금융위기를 불러온 사람으로 비난 받다니 놀랍군요?

(답) 네, 미국에서 그린스펀 전 FRB의장에 대한 평가는 아까 진행자께서 말씀하신대로, 칭찬일색이었습니다. 이런 평가는 지난 2000년 상원청문회에서 텍사스 출신 공화당의 필 그램 상원의원이 그린스펀 의장에 대해 한 칭찬을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필 그램 상원의원은 하나의 국가적 현상으로, 지구상에서 현재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을 뽑으라면, 바로 그린스펀 의장을 뽑겠다고 말했습니다.

(문) 정말 대단한 찬사네요. 그렇다면 뉴욕타임스지가 필그램의원으로 부터 이런 찬사를 들었던 그린스펀 전의장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내세운 이유는 뭔가요?

(답) 네, 간단하게 말하면, 뉴욕타임스지는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 파생금융상품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그린스펀 전의장이 재직시에 이 파생금융상품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이 상품에 대한 규제에 반대하면서 규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방해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문) 그런데 이 파생금융상품이란 뭔가요?

(답)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주식이나, 예금, 채권 그리고 외국 돈 등을 우리가 기초금융상품이라고 부르는데요, 파생금융상품은 이런 기초금융상품들의 가격이나 아니면 금리나 환율 등이 미래에 어떤 값을 나타낼 것인가를 예상해서, 그 값의 움직임을 상품화한 것입니다. 실지로 현재 미국에서는 셀 수도 없을 만큼의 파생금융상품이 있고, 수익을 얻는 과정도 너무 복잡해서, 소위 금융전문가들조차도 이 파생금융상품시장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문) 그런데 이 파생금융상품이란 게 얼마나 위험한 건가요?

(답)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조차 이런 파생금융상품들이 어떻게 운용되는 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상품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요즘 월가의 구세주같은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워렌 버핏은 이 파생금융상품을 큰 위험을 수반하는 금융의 대량살상무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투자은행가 펠리스 로해틴도 이 상품을 수소폭탄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이 상품들이 이제까지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고요, 또 어느 누구도 이 상품의 규모가 얼마나 되고, 부실이 발생했을 때, 부실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문) 그렇다면 이런 알다가도 모를 파생상품과 그린스펀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답) 지난 1987년 그린스펀 의장이 취임했을 때 이 파생상품시장은 규모가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의장 재임기간 중, 그의 비호 하에서 파생상품시장의 규모가 급속하게 늘어나 지난 2002년에는 106조 달러 그리고 올해에는 531조 달러 규모로 급속하게 커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만일 그린스펀 전의장이 재임 중에 이런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적절하게 규제했더라면, 오늘날의 위기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문) 그린스펀 전의장도 경제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그린스펀 전의장이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답) 표면적인 이유는 파생상품은 창의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외부의 규제를 받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윱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보다 그린스펀 전의장의 개인적인 성향을 이유로 들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의장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소설가 아인 랜드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지각이 있는 개인들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을 악으로 묘사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경하는 그린스펀 전의장, 경제정책을 세울 때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죠. 또 미국증권감독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아더 레빗 주니어는 그린스펀 전의장은 정부를 근본적으로 멸시하기 때문에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자체를 반대했다는 것이죠.

(문) 그렇다면 이제까지 미국 안에서는 이런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답) 네, 지난 1992년 당시 민주당의 에드워드 마키 하원의원이 미국 회계감사원에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습니다. 2년의 연구 끝에 회계감사원이 파생상품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죠. 하지만 그리스펀 전의장의 규제반대로 이 보고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또 1997년 연방 선물거래위원회에서 보고서를 내고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할 것을 의회에 촉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 전의장과 제임스 루빈 당시 재무장관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이같은 방안은 월가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의회를 설득해 규제시도가 또다시 무산됐습니다. 이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앨런 블라인더씨는 그린스펀 전의장은 파생상품을 규제하려는 제안이 있으면, 바로 그 싹부터 잘라내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린스펀은 이제까지 꿋꿋하게 파생상품의 치어리더, 즉 응원단장 역할을 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문) 그런데 정작 그린스펀 전의장은 현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답) 얼마전에 그린스펀 전의장 조지타운 대학에서 연설을 했는데요, 신뢰가 중요한 시장경제에서는 평판이 중요한 데, 현재 평판에 대한 존중이 사라져 슬프다란 말을 했습니다. 그린스펀 전의장, 비난이 점점 자신에게 쏠리니까, 이로 인해 자신의 평판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일까요? 여하튼 최근에 나온 그의 발언 중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부분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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