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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인종과 정체성 파헤친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


[인물 아메리카] 인종과 정체성 파헤친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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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 제임스 볼드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문학 비평가들은 아프리카 계인 볼드윈이 미국의 인종문제와 주체성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파헤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3년 그를 표지 인물로 싣고 “미국 인종 문제의 어두운 현실을 그처럼 신랄하고 매섭게 쓴 작가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 제임스 볼드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문학 비평가들은 아프리카 계인 볼드윈이 미국의 인종문제와 주체성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파헤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3년 그를 표지 인물로 싣고 “미국 인종 문제의 어두운 현실을 그처럼 신랄하고 매섭게 쓴 작가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볼드윈은 20여편의 소설과 많은 보도, 논평, 시, 희곡 등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1950년대와 60년대에 쓰여졌습니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의 첫 저서, “산에 가서 말하라” Go Tell it on the Mountain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최고의 노력을 기울인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자신의 어렸을 적 생활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제임스 볼드윈은 1924년 뉴욕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할렘이라 불리우는 뉴욕시의 흑인 구역에서 자랐습니다. 1930년대 미국은 경제대공황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볼드윈 가족을 포함해 대부분 흑인 가정은 백인 가정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9식구가 사는 집안에서 제임스 볼드윈은 큰 아들이었습니다. 제임스는 자기의 생부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제임스가 3살때 어머니는 한 공장 노동자와 결혼했습니다. 새 아버지는 제임스를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볼드윈은 소설 “산에 가서 말하라” 의 주인공으로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등장시켰습니다.

기독교와 교회의 경험도 소설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제임스의 의붓 아버지는 할렘의 상가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빈 가게 자리를 예배장소로 개조한 종교 시설은 “상가 교회”, storefront churches 라 불리웠습니다. 이런 장소는 흑인 지역에는 흔히 있는 종교시설이었습니다. “산에 가서 말하라” 속의 소년은 어버지의 길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제임스 볼드윈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는 의붓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3년 동안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17세때,

그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에서의 그같은 고민과 경험은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평가들이나 그 자신도 기독교 성경이 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비평가들은 또, 그가 흑인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를 하듯 글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볼드윈의 단어, 문장의 리듬, 해설 등이 모두 설교와 비슷했습니다. 재즈와 블루스의 음악적 전통도 그의 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의 글을 더욱 힘이 있고, 감동을 불러 일으키도록 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제임스 볼드윈은 기독교가 노예제를 지지했다면서 비판했습니다. 그는 또 일부 흑인 기독교 신자들이 종교를 억압을 수용하는 변명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흑인들이 인종차별에 항거하는데 기독교가 함께 하기도 했다며, 찬사도 보냈습니다.

그의 저서 “산에 가서 말하라”는 또 주인공의 부모가 왜, 어떻게 남부로부터 뉴욕시로 옮겨왔는지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20세기 전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북부로 대거 이동 한 시대상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그런 현상은 대대적 이주라는 뜻의 Great Migration으로 불리웠습니다.

흑인들은 남부의 인종 분리법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북부로 이동했습니다. 이처럼 이야기 꾼으로서의 그의 재능은 역사를 살아 있게 만들었습니다.

제임스 볼드윈은 다른 모든 이야기들을 쓰기 위해서라도 “산에 가서 말하라” 는 꼭 써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흑인으로써 자신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아주 어릴적부터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좋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에 가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교회의 설교는 자신이 할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집을 떠나 예술인들이 사는 뉴욕시의 그린위치 빌리지로 갔습니다.

볼드윈은 새로운 곳에서 일자리를 잡았습니다. Partisan Review나 the Nation 등 정치 전문지에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보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유명한 흑인 작가 리처드 라이트 (Richard Wright)와도 교류했습니다. 라이트는 볼드윈이 글을 쓰기 위해 유럽 여행을 갈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볼드윈은 1948년 파리, 런던 등을 여행했습니다.

볼드윈은 그후 6년 동안 파리와 프랑스 남부에서 살았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도 살았습니다. 그가 “산에 가서 말하라” 를 펴낸 때는 1953년이었습니다. 미국의 문학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발표되자 미국 문학에서 위대한 새로운 목소리가 나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이 인기를 끈건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1955년 볼드윈이 앞서 쓴 엣세이와 평론들을 모은 책이 출간됐습니다. “원주민의 아들이 쓴 노트”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흑인들이 부딛치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문제들을 다룬 글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이 흑인으로써 유럽에서 경험한 것들도 썼습니다. 비평가들은 그 저서가 당시 당면하고 있는 가장 문제가 많은 이슈, 즉 인종차별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볼드윈은 계속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습니다. 1956년에는 “지오바니의 방” (Giovanni's Room)이 출간됐습니다. 이 소설은 파리에 살고 있는 한 미국 백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미국 여성과 이탈리아 남성을 사랑했습니다. 이 소설은 사람의 성 취향을 인정하는데 따르는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볼드윈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가 앞서 믿었던 종교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성애를 배척했습니다. 그것은 볼드윈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다음 책, “다른 나라” Another Country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책은 뉴욕 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예술가들 사이의 인종, 성, 주체성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어떤 비평가들은 “다른 나라” 와 “지오바니의 방”이 그리 좋은 책이 아니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볼드윈은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다루기 꺼려하는 그런 주제들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썼습니다. 비평가들은 볼드윈의 순수 소설보다 그런 문제를 다루는 글에 더 좋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의 책 “다음번의 화재” The Fire Next Time은 1963년의 베스트 셀러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 책은 ‘민권운동의 가장 강력하고 앞장선 소리’라고 불리웠습니다. 미국 흑인들과 진보적인 백인들은 흑인과 기타 소수민족의 평등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많은 운동가들은 남부로 내려가 흑인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볼드윈도 유럽을 떠나 이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The Fire Next Time은 두 통의 편지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첫번째 편지는 가정의 젊은 아이한테 흑인으로써 미국에서 당면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 해주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강하고 용감하게 투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다음 글은 미국에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볼드윈은 인종문제가 극도로 나빠 국가적으로 개선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백인들에게 흑인 형제가 없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으니 변화돼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는 아메리카가 파멸하지 않는 길은 사랑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The Fire Next Time는 영향력이 큰 저서였습니다. 그 책으로 볼드윈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얼굴은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표지에 소개됐습니다. 그 후에도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저서로 남아 있습니다.

제임스 볼드윈은 1970년대와 80년대 초, 종교, 인종, 성의 정체성과 역사 등에 걸친 장편, 단편, 희곡 등 저술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여기에는 아멘 코너, 기차가 떠난지는 얼마나 됐나요, 빌 스트리트가 말을 할수 있다면 등이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저서 “보지 못한 증거”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는 1985년에 나왔습니다.

이 시기 볼드윈은 파랑스와 파리를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는 매사츄세츠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토니 모리슨, 마야 안젤로 등 크게 성공한 흑인 문학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1986년 국가 훈장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여러가지 상을 받았습니다.

제임스 볼드윈은 1987년 남부 프랑스의 자택에서 타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미국의 학교에서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책을 통해 전달되고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다른 사람의 다른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의 시급한 경고가 오늘날도 중요하게 살아 있다고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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