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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선량한 일본여인들 강간...' 소설 [대나무숲 저멀리에서], 미국 중학교 교재로 사용


일제 말기 한국인들을 가해자로 묘사하는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자전적 소설이 미국내 여러 주에서 중학교 교재로 사용되고있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교육위원회는 한인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 여성이 쓴 이 소설을 계속 교재로 사용하기로 결정해 파문을 확산시켰습니다. 부지영 기자가 좀 더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의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을 싫어했으며 전쟁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는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씨의 자전소설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대나무숲 저멀리서’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미국인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일본 사람을 미워하는 한국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동아시아 역사를 전혀 배운 일이 없는 열한살난 중학교 1학년생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나무숲 저멀리서’는 일제 말기 함경북도 나남에 살고있던 저자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한국을 벗어나 일본으로 귀국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 열한살이던 요코 씨는 현재의 청진시인 나남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까지 왔다가 폭격으로 기차가 파괴되자 걸어서 서울까지 온 뒤 부산을 거쳐 마침내 일본에 도착하게 됩니다. 굶주림과 추위 등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귀국에 성공한 요코 가족의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과 강력한 생존의 의지를 보여준 책으로 높이 평가돼 10여년 전부터 미국내 일부 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일제시대 당시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가혹행위에 관한 언급은 생략한 채 일본이 패망하자 흥분한 한국인들, 특히 공산군이 선량한 일본인 부녀자들을 강간하는 등 무자비한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묘사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바드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의 카터 엑커트 교수는 최근 ‘보스턴 글로브’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한반도에는 아직 공산군이 들어오지 않았었다며 책 내용중 역사적 사실이 잘못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엑커트 교수는 역사적 지식이 전혀 없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가르치는 것은 독일 나치 정권의 실체에 대한 언급은 하지않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말 네델란드에서 탈출하는 독일관리 가족의 얘기를 동정적으로 묘사한 소설을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요코 씨의 소설이 이처럼 역사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뉴욕과 매사추셋츠주에서 한인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이 책의 교재사용을 중단시키기 위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한인 학부모는 이 책을 읽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왜 한국인들은 그런 잔인한 행동을 했느냐”고 물어 매우 당황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잘못 알려줄 뿐만 아니라 한인 학생들의 마음에 충격과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뉴욕주의 한 사립학교에 재학중인 한인 학생 허보은 양은 ‘대나무숲 저멀리서’를 교재로 한 영어수업을 받을 수 없다며 등교거부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허보은 양은 이 책은 한국인들을 인종차별할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을 피해자들로 묘사하고 있어 책 내용에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허보은 양은 부모의 지원에 힘입어 이 책을 배울 수 없는 이유를 일일이 밝히는 에세이를 쓰는 등 학교당국에 강력히 항의해 마침내 교재금지 결정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허보은 양의 어머니인 박영순 씨는 다른 한인 부모들의 경우 영어에 서툴러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성공을 거둔데 만족하지않고 이 책의 교재사용을 금지시키기 위한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교육을 위해 미국에 오셨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읽고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혼란이 가고 충격을 받겠어요

이같은 일부 한인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거부운동이 인근 주들로 확산되면서 로드 아일래드주와 매사추세츠주 등 일부 학교에서도 이 책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보스턴 인근의 도버-셔먼 교육위원회는 한인 학부모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교재로 사용하기로 결정해 논란을 확산시켰습니다. 도버-셔먼 교육위원회는 소위원회에서 이 책을 더이상 교재로 사용하지 않기로 일단 결정을 내렸었으나 영어 교사들과 다른 미국 학부모들이 반발하자 정식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두 달 만에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매사추셋츠주에 거주하고 있는 요코 씨는 여러 해 동안 각 학교를 방문하면서 여러 영어 교사들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버-셔먼 중학교 학부모인 이윤경 씨는 한인 학생들이 이 책을 배우면서 받는 상처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아이들이 책을 읽을 마다 부모들한테 읽게 해달라고 그래요. 학교에 있는 동양사람들이 싫어하는 책을 억지로 가르쳐야 되느냐 그걸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거에요. 책이 그렇게 중요해서 아이들 마음까지 상하면서 써야되냐 그게 이해가 안가는 거에요.”

도버-셔먼 중학교는 이 책을 계속 가르치는 대신 균형을 위해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다른 작품을 병행해 가르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오는 10월에 이 문제를 재검토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도버-셔먼 중학교의 랜디 셔먼 교장은 균형을 맞춰 새로 교과과정을 짜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스턴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한민영 영사는 도버-셔먼 교육위원회가 요코 씨의 소설을 계속 가르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 학생들과 한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인권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연방정부와 매사추셋츠주 교육부에 정식항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사관에서 총영사님 명의로 매사추셋츠주 주지사 상원의원들, 유력 정치인들에게 서한을 보내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구요. 그리고 책이 사실이 아닌 부분이 상당히 많거든요. 그런데 책을 자서전이라고,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사실인 것으로 많이 설명을 해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언론에 이러한 문제점, 어떻게 한국역사를 왜곡하고있고, 한국인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고있고, 이런 거에 대해 언론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할 생각입니다.”

한편 한국언론은 일본 전범으로 6년동안 시베리아에서 복역한 요코 씨의 아버지가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 부대 최고위 간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요코 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주에서 “아주 비밀스런 일을 했다”고 말해왔습니다.

요코 씨의 소설 ‘대나무숲 저멀리서’는 지난 2005년 한국에서도 ‘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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