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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리의 주 승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노예제도 양론'



스페인은 유럽에게 라틴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일부 식민지는 스페인 통치자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영국은 스페인의 요청에 응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영국은 여러 식민지들과 교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식민지뿐만 아니라 프랑스 통치지역과의 단절도 영국의 교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국은 미국과 공동으로 신세계에 있는 어떠한 스페인 식민지도 원치 않는다는 성명을 낼 것을 제안했습니다. 영국은 또한 아메리카 대륙의 어떠한 스페인 식민지도 유럽 국가에게 넘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성명을 내기를 원했습니다.

제임스 몬로(JAMES MONROE)대통령의 보좌관 대부분은 영국의 그같은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대통령에게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국무장관 죤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는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영국을 포함해 어떤 유럽국가와도 결속이 돼서는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미국은 유럽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그같은 정책은 몬로 닥트린(MONROE DOCTRINE)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몬로 대통령은1823년 연두교서를 통해 어떤 유럽 국가도 앞으로는 미주 대륙에 식민지를 수립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는 유럽의 정치 제도는 미주 대륙의 그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몬로 대통령은 그같이 다른 제도를 아메리카 대륙에 연장시키려는 행위는 미국의 평화와 안보를 해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몬로 대통령은 또한 미국은 남미 대륙에 있는 어떠한 유럽 식민지에도 간섭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구 식민지들은 이제 독립을 한 나라가 됐다고 몬로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유럽 국가들이 새로 독립한 이들 나라를 어떤 형태로든 탄압하거나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면 미국은 이를 우호적인 행동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몬로는 동시에 미국은 유럽 국가들의 어떠한 전쟁에도 개입한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몬로 대통령의 이 언급은 대통령이 국회에 보낸 여러 멧세지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대외 정책중 가장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몬로 대통령 임기동안에도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여러 주가 새로 미국에 편입됐습니다. 인디애나(INDIANA), 미시시피(MISSISSIPPI), 일리노이(ILLINOIS), 알라바마 (ALABAMA) 등이1820년 이전에 미국에 편입된 주들입니다.

루이지애나(LOUISIANA)는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루지애나 통치령(LOUISIANA TERRITORY)중에서 맨처음 주로 승격된 곳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루이지애나 통치령의 나머지 지역은 미조리 통치령(MISSOURI TERRITORY)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819년에 이르자 미조리 통치령 일부 지역에는 주로 승격되기 충분할 만큼 많은 인구가 살게 됐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나중에 미조리주가 됐습니다. 그러나 미조리를 주로 승격시키는데는 국회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불행히도 주 승격을 위한 승인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노예제도였습니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은 수 백년전 서인도 제도(WEST INDIES)에서 노예들을 데려왔었습니다. 1619년 배 한척이 20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버지니아의 제임스 타운 (JAMESTOWN)으로 데려왔습니다. 이들 흑인들은 농부들에게 팔렸습니다. 그후 여러해 동안 노예의 사용은 미국 식민지 전 지역으로 번져갔습니다.

농업이 중심인 남부 지방에는 북부 지방보다 노예가 더 많았습니다. 북부의 농장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았고 따라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의 사용은 가장 비용이 적게드는 농사 방법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북부 주들은 1800년 이전에 노예 해방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남부의 주에서 마져도 아프리카에서 더 이상 노예를 데려오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노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제도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고 따라서 노예를 풀어주기 거부했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가 루이지애나 통치령을 관할했을 때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습니다. 미국은 이 지역을 인계 받으면서 노예제도를 바꾸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조리주가 승격을 요청했을때도 노예제도는 그대로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뉴욕주 출신의 제임스 톨머지(JAMES TALLMADGE) 하원의원은 미조리 주 승격 수정법안을 제출했습니다. 톨머지 의원은 미조리주에 더 이상의 노예를 데려오지 못하게 하고 이미 그곳에 있는 노예의 자녀들은 25세가 되면 자유를 주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수정안에 대한 토의는 1년이나 계속됐습니다. 이 법안의 지지자들은 그 수정 내용이 헌법에 부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헌법이 새로운 주를 연방에 영입시키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또한 국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국회가 새로운 주 가입을 반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들은 주장했습니다. 수정안의 지지자들은 또 북부와 동부의 소규모 농장들이 남부의 농장들 및 임금이 안드는 노예 노동제도와 경쟁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북부와 동부의 농민들도 루이지애나 땅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같은 주장은 전 국민이 낸 세금으로 루이지애나를 매입했다는데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노예제도 반대자들은 또 루이지애나가 주로 승격되면 노예를 가진 주들이 정부에서 너무 큰 목소리를 갖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기준으로 인구 규모를 정할때 노예는 5명당 3명으로 계산하도록 돼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주가 새로운 주로 편입될때에는 노예를 금지주도 하나씩 편입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회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남부 사람들은 이같은 주장에 조목 조목 반박을 가했습니다. 이들은 국회가 새로운 주의 편입을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을 가졌다는데는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주로 승격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는데는 반대했습니다.

메릴랜드(MARYLAND)주의 윌리암 핀크니(WILLIAM PINKNEY)는 이미 연방에 들어와 있는 주는 어떤 조건도 첨부된 것 없이 주로 편입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만약 국회가 새로운 주에 대해 그 같은 조건을 제시할 권한이 있다면 그것은 새 주가 기존의 주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합중국은 더 이상 동등한 주로 뭉쳐진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토의는 찬반 세력간에 난폭하게 계속됐습니다. 죠지아주의 하웰 코브(HOWELL COBB)는 톨마지에게 “당신은 불을 질렀다. 대양을 물을 다 끌어온다해도 이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오직 피의 바다만이 불을 끌수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결국 하원은 톨마지 의원의 수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상원은 이를 부결시켰습니다. 미조리주는 1820년 새 국회에서 다시한번 주 승격을 추진했습니다. 이때 노예 제도를 금하는 또 하나의 지역이 주 승격을 추진했습니다. 그곳은 매사츄셋즈(MASSACHUSETTS)주의 허가를 받고 독립된 주로 승격을 원하는 메인(MAINE)이었습니다.

이때 뉴욕주의 하원의원 한명이 또 다시 미조리의 주 승격에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미조리주가 더 이상 어떠한 형태의 노예도 주 경계선 이내로 들여놓지 않는다는데 동의해야 한다는 수정안을 제출했습니다. 헨리 클레이(HENRY CLAY) 하원 의장은 미조리에 대해 어떠한 조건이라도 첨부된다면 자신은 메인의 주 승격도 찬성치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원이 메인의 주 승격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방지할만큼 클레이의 영향력은 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상원은 제한없는 미조리 주 승격안과 메인주 승격안을 하나로 다루기로 표결했습니다. 즉 두건의 법안으로 이를 처리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일리노이주의 토마스(THOMAS) 상원의원이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미조리가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가운데 주로 승격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루이지애나 통치령의 북쪽에서는 어떤 곳이라도 노예를 허용하는 한 주를 수립할수 없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타협안은 통과됐습니다. 하원은 미조리와 메인 모두를 주로 승격시키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들 주는 몬로 대통령이 서명을 하기까지는 정식 주가 될수 없었습니다.

몬로 대통령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 자신도 노예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여러 친구들은 루이지애나 통치령의 노예제도에 제한을 가하는 그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선거에 앞서 이 법안에 대한 결정은 내려져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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