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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00년의 발자취] 한인이 최초로 설립한 윌로우스 비행학교 I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인이 최초로 설립한 윌로우스 비행학교에 관한 얘기 전해드립니다.

1910년대 말에 북가주의 윌로우스 (Willows) 라는 곳에서 한인 100여명이 쌀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이들 농민가운데 김종림이라는 사람이 1920년도에 윌로우스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하게됩니다. 김종림은 함경도 대표 발기인으로 국민회의의 열성적인 회원이었습니다.

"김종림 씨는 흥사단 함경도 대표 발기인으로서 하와이 농장 이민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북쪽에 위치한 윌로우스 지역에서 350만평 정도의 농지를 소유하고 쌀 농사를 지어서 백미대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부호였습니다."

농장을 경영하면서 재력을 갖춘 김종림은 당시 공군력이 미약하던 일본과 대항해 독립 전쟁을 해야 승리한다고 믿고 사재를 털어 비행학교를 설립합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김종림과 1920년 상해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이 의기 투합해서 김종림이 자금을 조달해 1920년에 북가주에 있는 윌로우스라는 지역에서 비행기 두대를 구입해 비행학교를 세워 한인들에게 비행술을 가르쳐 결국 만주에 있는 독립군과 합쳐 일본을 폭격하기 위해 비행학교를 세웠습니다."

한인비행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대한제국의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07년 대한제국군이 해산될 때까지 무관학교의 교관으로 재직한 노백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노백린은 1875년 황해도에서 출생해 대한제국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대한제국군이 일본에 의해 1907년 해산될 때까지 무관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다가 한일 합방 후 상해 임시정부 군모총창을 역임했습니다.

미국 각지를 순회하며 한인들에게 독립 전쟁으로 조국이 독립할 수 있다고 역설함으로써 큰 환영을 받았고 공군력에 의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믿어 공군 조종사를 훈련시키던 김종림과 뜻을 같이해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김 종림은 1974년 로스엔젤레스에서 병사했고 노백린은 1926년 상해에서 병사했습니다.

윌로우스 비행 학교에 관한 얘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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