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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보람] 하주몽 씨 - 고교 때 아르바이트로 발 들여 요식업계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얼마전 한국에서 역사 드라마 ‘주몽’이 큰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고구려 건국의 아버지 고주몽의 생애를 다룬 이 드라마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내 한인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는데요. 요즘 워싱톤 지역에서는 또다른 주몽이 조용히 바람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인 사업가 하주몽 씨입니다.

“할아버지가 옛날 고구려 고주몽의 이름 따갖고 주몽이란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고주몽이 고구려 건국신화의 주인공이라면 하주몽 씨는 워싱톤 지역 창업신화의 주인공입니다. 하주몽 씨는 일본식 철판구이 전문 식당 ‘사쿠라’ 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버지니아주 프레드릭스버그에서부터 메릴랜드주 오션 시티에 이르기까지 현재 하 씨가 운영하는 사쿠라 식당은 모두 열여덟개에 달합니다.

커다란 철판을 사이에 놓고 요리사가 손님 앞에서 직접 요리를 하는 일본식 철판구이 식당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단숨에 고기와 야채를 써는 요리사의 날렵한 칼 솜씨에 손님들은 눈을 떼지 못합니다. 요리사의 손에 들어간 주방기구는 새가 되어 공중을 날고, 양념통은 악기로 변신합니다. 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리는 요리과정 하나하나가 일종의 쇼입니다.

양파를 썰어서 산처럼 쌓고, 술을 끼얹어 불을 붙이면 화산처럼 불이 치솟습니다. 때로는 곡예사처럼, 때로는 마술사처럼 재주를 부리는 요리사들 덕분에 철판구이 전문점은 아이들 생일파티나 졸업파티 장소로 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하주몽 씨가 철판구이 전문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 온 직후인 열세살 때였습니다.

“그 다음 날 학교를 갔더니 거기에 인제 한국 학생이 하나 있더라구요. 찰스 위라고, 위 씨에요. 그 친구가 저패니스 데판야키 (Japanese Teppan Yaki, 일본식 철판구이) 식당에서 일한다고 그러길래, 같이 가서 일할 의향이 없냐고 그래서, 그 주말에 그 친구와 같이 식당을 찾아갔지요. 그랬더니 주인이 주인이 한번 해보라고 그래서 그 친구하고 저하고 거기서 접시닦이를 시작했어요.”

하주몽 씨는 그 때부터 접시도 닦고 식탁도 치우면서 철판구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요리도 배우게 됩니다.

“저희가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한 열여섯살쯤 됐을 거에요. 주인이 저희한테 쿡 (cook, 요리사)이 필요하니까 자기가 쿡을 배워줄 테니까 쿡을 한번 시작해 보라고.. 그래서 그 때부터 쿡을 배우기 시작해서, 16살부터 우리는 쿡을 시작했어요. 물론 주중에는 학교도 다니고 그래야 되니까 주말 금, 토, 일, 3일 이렇게 쿡을 시작했지요.”

이렇게 시작된 철판구이 요리사 일은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닐 때도 계속됐습니다. 많을 때는 하룻밤 1백 달러에 가까운 팁 (tip, 봉사료)을 받으면서, 대학시절 가장 돈 많은 학생이란 소문이 돌 정도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하 씨는 늘 즐거운 마음으로, 신이 나서 일했다고 말합니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일하는 철판구이 요리사 일이 적성에 맞았던 것입니다. 반면 대학교때 전공과목이었던 컴퓨터는 별로 자신과 맞지 않았다고 하주몽 씨는 말합니다.

“이런 적이 한번 있었어요. 부모님한테 내가 대학을 그만 두고,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서 내 식당을 하나 내고 싶다.. 부모님이 그 때는 굉장히 반대를 했죠. 식당을 내도 좋으니 대학을 졸업을 하라고…”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대학을 다닌 하주몽 씨는 버지니아주의 한 회사에 취직해 프레드릭스버그로 이사하게 됩니다. 프레드릭스버그는 그 당시만 해도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고, 철판구이 식당도 없었습니다. 프레드릭스버그에 철판구이 식당을 내면 크게 성공할 것 같은 감이 든 하 씨는 주변 사람 설득에 나섰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제가 돈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제 직장의 보스 (boss, 상사)를 잘 설득을 시켜서 보스가 3분의 1이란 돈을 투자를 했고, 제가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하고, 그 다음에 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하고 세 명이서 3분의 1씩 투자를 해갖고 첫번째 식당을 냈어요.”

1988년 2월에 문을 연 사쿠라 식당 1호점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성공이었습니다.

“히트였죠. 1년 뒤에 보스란 사람이 투자한 금액보다 더 주고, 그 사람 쉐어 (share, 지분)를 제가 샀고, 그 다음에 6개월 뒤에 제 친구가 인베스트 (invest, 투자)한 돈의 두 배를 주고 그 친구 쉐어도 샀어요. 그러면서 제가 혼자 식당을 경영을 하게 됐죠”

하주몽 씨는 프레드릭스버그 식당이 대박을 내 처음 식당을 열 때 주변에서 빌렸던 빚도 다 갚게되자, 1994년 인근 웃브리지에 2호점을 냈습니다. 그리고 몇년 뒤에는 메릴랜드주 월도프에 3호점을 내게 됩니다. 낮에는 컴퓨터 전문가로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직접 요리사로 뛰기도 하는, 바쁘고 고된 생활이 15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대학교 졸업하고 85년서부터 한2000년도 까지는 15년간의 세월이었지만 그동안 저한테는 프리 타임 (free time, 자유 시간) 이란 게 없었어요. 베케이션 (vacation, 휴가)도 한 번도 간 적도 없고, 위켄드 (weekend, 주말)도 없고, 그냥 일만 한 거죠.”

하주몽 씨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가족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뭐, 제 와이프 (wife, 아내)도 너무 고생했죠. 결혼을 하고 와서 그 다음날서부터 식당에 나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찰스 (큰 아들)가 나기 1주일전까지 식당에서 일을 했으니까.. 많은 새크리화이스 (sacrifice, 희생)가 됐죠. 모든 식구가…”

처음에는 새로 식당을 내는데 몇년씩 걸렸지만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면서 많게는 한 해에 두 세개 식당이 새로 문을 열고 있습니다. 하 씨는 종업원들에게 일정 지분을 주는 경영방식이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식당을 낼 때마다 제가 거기서 일하는 종업원들한테 쉐어를 줘요. 한 30 프로 정도는 종업원들이 갖고 있어요. 쉐어를…. 그렇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자기 식당처럼 열심히 일을 해주고 있어요. 지금… 모든 사쿠라가 그래요. 제가 갖고있는 지분은60 프로에서 65 프로 정도인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없어도, 제가 식당에 없어도 종업원들이 자기 식당처럼 열심히 해 주는 거…

사쿠라 식당의 음식 맛은 어느 분점이나 똑같습니다. 사쿠라 식당의 독특한 소스는 하주몽 씨가 직접 개발한 것입니다. 하 씨는 사쿠라 식당의 요리사들은 거의 1년에 이르는 훈련기간을 거친 뒤에야 손님 앞에 서게 된다고 말합니다.

“동양 사람을 쓰고 그 다음에 완벽히 쿡을 배우기 전에는 손님 앞에 안 내보내거든요. 그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하주몽 씨는 요즘에는 지배인들에게 식당경영을 맡기고, 새로 식당을 여는 일에만 주력하고 있습니다.

“제네랄 매니저(general manager, 총지배인)가 지금 다섯명이 있어요. 제 밑으로… 제네랄 매니저가 식당을 한 사람 앞에 한 세개에서 네개 정도 맡고 운영을 하고 있는데, 종업원 관리는 제네랄 매니저들이 다 하고 있어요. 처음에 식당 네개, 다섯개까지 할 때는 제가 다 일일히 신경을 썼는데 지금은 식당 공사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요.”

하주몽 씨는 얼마 전 버지니아주 타이슨스 코너에 새로 사쿠라 식당을 연데 이어, 요즘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인근에 새로 분점을 열기 위해 분주히 뛰고 있습니다. 하 씨는 현재 공사중인 19호점이 문을 열면 한동안 쉬고 싶다고 말합니다. 1~2년 휴식을 취한 뒤 미국 서부지역으로 진출하거나 중국에 분점을 내는 방안도 고려중입니다.

“처음에 제가 미국에 와서 만난 친구, 찰스라는 친구가 지금 LA 쪽에서 큰 아키텍쳐 (architecture, 건축설계)회사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 친구가 심양이란 중국 도시에, 거기서 제일 좋은 호텔을 하나 설계를 맡고 있는데, 우리가 그 쪽으로 가서 한번 시작을 해보면 좋겠는데, 물론 와이프 승낙도 받아야 되고.. 아직 말은 못 꺼내고 있는데.. 제 친구가 자기가 설계하는 호텔 꼭대기에다가 하이 클래스(high class, 고급)로 하나 내보자는 제의도 들어왔고 그런데 지금 생각중이에요.”

하주몽 씨는 처음 철판구이집과 인연을 맺게 해준 친구의 이름을 따, 큰 아들의 이름을 찰스라고 지었습니다. 하주몽 씨는 언젠가 아들과 함께 호텔을 경영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단계 더 올라가야죠. 호텔 비지니스 같은 거 좀 인터레스트 (interest, 관심)해 갖고, 아들이, 찰스가 호텔 비지니스 쪽으로 공부를 할 거 거든요. 대학에 가면… 둘이 이제 힘을 합해서 호텔 비지니스 쪽으로 가지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돼요.”

열심히 한가지씩 해나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다는 하주몽 씨… 하지만 하 씨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고구려를 세웠던 몇천년전 역사 속의 주몽처럼, 하 씨는 오늘도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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