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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땅 새로운 삶] 탈북자 미국 생활 수기 – 브라이언 씨 이야기 2


몇일동안 계속되는 추위때문 일까.. 어제부터 감기 때문에 좀 고생을 하고 있다. 감기 때문에 몸이 더욱 피곤하다. 하루만 쉬고 싶지만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나 대신 일 할 사람이 없다. 옆에서 위로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일까.. 오늘따라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내 나이 여섯살에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일년 후 계모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나더러 처음보는 아줌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라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는 나이에 아버지의 요구를 아무 이유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계모를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년 후 부터였다.

한 해, 두 해 나는 성장해 갔고, 계모에 대한 불만도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북한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다. 점점 먹을 것이 박해지는 북한의 현실에서 내가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다 계모 탓인 줄로만 느꼈었다.

하도 배가 고파서 집 쌀독에서 몰래 쌀을 퍼내 빵을 바꿔먹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떤 때는 그 사실이 들통나서 계모에게 장작이 부러질 정도로 맞기도 했다. 처음엔 그냥 맞기만 했지만, 한 번, 두 번 반복되자 반항을 하면서 결국 나중엔 참지 못해서 가출을 했고, 마지막엔 집에서 쫓겨났다.

나는 그때부터 반년동안 집없이 길거리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다. 갈 곳은 없고 마냥 이곳 저곳 다니면서 길거리에 떨어진 빵쪼각을 주워먹고, 시장에서 빌어먹고, 도둑질도 해가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보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정말 정말 힘들었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난 굶어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중국에서도 많은 고생을 했었지만... 이젠 자유롭고, 배불리 먹을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내가 집을 뛰쳐나올때 저만치 뒤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던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그때를 회상하면 나도 몰래 눈물이 난다. 지금도 못난 이 아들 때문에 속 태우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살아 계신지... 굶지는 않으셨는지... 아버지가 하실 모든 걱정들을 내가 풀어드릴수만 있다면... 이젠 효자가 되고 싶다. 나 땜에 속태우신 아버지께 그 동안 죄송한 마음 열배, 백배로 효도하고 싶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아버지께 한번도 한 적이 없는 말을 지금 하고 싶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부디 만나는 날까지 몸건강히 계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동안 나를 키워주신 새 어머니에게도 죄송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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