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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font color = 9c4500>[오늘의 화제] </font></strong> 미국의 대명절 '추수감사절' - 재조명해보는 그 실상과 허상


24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매년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져있는 추수감사절날, 미국인들은, 친지들과 한자리에 모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함께 만찬을 즐깁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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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년의 어느 쌀쌀한 늦가을날입니다. 미국 매사추셋츠주에 정착한 영국인 50여명이 인근의 ‘왐퍼노아그’ 인디언 부족민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필그림, 기독교 순례자들’이라고 불리웠던 이들 영국인 정착민들은 함께 온 동료들의 절반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신대륙에서 첫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수확을 마친데 감사해합니다.

듣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하는 이 이야기는 여러 세대에 걸쳐 얘기가 보태지면서, 미국인들의 명절로 사랑받는 추수감사절에 온기를 더해주고있습니다. 3백년전 기독교 순례자들과 원주민 인디언들이 추수감사 잔치를 벌였던 바로 그 자리에는, 현재 역사박물관이 들어서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플리모스 농원'의 음식사 전문가 캐스린 커틴 씨는, 전해내려오는 추수감사절 얘기에는 신비와 과장이 보태져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기독교 순례자들과 원주민 인디언들의 잔치는, 11월이 아니라 옥수수 수확시기에 가까운 10월에 벌어졌을 것이라고 커틴 씨는 말합니다.

커틴 씨는, 왐퍼노아그족 남자주민 90여명이 기독교 순례자들의 정착지에 와, 사흘동안 함께 음식을 나누고 즐겼다고 말하면서, 당시에 여자 원주민들이 잔치에 참석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들 ‘기독교 순례자들’은 ‘청교도’라는 엄격한 종파에 속해있는 종교적 분리주의자들로, 잔치를 벌이고 노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가 매우 강조되던 시기에, 몹시 신앙심이 깊었던 사람들이긴 하지만, 예로부터 '즐거운 영국'이란 별명으로 불리웠던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니 만큼,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이들에게 생활의 일부였을 것이라고 커틴 씨는 말했습니다. 아주 즐길줄 모르고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1621년, 그 당시 기록으로 별로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이 때 기독교 순례자들과 원주민 인디언들의 식탁에는 가금류, 즉 새 요리가 올랐었다고 전해지고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날 먹는 칠면조 보다는, 거위나 오리고기가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캐스린 커틴 씨는 말합니다. 첫 추수감사절을 묘사하는 삽화를 보면, 긴 식탁에 빵과 호박파이, 크랜베리 소스 등이 잔뜩 쌓여있는 모습이 흔히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커틴 씨는 말합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크랜베리라 불리우는 덩굴월귤 열매를 알고있었고, 왐퍼노아그 부족민들은 이 열매를 먹고있었지만, 설탕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에, 크랜베리 소스를 만들진 못했을 것이라고, 커틴 씨는 말했습니다.

또한, 호박도 있었지만, 밀가루가 부족하고 화덕이 여의치않아 호박파이를 만들진 못했을 것이라고, 커틴 씨는 덧붙였습니다. '플리모스 농장' 박물관에서 '왐퍼노아그 토착민(Wampanoag Indigenous)' 프로그램의 부국장으로 있는 린타 쿰스 씨 또한, 1621년 당시 첫 추수감사절에 관한 얘기 가운데는 과장된 것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쿰스 씨는 '왐퍼노아그' 부족민들이 잔치에 쓸 용도로 사슴 다섯마리를 잡아오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것처럼, 팝콘을 가져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매사추셋츠 주에는 이 종류의 옥수수가 자라지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깃털로 만든 화려한 머리장식은 평원지대에 사는 원주민 인디언들이나 쓰는 것이었다면서, 왐퍼노아그 부족민들은 검소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었다고 쿰스 씨는 말했습니다. 쿰스 씨는 또 한가지, 추수감사절에 관한 사람들의 환상을 깨는 발언을 덧붙였습니다.

당시 원주민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땅에 정착한 영국인들을 환영하고 함께 칠면조 고기를 나눠먹은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됐으며, 또 이들이 계속 사이좋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설에 불과하다고 쿰스 씨는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원주민들이 식민지화를 기꺼이, 반갑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깔려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쿰스 씨는 말했습니다. 기독교 순례자들과 왐퍼노아그 부족간의 평화협정은 50년후 깨지고, 양측간의 혈전으로 번졌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알려져있는 추수감사절 이미지 가운데, 사실과 크게 다른 것이 또 있습니다. 보통 기독교 순례자들, 필그림하면 멋진 코트에 윤이 나는 구두, 챙이 넓고 커다란 금속장식이 있는 모자를 쓴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당시 17세기에 이런 정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부자들 뿐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 정착한 기독교 순례자들은 비버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사슴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을 것이며, 이나마 몸에 걸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살아남았다는데 감사해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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