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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위원회, “필리핀 내전 상황 심각”


동남아시아의 섬나라 필리핀에서 내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수십년째 독립투쟁을 벌여온 이슬람 반군 '모로 이슬람해방전선'과 정부군이 지난 달 대규모 전투를 벌였는데, 민간인들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급기야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가 필리핀 내전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김연호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MC: 필리핀 내전 상황,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기자: 국제적십자위원회에 따르면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로 지난 달에만 13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습니다. 피해주민 대부분이 옷만 겨우 챙겨서 전쟁터를 빠져나왔는데요, 모두들 넋이 나간 사람들이 됐다고 합니다. 또다시 전투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보호시설에서 싸움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호시설이라고 해봐야 야자나무 잎과 플라스틱 판으로 대충 하늘만 가린 곳이 대부분인데요, 우기가 이미 시작돼서 이마저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학교가 개학하면서 학교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현재 6만 명에게 물과 음식, 약품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내전이 지속된다면 필리핀에 인도주의적 재앙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MC: 듣고 보니 필리핀 내전이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최근의 전투는 어떻게 발생한 겁니까?

기자: 이슬람 반군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이 활동하고 있는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지난 달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반군과 정부 간의 휴전협정이 체결됐던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격렬한 전투였다고 합니다. 반군은 필리핀 대법원이 정부와 반군의 평화협정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린 데 격분해서 기독교도들이 주로 사는 마을들을 기습해서 민간인 수십 명을 살해하고, 정부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정부군은 반군 사령관들의 목에 현상금을 걸고 강력히 대응했는데요, 정부군과 반군을 합해 모두 2백 명 이상이 전투로 숨졌습니다.

MC: 필리핀 대법원이 정부와 반군의 평화협정에 제동을 걸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던 겁니까?

기자: 정부와 반군은 30여 년에 걸친 분쟁을 끝내기 위해 평화협상을 벌인 끝에 평화협정에 합의했는데요, 이번에는 북부 기독교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기독교 주민들은 이슬람 반군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배제된 데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서, 평화협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대법원에 항소했는데, 대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은 필리핀 정부에 반군과의 평화협정 체결 노력을 즉각 중단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기로 한 날을 하루 앞두고 이런 판결이 나온 건데요, 반군이 기독교인들의 마을을 집중 공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습니다.

MC: 평화협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까?

기자: 협정안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반군과의 평화를 위해 상당한 양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반군의 사실상 자치지역을 더 확대해주고, 민다나오 섬의 지하자원 개발과 관리를 비롯해서 각종 경제적 권한을 반군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반군 무장세력을 흡수해서 치안을 담당할 보안군을 창설한다는 구상도 협정안에 담겨 있습니다. 반군과 의욕적으로 대화를 추진해온 아로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겁니다.

MC: 정부와 반군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다시 전쟁 상태에 들어갔는데, 평화협정 체결은 당분간 어렵다고 봐야 하는 겁니까?

기자: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반군과 치열한 교전이 있은 뒤, 반군과는 더 이상 회담을 갖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로요 대통령은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상대와 협상하지는 않겠다고 못박았는데요, 민간인들의 안전이 확보되고 반군 안에서 책임있는 인사들이 실권을 다시 잡을 때까지 협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평화협정 협상을 위해 구성했던 대표단도 해체했는데요, 대신에 당분간은 민다나오 섬의 이슬람 주민 대표들과 직접 만나서 문제를 풀어나가겠는 입장입니다.

MC: 정부와 반군이 수십년째 대립하고 있는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필리핀은 가톨릭 신자가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슬람교도는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남부 민다나오 섬과 주변지역에 주로 모여 살고 있는데요, 반군은 이 지역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여왔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이슬람교도들의 분리 독립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반군과 정부 사이에 평화협상이 간간이 있었지만, 반군 안에서는 과격세력이 평화협상에 반발하고 정부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화협상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서 평화협상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정부와 반군간의 무력충돌로 지금까지 12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MC: 지금까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필리핀의 내전 상황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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