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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잡지 ‘고려는 중국 출신이 세운 나라’ 주장


중국에서, 고려는 고구려에 이어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 번째 정권’이라는 식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나와 또 한차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이 ‘순수한 학술연구’를 무기로 내세워, 고구려와 발해 역사에 이어 또다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왜곡을 시도하고 나서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의 온기홍 특파원을 연결해서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문: 최근 중국의 한 역사잡지가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의 세 번째 정권’이라고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논문의 주요 내용을 전해 주시죠.

답: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길림성 소속 사회과학원 주관아래 발행되는 격월간 역사잡지인 ‘동북사지’는 2007년 5~6월호에서 ‘당나라 명종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을 밝혔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는데요,

이 논문은 고려사 ‘태조세가’의 일부 내용을 풀이하는 형식으로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 번째 정권’이라는 식의 다분히 도발적인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이 논문은 왕건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처럼 위장했다면서 "왕건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중국 황하와 양쯔의 중간지점에 흐르는 강인 화이허 유역에 살던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이 논문은 "당나라 명종이 조서에서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고 한 것은 조상의 고향이 장회지방이었다는 뜻과 조상이 장회지방의 명문귀족, 즉 벼슬을 사는 집안이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면서 "바로 이 대목에서 그의 원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로 왕건의 조상이 중국인임을 거듭 주장했습니다.

문: 중국 학술잡지가 이같이 주장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답: 이 역사잡지는 왕건이 중국 한족의 후예라는 주장의 근거로는, 고려 태조 16년(서기 933년)에 당나라 명종이 고려에 보낸 책봉조서와 함께, 송나라 태종이 고려 성종 4년(서기 985년)에 보낸 책봉조서를 제시했습니다.

당나라 명종의 조서에 나오는 구절과, 송나라 태종의 조서에 나오는 '장회'가 회하유역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은 또 당나라 명종의 조서 가운데 한 구절을 풀이하면서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가 세운 나라"라는 논란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왕건이 왕을 칭하면서 건국한 것을, 주몽의 고구려 개국과 기자의 입국에 직접 비유한 것은, 한반도 역사에서 이들 두 사람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중국에서 온 통치자가 새로운 고려정권을 세워 고려의 군장이 되어 행복과 왕을 가져다 주었다는 의미"라고 이 논문은 주장했습니다.

논문은 이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의 논리 전개를 하지 않은 채, '왕건의 출신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해명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는 바로 '왕건 한인 후예론'을 토대로 향후 '중국인 고려정권 수립'이라는 억지 주장을 계속 확산시켜 나가기 위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문: 중국이 '순수한 학술연구'라는 명분을 내세워, 고구려와 발해에 이어 아예 고려까지 ‘중국 고대의 한반도에 수립됐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번 논문을 발표한 잡지 책임자와 논문 저자는 누구인가요?

답: 지난 2002년 2월부터 5년 동안 한국과의 마찰에도 아랑곳없이 동북공정을 꾸준하게 추진해온 변강사지연구센터를 산하에 두고 있는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정부의 종합 싱크탱크라면, 이번 문제의 논문을 발표한 길림성 사회과학원은 길림성 인민정부의 싱크탱크입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이 논문의 저자가 바로 길림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이고, 이 논문을 게재한 역사잡지가 길림성사회과학원 주관 아래 발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잡지 발행인이 바로 길림성 공산당 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어서, 중국이 또 한차례 한국 고대사 왜곡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 논문의 저자로 돼 있는 연구원 ‘스창러’가 본명이 아니라 가공인물의 이름일 가능성이 농후해 이 논문의 의도에 대한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격월간 잡지 ‘동북사지’는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왜곡한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센터에서 추진한 ‘동북공정’의 연구과제를 수행한 학자들이 대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특히 잡지 발행자는 장푸여우 길림성 공산당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 맡고 있고, 잡지 고문은 전, 현직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센터 주임들이 맡고 있습니다.

문: 한-중 간에 역사논쟁을 불러 일으킨 ‘동북공정’이 당초 5개년 계획으로 올해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동북공정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나요?

답: 5개년 계획으로 진행된 ‘동북공정’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올해 들어 지난 1월 마무리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참여 연구자들이 6월 말까지 논문을 마감하면, 다음달 7월에 전체 회의를 거쳐 연구 성과를 종합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종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이 정해진 가운데 각 기관별 연구는 자체적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핵심 연구자들은 길림성 사회과학원이 발행하는 ‘동북사지’의 필자로 자리를 옮겨서 여전히 고대사 왜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시적으로 추진해온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의 역사 프로젝트는 일단 접지만, 동북공정의 성과를 토대로 한 후속 및 응용 연구를 더욱 심화 발전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중국 동북지방의 각종 연구기관으로 하여금 관련 연구를 계속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앞으로 한국 고대사 역사 왜곡을 접는 단계가 아니냐는 관측은 무리입니다. 오히려 앞으로 중국이 한반도 역사를 더 크게 왜곡하는 연구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문: 중국사회과학원은 최근 발간한 출판물에서 고조선사와 고구려사를 동북공정과는 무관하게 비교적 간략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답: 중국 국무원의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중국사회과학원은 중국 정부 및 국민의 대외교류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최근 펴낸 '열국지' 시리즈의 하나로, 한국편을 발간하고 지난 달 말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한국편을 집필한 베이징대학 역사학 박사 출신인 둥샹룽 사회과학원 아주태평양연구소 연구원은 고대사 부분에서 고조선을 한반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국가로 기술했지만,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 건국됐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 연구원은 '역사' 편에 "고조선과 진국이 멸망한 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개 주요국가가 출현했고 역사에서는 이들 국가를 '삼국'이라고 한다"라고 기술한 후 이어서, 고구려를 예맥의 한 갈래로 부여의 별종이라고 소개하고, 668년 나-당 연합군에 멸망했다고 설명했으며, 중국 지방의 소수민족 정권 등 문제될만한 표현은 하지 않았습니다.

문: 이 때문에 중국이 고구려사에 대한 그동안의 주장을 바꾼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답: 중국사회과학원이 이 책자에서 고조선과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일부임을 인정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은 중국 역사학계의 보편적 시각이 반영되거나 동북공정 등을 통한 연구성과를 토대로 한 학술연구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집요하게 자국 중심의 '역사 새로 쓰기' 작업을 추진해 오면서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한 지방정권"이라는 주장을 정설로 굳힌 중국이 이 같은 소개서를 통해 그간의 주장을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편저자의 학술적 연구를 묶은 것이 아니며 그 참고문헌의 대부분이 한국 학자들의 것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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