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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장인환, 전명운, 일제 침략의 앞잡이 스티븐스 저격


1908년 3월 23일 아침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건물에서는 세발의 총성과 함께 미주 한인뿐 아니라 전 세계 한인이 울분을 토하고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 거사가 발생했는데 바로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가 일제 침략의 앞잡이로 대한제국 외교 고문이었던 미국인 Durham W. Stevens를 저격한 사건입니다. 스티븐스는 워싱턴 주재 일본 공사관의 촉탁으로 고용된 것을 계기로 1904년 12월 대한제국 외부 고문관으로 임용된 인물입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그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론에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국제 여론도 호도하려 했습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스티븐스는 막대한 선전비를 뿌려가면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일본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일련의 침략행위를 바라보는 재미 한인의 반일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Stevens는 워싱톤에 가는 길에 샌프란시코에 와서 한인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만드는 내용의 성명서를 각 신문에 발표하고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국화를 환영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갖습니다.

이같은 내용이 신문에 게재되자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는 이를 취소하도록 스티븐스에게 요구했으나 거절하자 스티븐스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한국의 국왕은 무능하고 관리는 백성을 학대하며 백성은 어리석어서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요지의 기고문을 미국 신문에 게재하자 한인들이 몹시 분개했죠. 그래서 전명운 장인환 이런 분들이 취소할 것으로 요구했지만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 두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 선창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전명운이 권총을 발사했으나 불발되자 스티븐스와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와중에 도착한 장인환이 총탄 3발을 발사해 스티븐스를 사살했고 이들 두 의사는 즉시 미국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1909년 1월 2일 끝난 재판에서 장인환 의사는 극형을 면하고 2급 살인죄로 25년 형을 언도 받았고 전명운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 저격 사건은 종래 분산적으로 전개됐던 미국 대륙에서의 독립 운동에 전환점이 되었고 해외에서의 항일 투쟁을 고무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다음 주 이시간에는 전명운 의사와 장인환 의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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