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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초대석] 한국방문 마치고 온 이란계 미국 가수 나시리


미국의 대 부호이자 자선사업가인 프레드 나시리 씨가 최근 가수로 변신해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음반 ‘Love Sees No Color’를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뮤직 비디오 촬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나시리 씨는 북한에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해 달라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촉구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화제의 인물을 찾아가는 ‘워싱톤 초대석’, 오늘은 음악을 통해 세계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고 있는 나시리 씨와 함께 합니다. 대담에 부지영 기자입니다.

(부) 안녕하세요? 최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셨는데요. 먼저 무슨 일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 이번 방문은 뮤직 비디오 제작을 위한 두번째 촬영여행의 일환이었는데요. 이번에 일본과 한국, 중국 세 나라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북한에도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 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앞서 중국에 갔을 때 만리장성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해 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요청했구요. 하지만 이번엔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비무장지대 인근에 있는 임진각에서 뮤직 비디오를 촬영했습니다. 그 곳에 있는 망향대의 41개 깃대에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기를 달고 촬영을 했는데요. 아주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나왔는데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한국에서 촬영한 뮤직 비디오는 제 웹사이트 www. Nassiri.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촬영을 하고 싶었습니다. 임진각에 있는 자유의 다리, 그냥 그렇게 있어선 안됩니다. 제가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고싶은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 화합인데요. 이산가족들이 남북으로 갈려있는데 그래선 안됩니다. 전세계 국경은 누구나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부) 임진각이나 ‘자유의 다리’는 남북한 분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곳을 방문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나) 매우 슬펐습니다. 같은 민족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분단돼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래선 안되는 일이거든요. 전 세계인들이 평화와 화합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저의 신념입니다. 세계 곳곳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국이 국방예산의 10 퍼센트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쓴다면 배 고픈 사람은 없어질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기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숨졌고 식량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은 매우 고립돼 있는데 ‘눈에는 눈’ 으로 대응하면 곤란합니다. 남과 북을 가르고 있는 다리를 열고 남북한이 화합 속에 통일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북한이 고립돼 있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것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정부 관리들이나 군인들은 항상 먹을 것이 있거든요. 일반 주민들만 고생하는 거죠.

(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나) 국경을 열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서로 관용을 보여야 하고 남북한이 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고 들었는데요. 같은 음악인으로서 군을 위해서만 돈을 쓰지말고 주민들을 위해 쓰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는 비단 북한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다들 군에만 돈을 쓰고 있습니다.

(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셨습니까?

(나) 세계평화와 빈곤문제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는데 제가 하는 일과 제가 주려는 메시지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빈곤문제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지난 2006년 미국은 거의 1조 달러를 전쟁에 썼습니다. 그 돈의10 퍼센트는 1천억 달러인데 그 돈이면 북한을 완전히 회생시킬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될 겁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그곳에 가서 그들을 다 없애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 돈을 빈곤구제에 써야 합니다.

테러분자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테러분자 한 명을 없애면 1백명이 새로 나올 것이고 1천명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 대신에 학교를 세우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주면 거리에 나가 빈둥거리거나 테러분자가 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날 때 부터 테러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 한국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셨습니까?

(나) 1968년에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고 이번이 두번째 입니다. 당시에도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1968년에는 사업목적으로 방문했었습니다. 패션산업에 여러 해 동안 종사했는데요. 당시 한국에서 가발을 수입했기 때문에 한국의 공장을 방문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참 가난했었습니다. 거의 40년전의 일이네요.

(부) 1968년에 방문한 뒤 이번이 첫 방문이면 한국의 변화한 모습에 놀라셨겠네요?

(나)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로 변모했습니다. 이번에 한국인들은 제가 하는 일과 제가 주려는 메시지에 굉장히 좋은 반응과 관심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인도에 갔을 때 겪은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마을에 갔는데 아이들이 먹을 것 하나도 없이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라곤 접시 하나에 담긴 음식이 전부인데 아이들은 마흔 명이나 되더라구요. 아이들이 겨우 한 숟가락 밖에 얻어먹지 못하니 배가 고파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습니다. 가난한 나라일 수록 대부분의 예산을 군사비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군 예산의 10 퍼센트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쓴다면 더 이상 배고픈 아이들도 없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도 없을 텐데 말이죠.

(부) ‘Love Sees No Color’ , ‘사랑은 색을 보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내실 계획이죠? 이번 한국방문도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한 것이었구요? 이 음반이 언제 나오는지, 또 어떤 곡들이 담기게 되는지 설명해 주시죠?

(나) 음반에 담길 노래는 모두 제가 작사, 작곡한 것인데요. 제 음악은 전혀 다릅니다. 모든 노래에 다 메시지가 담겨 있거든요. 긍정적인 노래이고 댄스곡이지만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번 들으면 스스로 변화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좋은 음악은 사람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거든요.

음반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 음반을 내기 위해 지난 10년동안 꾸준히 작사, 작곡을 해왔습니다. 내년초에 음반이 발매될 예정입니다.

(부) 자선사업가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이 음반에서 나오는 수익은 기부하실 생각인가요?

(나) ‘Love Sees No Color’ 음반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모두 기부할 겁니다. 이미 인도에서는 한 마을의 무숙자 5백명을 돕기로 약속했습니다. 집도 없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Love Sees No Color’ 재단을 만들었는데요. 그곳에는 아이들이 완전히 헐벗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없고 수풀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뱀이 많아서 볼일 보다 뱀에 물리곤 합니다. 그곳 사람들의 형편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눈앞의 광경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인도에서 ‘Homeless’라는 노래의 뮤직 비디오를 찍었는데 아예 한 마을 전체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목욕시설이나 화장실을 짓기 위해 이미 돈을 보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에이즈 환자 가족을 돕기로 했구요.

(부) 사업가로 크게 성공하셨는데 어떻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나) 저는 항상 음악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패션사업에 뛰어 들어 운좋게 성공했지요. 사업을 할 때마다 성공을 했는데 음악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전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해서 번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는데요. NGO 같은 비정부 기구에 기부하는 방법이 있지만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이 가는지 의구심이 갔습니다.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 주머니에 들어가는 경우를 직접 봤거든요.

음악은 저에게 두가지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심리적으로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주고 음악을 통해 인도나 한국 등 다른 나라를 방문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줍니다. 또 그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구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의 경우 고층건물들이 잔뜩 들어서 있지만 거기서 10 킬로미터만 벗어나면 극심한 빈곤을 목격하게 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어떤 재단에 기부를 했었는데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차장에 벤츠 등 고급 승용차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거든요. 거기다 그곳의 책임자는 유명 디자이너 명품인 ‘구치’ 옷을 입고 ‘구치’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은 뒤로는 다른 자선단체를 통하지않고 현지인을 고용해서 제가 직접 돕습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이 필요한 동네라면 화장실을 지어주고 식량이 필요하면 식량을 주는 식으로 말이죠. 무조건 그냥 주는 것만도 아닙니다. 만약 농사짓는 땅이 국영지라면 땅을 사서 농민들에게 줍니다. 주민들이 농사를 일궈 자립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자긍심과 희망을 주는 겁니다.

(부) 북한도 많이 어려운데요. 식량사정도 좋지않고, 특히 지난 2006년에는 큰 홍수로 인해 많은 수재민들이 발생했습니다. 혹시 북한을 도우실 생각은 없습니까?

(나) 그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초청받아 가고 싶습니다. 북한의 멋진 곳을 구경하기 위해 가려는게 아닙니다. 그곳의 집없는 이들, 불우한 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한국에는 수십억 짜리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데 바로 이웃인 북한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 메시지 입니다. 이런 일을 막아야 한다는 거죠. 지역간 격차가 너무 큽니다. 한 쪽은 풍족한데 다른 한 쪽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말이죠.

(부)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나) 세번째 뮤직 비디오 촬영여행으로 브라질과 멕시코를 방문할 것입니다. 두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북한방문 계획도 계속 추진할 거구요. 한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북한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유엔을 통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유엔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북한방문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란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의 나이로 미국에 와서 열심히 노력해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습니다. 저는 중동평화 과정에도 많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방문했고 팔레스타인도 방문했는데 제가 이란 출신이기 때문에 신뢰를 받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위해서도 같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전하는 전령 역할요. 눈에는 눈으로 대응해선 안됩니다. 그러면 모두의 눈이 멀게될 뿐 입니다.

(부) 오늘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시리 씨의 노래 ‘Love Sees No Color’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 함께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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