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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따른 북한 수해 지원사


북한의 수재는 거의 매년 되풀이 되고 있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당시의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1백 년만의 대홍수로 알려졌던 지난 1995년부터 올해까지 수해에 대한 북한 정부의 대응과 그에 따른 한국 정부,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서지현 기자와 살펴보겠습니다.

문: 서지현 기자. 북한에 집중호우가 내린 것은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였는데요. 오늘이 16일인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의 지원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진 것 같은데요?

답: 네. 유엔은 수해 사흘만인 지난 14일 긴급 조사단을 파견했고, 16일 오늘 지원 계획을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17일 긴급 지원을 공식 발표한다고 하는데요. 피해 상황이 그만큼 신속하고, 상세하게 바깥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난해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발생한 수해 상황과 올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7월10일부터 16일까지 북한에 집중호우가 내렸는데, 당시 '조선중앙TV'는 7월16일 '대동강 상류지역에 많은 비가 쏟아져 1990년 이후 처음으로 대동강에 큰 물이 졌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의 일부 지방에서 예년에 보기 드문 큰 비가 내려 살림집과 공공건물 수만 동이 파손, 침수되고 농경지 수십만 정보가 침수되거나 매몰, 유실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정확한 피해상황과 상세한 수치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었습니다.

문: 그런데 올해는 북한이 꽤 상세히 피해 정도를 보도했죠?

답: 네. 북한은 1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건물 3만여동, 주택 6만3천3백여세대, 또 농토에 대해서도 황해북도는1만 3천여 정보, 함경남도는 9천여 정보 등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피해상황을 즉각 전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이 날 유엔에 긴급구호를 요청했는데, 유엔 관계자들도 적잖이 놀랐다고 합니다.

세계식량기구, WFP 아시아 사무소의 폴 리즐리 대변인은 지난해와 비교해 북한 정부가 매우 신속하게WFP 등의 국제기구에 긴급 비상지원을 요청했다며, 이는 매우 달라진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북한이 외부의 도움을 보다 신속하게, 또 적극적으로 요청했다는 것이군요. 지난해에는 어땠습니까?

답: 지난해 7월 26일, 한국의 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연맹 동아시아 대표부를 통해 북한 측에 긴급구호품을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적십자회는 '남측의 성의는 고맙지만 자체적으로 극복해 보겠다'며 거부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7월30일과 8월 1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통해 수해를 이유로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리랑 공연' 과 '8.15 민족 대축전'을 취소한다고 밝혔으며, 북한의 수해 피해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것은 그제서야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며칠 뒤인 8월4일, 중국 랴오닝성에 있는 김성원 단둥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북한대표부 대표가 한국의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남한 정부가 정치적 목적 없이 진정으로 돕는다면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알려져, 당시 한국 언론들은 북한 당국자로는 처음으로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8월9일, 그제서야 북한은 뒤늦게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를 통해 한국 측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북측위원회는 남측위원회 앞으로 보낸 팩스에서 "피해복구 물자로 라면이나 의류품보다는 복구사업에 실제 긴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멘트와 강재 등 건설자재와 화물차를 비롯한 건설장비, 그리고 쌀 담요 의약품 등을 기본으로 했으면 하는 의견"이라며 필요한 물품을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문: 한국 정부의 지원 역시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답: 네. 올해는 수해 발생 사흘만에 한국 정부가 대북 긴급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일주일만인 17일 지원 발표를 할 예정인데요. 지난해에는 한 달을 넘겨8월11일이 돼서야 대북 수해복구를 위해 1백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민간 대북지원단체가 자체 구호품과 정부지원금 1백억원 등 2백억원 상당의 지원 물자 북송 작업에 착수한 것도 8월 중순부터입니다.

북한의 앞선 지원 거부와 한국 정부의 뒤늦은 대응, 이는 모두 수해에 앞서 2006년 7월5일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미사일 사태 이후 남북관계가 워낙 경색돼 있어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급냉각됐던 남북관계가 한국 정부 측의 이같은 지원으로 일정 부분 완화되는 데 큰 도움이 됐었습니다.

문: 1995년에도 북한은 이른바 '1백 년만의 대홍수'를 겪지 않았습니까. 당시 상황과 현재의 수해 이후 지원 움직임을 살펴보면 더 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답: 물론입니다. 당시 북한 전역에서는 1백50억 달러의 재산 피해와 이재민 5백20만명이 발생하는 등 유례 없는 물난리로 이후 아사자가 속출하는 사태가 빚어졌었습니다.

유엔 북한 수해평가단이 8월29일부터 일주일 간 북한 전역의 피해상황을 점검해 국제사회에 알린 뒤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식량계획 등 유엔 기구 회원국들과 독일, 스위스, 일본 등의 개별 지원금이 답지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제서야 9월18일, 유엔 회원국으로서 2백만 달러 정도는 한국 정부가 판단해서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문: 그런데 한국에서는 당시 알려진 북한의 피해 정도가 과장됐다며, 북한당국이 수해를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논란도 불거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답: 네. 보수단체와 언론들에서는 당시 좀 더 냉철한 분석과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북한당국이 수해 상황을 과장해 알리고 있다, 구걸 외교를 하고 있다는 등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었는데요. 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그 해 9월 국회 정보위에서 '공중 촬영과 여러 채널을 통해 수집한 근거로 볼 때, 북한의 피해는 10배 이상 부풀려졌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 해 9월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3차 회담에서 북한 측은 한국 대표단이 회의장에 들어서자 곧바로 북한의 수해상황을 상세히 전하며 한국에서 빚어진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전금철 북한 측 회담 수석대표는 '홍수와 물난리가 9개도 1백45개 시군을 휩쓸어 총 5백20만명의 이재민과 1백50억 달러 상당의 피해를 냈다. 당초 밖에서는 우리의 피해 발표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유엔 조사단이 와서 집을 잃고 나앉은 사람들과 이불 등 살림살이가 다 썩는 모습을 보고는 우리의 발표를 신뢰했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문: 올해 국제정세나 남북관계는 이전과 상당히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 북한의 수해 지원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요?

답: 유엔 인도지원조정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95년 이후 매년 홍수나 태풍, 2004년 용천 참사 등 해마다 자연 재해나 큰 인재를 겪어왔습니다. 한반도가 처한 특수성으로 인해 북한 정부의 재해 대응과 이에 따른 한국 정부, 국제사회의 지원은 북한 핵이나 미사일 등 안보 문제와 연계돼 왔습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인권감시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케이석(Kay Seok) 북한 담당 연구원은 이번 수해에 대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언론 등을 통해 피해상황을 신속하게 알린 것은 남북정상회담 등의 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케이석(Kay Seok) 북한 담당 연구원: 지금 같은 경우는 남북정상회담도 예정돼 있고, 이미 한국 정부가 지원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좀 더 지원이 빨리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 간접적으로 어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차기 6자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앞 둔 올해는 이전의 그 어느 수해 때보다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비교적 순조로운 상황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한국 등 나라별 지원은 물론, 북한 지원에 대한 한국 내 여론 형성도 신속하게 이뤄져 민간 부문의 대규모 지원도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서지현 기자와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따른 북한 수해 지원사를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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