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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북한 식량난 Ⅱ-매년 거듭되는 식량난의 이유


북한이 올해 지난 1990년대 중반의 대기아 사태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을 것이라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민간 지원단체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지난 여름 큰물 피해와 국제 곡물가격 급등 등 악재가 겹쳐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이 적게는 1백만t에서 많게는 1백60여만t에 이를 것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어제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북한 식량난의 실태와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특집시리즈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서지현 기자가 해마다 거듭되는 북한 식량난의 원인과 배경을 취재했습니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에서 식량 지원 구호활동을 하며 북한의 대기아 사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부 당국의 정책 실패를 북한 식량난의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식량계획, WFP와 유엔아동기금, UNICEF의 현장요원으로 북한의 기아 사태를 최일선에서 지켜봤던 영국 워익대학의 헤이젤 스미스 교수는 북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야 말로 거듭되는 식량난의 첫 번째 원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스미스 교수는 식량난은 명백히 북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때문이라며, 북한 당국은 옛 소련의 지원이 중단된 뒤 국가경제를 일으키기 못했고, 해외로부터의 투자 등도 유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식량을 구입할 자금이 부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냉전시기 옛 소련과 중국 등에서 무상지원을 받거나 국제통용 가격 이하로 식량을 수입하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북한 경제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식량 수입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입니다.

스미스 교수는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구 등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아간 것은 북한 당국이며, 자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첫 번째 원인은 북한 당국의 정책적 잘못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제기구들의 시각도 스미스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의 여러 나라들도 힘겨운 식량난을 겪고 있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정치체제적인 요인이 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 의 압둘레자 아바시안 곡물 담당 처장은 북한의 식량난은 무엇보다 정치상황과 북한 내부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며, 근본적으로는 북한이 고립돼 있기 때문에 불거진 만성적인 문제로서 현 상황에서는 식량난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만성적인 북한 식량난의 두 번째 원인으로는 자연재해와 지리적 요인이 꼽힙니다.

국제 재난구호 전문가인 존 나우에 박사는 북한은 산이 많아 농토가 부족하고, 비가 많이 올 경우 토사가 계곡으로 모두 휩쓸려 나가면서 강이 범람해 그나마 있는 농토를 침범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농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우에 박사는 지난 1997년 북한을 방문해 미국 민간단체들의 대북 식량 지원을 일선에서 담당한 뒤 현재까지 대북 지원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경작지가 부족하면 단위면적 당 곡물 생산량이라도 늘려야 하는데, 북한은 비료생산이 급격히 줄고 영농장비가 낙후한 데다 농업 기반시설마저 열악해 이마저 한참 뒤떨어져 있습니다.

나우에 박사는 지난 1996년 북한 당국이 토질 개선을 통해 단위면적 당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기술 지원을 요청했었다며, 북한의 농업 생산력을 높이려면 지속적인 영농기술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수확량을 일정 부분 늘린다 해도 해마다 거듭되는 큰물 피해를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대북 지원활동을 해온 국제 구호단체 '월드 비전'의 빅터 슈 북한사업국장은 매년 수확 직전에 수해가 발생해 특히 쌀이 빗물에 모두 휩쓸려 나가 수확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매년 막대한 큰물 피해가 계속되는 이유는 북한 당국의 열악한 재해 대응능력 때문입니다.

나우에 박사는 미국 역시 여러 지역에서 재해가 발생하지만 구호단체들이 재빨리 개입해 활동하고, 구호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장비 등이 충분하다며, 북한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사회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난상황에 긴급히 대응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입니다.

'월드 비전' 한국 지부의 박창민 북한사업본부장은 북한 당국이 지난 해 큰물 피해 직후 복구용 경장비를 요청한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월드비전 박창민 북한사업본부장: 농경지에 밀려든 토사를 제거하지 않으면 내년 농사에 상당한 타격을 입거든요. 표현 그대로 하면 '등짐으로 나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농경지를 경작할 수 있도록 회복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다시 북한의 경제정책 실패로 돌아옵니다. 재해는 어느 대륙, 어느 나라든 공통적으로 겪는 것이지만 재원 부족으로 이에 제대로 대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에 식량 부족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국 워윅대학의 헤이젤 스미스 교수는 자연재해 역시 북한 당국의 경제정책 실패로 기반시설이 확충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며, 경제력 부족은 재난 피해를 막고 복구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 부족을 낳아 결국 자연재해가 인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으로 북한은 어차피 외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마당에 최근 국제사회의 지원이 감소한 것이 식량난 악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을 총괄해온 세계식량계획, WFP의 폴 리즐리 대변인은 각국 정부가 정치적 견해차와 북한 정부에 대한 우려, 주민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 등을 이유로 대북 식량 지원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 핵 문제를 비롯한 정치상황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점점 줄고, 또 지원된 식량마저 제대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국제사회가 대북 지원을 더욱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에 자국민을 살리기 위한 지원 요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북한은 지난 해 수해 이후에야 처음으로 WFP를 통해 예비지원을 요청했었고, 올해는 현재까지도 비료나 식량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헤이젤 스미스 교수는 주민들이 굶어죽는 것은 북한 당국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라며,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대규모로 굶어죽는 사태가 다시 발생하기 전까지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밖에 최근 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곡물을 확보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중국이 대북 식량수출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북한 식량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지난 1990년대 대규모 아사 사태 때와 비교해 지난 10년 간 북한의 시장경제가 발달하긴 했지만, 지난 해부터 북한 당국이 시장 상거래 행위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데다 최근에는 상인들이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을 기대하며 사재기에 나선 것도 극빈층의 식량난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미국의 소리, 서지현입니다.

지금까지 북한 식량난 특집시리즈, 그 두 번째 순서로 북한 식량난의 원인과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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