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ONE: 1852년 프랭크린 피어스가 대통령에 선출됐습니다. 피어스 대통령은 민주당의 타협으로 탄생한 후보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강력한 지도자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1850년대는 미국에서 점차 긴장이 높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미시시피강 동쪽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서부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서부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자 이곳은 공식적인 준주로 편입되고, 다시 새로운 주로 승격했습니다. 이 새로운 준주와 주에서 어떤 법률을 시행할 것인가? 이 법률들은 국회에서 제정할 것인가? 아니면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투표로 결정하게 할 것인가? 서부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법적인 문제는 노예문제였습니다.
VOICE TWO: 당시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다른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합법이었습니다. 노예는 가구나 가축처럼 하나의 재산으로 간주됐습니다. 흑인 노예를 소유한 사람들은 서부로 이주할 때 노예를 포함해 그들의 전 재산을 갖고 가려고 했습니다. 노예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예가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중의 일부는 노예는 하나의 도덕문제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노예는 신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수가 늘어나는 백인들은 노예를 하나의 경제문제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노예노동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도록 새로운 주들이 노예가 없는 자유주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VOICE ONE: 미국은 민주주의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노예가 있습니다. 미국의 초기 지도자들은 노예제를 없애려고 할 경우, 아마 나라가 둘로 분열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지도자들은 타협책을 모색했습니다. 그들은 합중국을 구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합중국이 분열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프랭크린 피어스 대통령은 이 문제에서 빗겨서기를 원했습니다. 피어스 대통령은 초기의 법제정이 그 논쟁을 해결했다고 믿었습니다. 1820년, 국회는 미주리 타협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타협안은 합중국의 지도를 가로 질러 하나의 선을 그었습니다. 이 선의 남쪽에서는 노예가 합법이고 북쪽에서는 미주리주를 제외하고는 노예가 불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또 하나의 정치적 타협이 상황을 좀더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VOICE TWO: 1850년의 타협안은 일부 서부 준주에서 노예를 국가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고 그 지역의 문제로 한정했습니다. 이 타협안은 준주의 주민들이 노예제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하는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했습니다. 몇년 후, 이 법은 국회에서 새로운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노예문제를 제한할 수 있는 주민들의 권리는 1850년의 타협안의 산물로 생겨난 준주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생겨날 모든 준주의 주민들에게 해당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원들간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VOICE ONE: 그 해답은 1854년에 나왔습니다. 그 해에 국회는 서부의 광대한 지역에 두개의 준주를 만드는 법안에 관해 토론을 벌였습니다. 북부는 네브라스카 준주, 남부는 캔사스 준주였습니다. 이들 새 준주의 이주자들은 노예제 채택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갖도록 돼있었습니다. 피어스 대통령은 캔사스-네브라스카 법안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피어스 대통령은 그것이 노예제에 관한 보다 더 격심한 국가적인 논쟁을 불러오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피어스 대통령은 그 결과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긴장은 점점 높아갔습니다. 폭력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갔습니다.
VOICE ONE: 캔사스-네브라스카 법안은 상원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법안은 어렵지 않게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은 하원에서는 다소 적은 수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투표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통과됐습니다. 피어스 대통령은 결국 이 법안에 서명하기로 동의했습니다. 그 댓가로 국회 지도자들은 대통령의 몇개 임명동의안을 승인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캔사스-네브라스카 법안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그들은 워싱턴시에서 다음 날 새벽까지 축포를 쏘았습니다. 이 법안에 반대했던 두 상원의원은 의사당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중의 한 의원은 “저자들은 지금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울리는 메아리는 노예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ICE TWO: 새 법안은 캔사스와 네브라스카 주민들에게 노예제가 합법인가, 아니면 불법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이 투표는 그 준주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 결정되게 됐습니다. 그런데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는 노예를 소유한 사람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캔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남부에서는 즉각 노예제를 지지하는 이주자들을 캔사스로 이주시키기 위해 단체들을 조직했습니다. 동시에 북부에서도 단체들이 노예제에 반대하는 이주자들을 캔사스로 이주시키려고 나섰습니다.
VOICE ONE: 일부 북부 단체들은 이주지원협회라고 부르는 회사들이었습니다. 이 회사 들의 주식을 일반에 매각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자금은 캔사스에 촌락과 농장을 조성하는데 쓰여졌습니다. 이 회사의 사주들은 개발을 통해 많은 돈을 벌려고 생각했습니다. 캔사스를 식민화하기 위한 남부의 노력은 주로 미주리주의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들에 의해 주도됐습니다. 그들은 미주리의 평화는 캔사스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노예를 불법화한 준주와 바로 이웃해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VOICE TWO: 워싱턴에서 피어스 대통령은 앤드루 리더를 캔사스 준주의 주지사로 임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이주민들은 주의회 구성을 위해 즉각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다수로 우위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유주 이주민들이 더 들어오기 전에 투표하기를 원했습니다. 입법부는 이 준주를 노예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 것이며, 결국 캔사스는 노예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VOICE ONE: 리더 주지사는 이같은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리더 주지사는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지만, 다만 연방 국회에 보낼 준주의 대표를 뽑는 것에 한정했습니다. 선거날, 미주리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어 캔사스로 넘어왔습니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투표했고 결국 노예제를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캔사스에서 마지막으로 주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리더 주지사는 선거를 공정히 치루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다시 미주리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캔사스로 넘어왔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총을 휴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거종사원들을 협박해 그들의 불법적인 투표를 계산에 포함시키도록 했습니다. 결국 노예제를 지지하는 후보들이 거의 새 입법부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VOICE TWO: 리더 주지사는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조사 결과 여섯개 지역에서 불법 선거가 이루어진 증거가 드러났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재선거가 실시됐습니다. 이번에는 합법적인 투표만 인정하게 되자 노예제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후보들은 낙선됐습니다. 하지만 노예제를 지지하는 후보들이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VOICE ONE: 앤드루 리더는 이토록 극심하게 분열된 준주의 지사였습니다. 리더 지사는 이같은 상황을 피어스 대통령에게 알리기위해 워싱턴으로 갔습니다. 리더 지사는 두주일에 걸쳐서 거의 매일 피어스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리더 지사는 미주리주의 노예제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캔사스에 간섭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리더 지사는 만약 미주리주가 말썽꾼들을 조치하지 않는다면 연방정부가 이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주기를 요청했습니다.
VOICE TWO: 피어스 대통령은 캔사스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그는 행동을 취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리더 주지사는 임지로 귀환해 준주 의회의 첫번째 회의를 열었습니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다수의 의원들은 재빨리 미주리 경계선 가까운 마을을 폐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주의회는 또한 노예제 도입에 필요한 몇개 법안을 가결했습니다. 리더 주지사는 이 법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거부권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찬성표가 더 많았기 때문에 결국 새 법안들은 법으로 확정됐습니다.
VOICE ONE: 캔사스주 의회는 또한 피어스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 메시지는 피어스 대통령에게 앤드루 리더 주지사를 경질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정치적 압력이 거셌기 때문에 결국 피어스 대통령은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는 새 지사로 윌슨 샤논을 임명했습니다. 샤논은 노예제를 찬성하는법안들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또한 캔사스주는 미주리주처럼 노예주가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주 지도자들은 크게 격노했습니다. 그들은 피어스 대통령이나 새 지사로부터 공정한 처리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선거로 수립된 준주의 정부에 맞서 별도의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그것은 캔사스주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VOICE ONE:
FRANKLIN PIERCE WAS ELECTED IN EIGHTEEN-FIFTY-TWO. HE WAS A
COMPROMISE CANDIDATE OF THE DEMOCRATIC PARTY. HE WAS
WELL-LIKED.
BUT HE WAS NOT CONSIDERED A STRONG LEADER.
THE EIGHTEEN-FIFTIES WERE AN INCREASINGLY TENSE TIME IN THE
UNITED STATES. MOST OF THE POPULATION LIVED EAST OF THE
MISSISSIPPI RIVER. HOWEVER, MORE AND MORE PEOPLE WERE MOVING
WEST. AS WESTERN AREAS BECAME POPULATED, THEY BECAME OFFICIAL
TERRITORIES AND THEN NEW STATES.
WHAT KIND OF LAWS WOULD THE NEW TERRITORIES AND STATES HAVE?
WOULD THE LAWS BE DECIDED BY THE CONGRESS IN WASHINGTON? OR
WOULD THEY BE VOTED ON BY THE PEOPLE LIVING THERE?
THE BIGGEST LEGAL QUESTION AFFECTING WESTERN LANDS WAS SLAVERY.
VOICE TWO:
OWNING ANOTHER HUMAN BEING WAS LEGAL IN MANY PARTS OF THE UNITED
STATES AT THAT TIME. SLAVES WERE CONSIDERED PROPERTY, LIKE
FURNITURE AND FARM ANIMALS.
PEOPLE WHO OWNED NEGRO SLAVES WANTED TO TAKE ALL THEIR PROPERTY
-- INCLUDING THE SLAVES -- WITH THEM WHEN THEY MOVED WEST.
PEOPLE WHO OPPOSED SLAVERY DID NOT WANT IT TO SPREAD. SOME OF
THEM CONSIDERED SLAVERY A MORAL ISSUE. THEY BELIEVED IT
VIOLATED
THE LAWS OF GOD. AN INCREASING NUMBER OF WHITE AMERICANS,
HOWEVER, SAW SLAVERY AS AN ECONOMIC ISSUE. THEY WANTED NEW
STATES TO BE FREE FROM SLAVERY, SO THEY WOULD NOT HAVE TO
COMPETE
WITH SLAVE LABOR.
VOICE ONE:
THE UNITED STATES HAD BEEN ESTABLISHED AS A DEMOCRACY. YET
SLAVERY EXISTED. AMERICA'S EARLY LEADERS KNEW THAT TRYING TO
END
SLAVERY PROBABLY WOULD SPLIT THE NATION IN TWO. SO THEY LOOKED
FOR COMPROMISES. THEY DECIDED IT WAS BETTER TO SAVE THE UNION.
.
.EVEN IF IT WAS NOT PERFECT. . .THAN TO WATCH THE UNION END.
LIKE OTHER PRESIDENTS, FRANKLIN PIERCE HOPED TO AVOID THE ISSUE.
HE ALSO BELIEVED THAT EARLIER LEGISLATION HAD SETTLED THE
DEBATE.
IN EIGHTEEN-TWENTY, CONGRESS HAD PASSED THE MISSOURI COMPROMISE.
IT EXTENDED A LINE ACROSS THE MAP OF THE UNITED STATES. SOUTH
OF
THE LINE, SLAVERY WAS LEGAL. NORTH OF THE LINE, SLAVERY WAS NOT
LEGAL, EXCEPT IN MISSOURI.
THIRTY YEARS LATER, ANOTHER POLITICAL COMPROMISE MADE THE
SITUATION LESS CLEAR.
VOICE TWO:
THE COMPROMISE OF 1850 MADE SLAVERY A LOCAL ISSUE, INSTEAD OF A
NATIONAL ISSUE, IN SEVERAL WESTERN TERRITORIES. IT SAID THE
PEOPLE IN THOSE TERRITORIES HAD THE RIGHT TO DECIDE FOR
THEMSELVES IF SLAVERY WOULD BE LEGAL OR ILLEGAL.
WITHIN A FEW YEARS, THAT LAW CAUSED A NEW DEBATE IN CONGRESS.
LAWMAKERS ARGUED: WAS THE PEOPLES' RIGHT TO DECIDE THE ISSUE OF
SLAVERY RESTRICTED ONLY TO THE TERRITORIES NAMED IN THE
COMPROMISE OF 1850? OR WAS THE RIGHT EXTENDED TO THE PEOPLE OF
ALL FUTURE TERRITORIES?
VOICE ONE:
THE ANSWER CAME IN EIGHTEEN-FIFTY-FOUR. IN THAT YEAR, CONGRESS
DEBATED A PROPOSAL TO CREATE TWO TERRITORIES FROM ONE LARGE AREA
IN THE WEST. THE NORTHERN PART WOULD BE KNOWN AS THE NEBRASKA
TERRITORY. THE SOUTHERN PART WOULD BE KNOWN AS THE KANSAS
TERRITORY. SETTLERS IN BOTH NEW TERRITORIES WOULD HAVE THE
RIGHT
TO DECIDE THE QUESTION OF SLAVERY.
PRESIDENT PIERCE DID NOT LIKE THE KANSAS-NEBRASKA BILL. HE
FEARED IT WOULD RE-OPEN THE BITTER, NATIONAL DEBATE ABOUT
SLAVERY. HE DID NOT WANT TO HAVE TO DEAL WITH THE RESULTS.
TENSIONS WERE INCREASING. VIOLENCE WAS INCREASINGLY POSSIBLE.
VOICE ONE:
THE KANSAS-NEBRASKA BILL HAD A LOT OF SUPPORT IN THE SENATE. IT
PASSED EASILY. THE BILL HAD LESS SUPPORT IN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THE VOTE THERE WAS CLOSE, BUT THE MEASURE
PASSED. PRESIDENT PIERCE FINALLY AGREED TO SIGN IT. IN
EXCHANGE, CONGRESSIONAL LEADERS PROMISED TO APPROVE SEVERAL
PRESIDENTIAL APPOINTMENTS.
SUPPORTERS OF THE KANSAS-NEBRASKA BILL CELEBRATED THEIR VICTORY.
THEY FIRED CANNONS AS THE CITY OF WASHINGTON WAS WAKING TO A NEW
DAY. TWO SENATORS WHO OPPOSED THE BILL HEARD THE NOISE AS THEY
WALKED DOWN THE STEPS OF THE CAPITOL BUILDING. ONE OF THEM
SAID:
"THEY CELEBRATE A VICTORY NOW. BUT THE ECHOES THEY AWAKE WILL
NEVER REST UNTIL SLAVERY ITSELF IS DEAD."
VOICE TWO:
THE NEW BILL GAVE THE PEOPLE OF KANSAS AND NEBRASKA THE RIGHT TO
DECIDE IF SLAVERY WOULD BE LEGAL OR ILLEGAL. THE VOTE WOULD
DEPEND ON WHO SETTLED IN THE TERRITORIES. IT WAS NOT LIKELY
THAT
PEOPLE WHO OWNED SLAVES WOULD SETTLE IN NEBRASKA. HOWEVER,
THERE
WAS A GOOD CHANCE THAT THEY WOULD SETTLE IN KANSAS.
GROUPS IN THE SOUTH ORGANIZED QUICKLY TO HELP PRO-SLAVERY
SETTLERS MOVE TO KANSAS. AT THE SAME TIME, GROUPS IN THE NORTH
HELPED FREE-STATE SETTLERS MOVE THERE, TOO.
VOICE ONE:
SOME OF THE NORTHERN GROUPS WERE COMPANIES CALLED EMIGRANT AID
SOCIETIES. SHARES OF THESE COMPANIES WERE SOLD TO THE PUBLIC.
THE MONEY WAS USED TO HELP BUILD TOWNS AND FARMS IN KANSAS.
OWNERS OF THE COMPANIES HOPED TO MAKE A LOT OF MONEY FROM THE
DEVELOPMENT.
THE SOUTHERN EFFORT TO SETTLE KANSAS WAS LED MOSTLY BY
SLAVE-OWNING FARMERS IN MISSOURI. THEY BELIEVED THAT PEACE IN
MISSOURI DEPENDED ON WHAT HAPPENED IN KANSAS. THEY DID NOT WANT
TO LIVE NEXT TO A TERRITORY WHERE SLAVERY WAS NOT LEGAL.
VOICE TWO:
IN WASHINGTON, PRESIDENT PIERCE ANNOUNCED THE APPOINTMENT OF
ANDREW REEDER TO BE GOVERNOR OF THE KANSAS TERRITORY.
PRO-SLAVERY SETTLERS URGED REEDER TO HOLD IMMEDIATE ELECTIONS
FOR
A TERRITORIAL LEGISLATURE. THEY BELIEVED THEY WERE IN THE
MAJORITY. THEY WANTED A VOTE BEFORE TOO MANY FREE-STATE
SETTLERS
MOVED IN. THE LEGISLATURE WOULD HAVE THE POWER TO KEEP THE
TERRITORY OPEN TO SLAVERY AND, IN TIME, HELP IT BECOME A SLAVE
STATE.
VOICE ONE:
GOVERNOR REEDER REJECTED THE DEMANDS. HE DECIDED TO HOLD AN
ELECTION, BUT ONLY FOR A TERRITORIAL REPRESENTATIVE TO THE
NATIONAL CONGRESS. ON ELECTION DAY, HUNDREDS OF MEN FROM
MISSOURI CROSSED THE BORDER INTO KANSAS. THEY VOTED ILLEGALLY,
AND THE PRO-SLAVERY CANDIDATE WON.
THE SAME THING HAPPENED WHEN KANSAS FINALLY HELD AN ELECTION FOR
A LEGISLATURE. GOVERNOR REEDER TOOK STEPS TO MAKE THE VOTING
FAIR. HIS EFFORTS WERE NOT COMPLETELY SUCCESSFUL. ONCE AGAIN,
MEN FROM MISSOURI CROSSED THE BORDER INTO KANSAS. MANY OF THEM
CARRIED GUNS. THEY FORCED ELECTION OFFICIALS TO COUNT THEIR
ILLEGAL VOTES. AS A RESULT, ALMOST EVERY PRO-SLAVERY CANDIDATE
WAS ELECTED TO THE NEW LEGISLATURE.
VOICE TWO:
THE GOVERNOR ORDERED AN INVESTIGATION. THE INVESTIGATION SHOWED
EVIDENCE OF WRONG-DOING IN SIX AREAS, AND NEW ELECTIONS WERE
HELD
IN THOSE AREAS. THIS TIME, WHEN ONLY LEGAL VOTES WERE COUNTED,
MANY OF THE PRO-SLAVERY CANDIDATES WERE DEFEATED. YET THERE
WERE
STILL ENOUGH PRO-SLAVERY CANDIDATES TO HAVE A MAJORITY.
VOICE ONE:
ANDREW REEDER WAS GOVERNOR OF A BITTERLY DIVIDED TERRITORY. HE
WANTED TO WARN PRESIDENT PIERCE ABOUT WHAT WAS HAPPENING.
REEDER WENT TO WASHINGTON. HE MET WITH PIERCE ALMOST EVERY DAY
FOR TWO WEEKS. HE DESCRIBED HOW PRO-SLAVERY GROUPS IN MISSOURI
WERE INTERFERING IN KANSAS. HE SAID IF THE STATE OF MISSOURI
REFUSED TO DEAL WITH THE TROUBLE-MAKERS, THEN THE NATIONAL
GOVERNMENT MUST DEAL WITH THEM. HE ASKED THE PRESIDENT TO DO
SOMETHING.
VOICE TWO:
PIERCE AGREED THAT KANSAS WAS A SERIOUS PROBLEM. HE SEEMED
READY
TO ACT. SO REEDER RETURNED HOME AND OPENED THE FIRST MEETING OF
THE TERRITORIAL LEGISLATURE. THE PRO-SLAVERY MAJORITY QUICKLY
VOTED TO MOVE TO A TOWN CLOSE TO THE MISSOURI BORDER. IT ALSO
APPROVED SEVERAL PRO-SLAVERY MEASURES.
GOVERNOR REEDER VETOED THESE BILLS. BUT THERE WERE ENOUGH VOTES
TO REJECT HIS VETO AND PASS THE NEW LAWS.
VOICE ONE:
THE KANSAS LEGISLATURE ALSO SENT A MESSAGE TO PRESIDENT PIERCE.
IT WANTED HIM TO REMOVE ANDREW REEDER AS GOVERNOR. POLITICAL
PRESSURE WAS STRONG, AND THE PRESIDENT AGREED. HE NAMED A NEW
GOVERNOR, WILSON SHANNON. SHANNON SUPPORTED THE PRO-SLAVERY
LAWS
OF THE LEGISLATURE. HE ALSO SAID KANSAS SHOULD BECOME A SLAVE
STATE, LIKE MISSOURI.
FREE-STATE LEADERS WERE EXTREMELY ANGRY. THEY FELT THEY COULD
NOT GET FAIR TREATMENT FROM EITHER THE PRESIDENT OR THE NEW
GOVERNOR. SO THEY TOOK AN UNUSUAL STEP. THEY MET AND FORMED
THEIR OWN GOVERNMENT IN OPPOSITION TO THE ELECTED GOVERNMENT OF
THE TERRITORY. IT WOULD NOT BE LONG BEFORE THE SITUATION IN
KANSAS BECAME VIOLENT. THAT WILL BE OUR STORY NEXT W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